프롤로그
"벌써 6번째 직장이었다고? 그런데.. 이번에도 그만둔다고?"
‘전'직장동료 부자인 나는 이번에도 사람들을 만나 걱정어린 말을 어김없이 들었다.
또~ 하루 멀어져 가는 내나이 서른즈음에 벌써 6번째 회사이다. 30년동안 꾸준히 한 직장에서 열심히 일해오신 부모님의 동년배쯤 되시는 어르신들이 들으면 아무래도 때끼이놈.
'그렇게 참을성이 없어서야 어떻게 이 험한 세상을 살아가려고 하니!'라는 말을 듣게 되지 않을까.
맞다. 참을성이 어렸을때부터 참 없었다. 무녀독남 외동아들인 나. 유년시절을 생각해봐도 하고싶은건 하고, 먹고싶은건 먹고, 즐기고 싶은건 즐겨야만 했다. 1990년도쯤 'GOLD쪽이 같은 내새꾸' 라는 프로그램이 있었으면 그 당시 너튜브 썸네일에 내얼굴이 나와서 인플루언서가 됐을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말이다. 생각보다 나의 학창시절은 꾀나 안정적이였다. 테스형이 그랬나? 너 자신을 알라구, 나는 내 자신을 참 잘 아는 아이였다.
고1때 부터 일찍이 나의 재능이라고 생각했던 미술을 시작했고 입시를 통해 미대에 진학했다. 물론 재수를 한번 했지만(재수한게 죄는 아니잖아!!(?)) 나름 인정받고 대학을 다녔다. 8학기 중 5학기 정도는 전액장학금을 받고 다녔고, 학점도 4.0으로 졸업했으니 말이다.
어서와 사회생활은 처음이지
이게 문제였을까? 회사생활이라는 지옥을 참 일찍도 경험했다.
대외활동을 정말 많이 했다. 학업을 진행하는 과정에서도 대기업에서 하는 대외활동은 모두 지원하고 면접을 보고 다녔다.
"잘할 수 있씀니돠!"
"열심히 하겠습니다!"
"열정 열정 열정!"
이땐 몰랐다. 면접은 열정만으로 안된다는것을.. 그도 그럴것이 열정하나만으로 대외활동 면접은 이름을 들으면 알만한 S사, C사, A사 죄다 합격이 되어 경험을 해봤으니 말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아니, 내가 돈도 안받고 겁나열심.. 아니 값진 경험이었다.
그렇게 달려가다가 자연스럽게 4학년이 시작되면서졸업전시 준비와 동시에 대기업 '신입공채'란 신입공채는 죄다 집어 넣었다.
순조로웠다.
대기업 신입공채 디자이너 OOO
최종면접이 N사와, N사 두군대로 좁혀졌고(둘다 N사네) 최종 합격을 받은 곳으로 나는 졸업전시가 끝남과 동시에 그 어렵다는 취업계를 내고, 두근거리는 첫 직장 생활이 시작되었다.
..여기까지 들어보면 구연동화마냥 '왕자님과 공주님이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답니다~' 와 같이 돈을 많이 번 글쓴이는 *Behance와 *Pinterest에서 이름을 날리는 멋진 디자이너가 되었답니다. 로 끝나야 할 것만 같은데 그랬다면 내 인생이 이렇게 재밌고 스펙타클하며 어메이징하진 않았을꺼다.
나의 20대는 지금 생각해보면 재밌는 일로 가득했었던 것 같다. 현재 곧 30대 중반, 지금 아내와 결혼한지 4년차에 접어들고 있고 세상 사랑스러운 한 아이의 아빠가 되었는데, 그간 삶을 살아오면서 경험했던 것을 기록하는 행위를 좋아하는 턱에 메모장에 모양빠진 일기들이 가득하다.
그때의 감정들엔 슬픔, 좌절, 분노, 시기들로 채워져 날선 표현들이 존재하지만 누군가에겐 공감을, 누군가에겐 위로를, 또 누군가에겐 비판을 받을 수 있는 얘기들을 꺼내보고 싶어졌다.
사회생활 10년치의 이야기가 조금은 길어질것 같긴하지만 모두 너그럽게 그러려니..하며 이런사람도 있구나 하고 읽어줬으면 좋겠구요. 매사에 좀 진지한 사람이라 글이 또 길어져서 방금 한 6줄 썼다가 또 지웠다.
문뜩 이럴땐 원피스 작가 처럼, 기안84 처럼 해보자.
to be continue...
*Behance - 디자인 포트폴리오 사이트
*Pinterest - 이미지 포스팅 소셜 네트워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