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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상화 May 19. 2019

아빠와 엄마 그리고 롯데월드

 그 날이 봄이었는지 겨울이었는지 계절은 전혀 기억나지 않지만 분명 내가 초등학교를 뛰어다닐 시절의 어느 날이었던 것만은 분명하다.

 아빠와 엄마는 누나와 나를 환상의 세계 롯데월드로 데려갔다.


 "넉넉지 않은" 살림이었지만 그 마저도 더 가난해지지 않고 "넉넉지 않은" 정도의 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 두 어린 자식들을 거느린 젊은 부부가 밤낮과 쉴틈 따위 없이 먼지 구덩이 속에서 미싱 페달을 밟아야 했던 그런 때였다. 

 모든 자식들이 그러하듯 나 역시 철이 들기 전까지는 나의 부모가 얼마나 힘들게 나를 먹여 살렸는지 알 길이 없었다. 

 나의 초등학교 시절에 작지만 아늑한 마당이 있었던 그 집은 월세였을까 전세였을까. 아빠와 엄마는 그 집을 얻기 위해 누구에게 얼마 큼의 돈을 빌렸던 걸까. 빌린 돈에 대한 이자는 얼마였고 나와 누나의 학용품과 용돈을 막힘없이 공급하느라 젊은 아빠와 젊은 엄마가 먹고 싶었을. 갖고 싶었을 많은 것들을 얼마나 포기하면서 살았을까. 

 살다 보면 시간이 지난 후에야 알게 되는 것들이 어디 한두 가지이겠냐만은 성장의 정점을 찍은 나의 건장한 몸을 이토록 영글게 만든 것이 아무 느낌도 없는 몸속 유전자가 아닌 부모의 노동과 사랑이었다는 사실만큼 슬프고 아픈 일도 없다. 그 길고 길었던 세월의 터널을 무사히 빠져나온 후에야 그 사이 커버린 자식들과 늙어버린 부모는 웃으며 그 시절을 추억할 수 있게 되었고 그제야 당신들의 빈곤을 자식들이 알아차릴 수 없도록 얼마나 많은 노력을 기울이며 살았는지를 확인하게 된 순간 큰 고마움과 더 큰 미안함에 사로잡혔다.


 그러니까 그 시절 롯데월드로의 나들이도 아빠와 엄마의 노력이었던 것이다. 다행히도 겁 많은 두 자식을 둔 덕에 놀이기구 탑승에 들어갈 돈은 굳었다고 치더라도 통신사 할인 따위는 존재하지도 않았던 그 시절 4인 가족 입장권과 먹는 욕심이 많았던 아들을 둔 탓에 만만치 않았을 식대는 부담이었을게다. 

 그래도 수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 나의 어린 시절 가장 행복했던 순간 중 하나로 기억되고 있으니 돈 값은 곱절로 했다고 말하는 나를 보며 아빠와 엄마는 어느덧 깊게 파여버린 주름들이 선명해지도록 밝게 웃으신다. 마치 몇십 년 만에 그때 쓴 돈에 대한 보상을 받은 사람처럼.


 그 이후로도 아빠 엄마의 노력과 사랑은 끊이지 않았다. 집안 돌아가는 사정을 알리 없는 아들 녀석의 입에서 튀어나온 나이키 운동화를 사느라 십만원가까운 돈을 마련하고, 당신들은 생전 들어본 적도 없고 용도도 정확히 알 수 없는 486 컴퓨터를 사느라 수백만 원을 마련하면서 그렇게 자식들을 키워냈다. 마음 같아서야 머리를 한대 쥐어박으며 안된다고 꾸짖고 싶었을지도 모를 일이지만 나의 아빠 엄마는 한 번도 그렇게 대하지 않았다. 두 분에게는 당장의 통장잔고보다도, 집안 사정도 모르고 해맑게 갖고 싶은 것들을 뱉어내는 아들에 대한 야속함보다도, 갖고 싶은 것을 갖지 못하게 되는 좌절감을 주고 싶지 않은 마음이 더 컸으리라. 나는 망설임 없이 두 분의 그 마음을 헤아릴 수 없는 사랑이라 말하겠다.


 돈을 벌어야 하는 이유에는 부모가 있다. 공경하는 마음만으로는 그동안 자라며 받아온 사랑을 온전히 갚을 수가 없다는 것을 알아버렸다. 지금도 때마다 넉넉지 않은 용돈을 드릴 때면 부끄러워하시며 망설이시는 아빠와 엄마. 조금은 격하게 손사래 치시는 엄마의 바지 주머니에 용돈 봉투를 욱여넣는다. 받은 것을 다 갚으려면 아직도 수백 번은 더 엄마의 바지 주머니에 봉투를 넣어야 하겠지만 하루가 다르게 늙어가시는 모습에 마음이 조급해진다. 

 이번만큼은 시간이 지난 후에 알게 되지 않기를 바라며 아빠와 엄마의 손을 잡고 나란히 걸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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