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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상화 Mar 13. 2022

산후조리원에서 집으로 온 날, 아내에게 말했다.

출산을 겪으며 남편이 느끼는 미안함과 고마움.

 2주간의 산후조리원 생활을 마치고 집으로 가게 되는 날. 나는 그 역사적이고도 두려운 순간을 위해 조리원 기간 동안 부지런히 배웠다. 아기를 안정적으로 안는 자세부터 수유 텀은 어떻게 잡아야 하는지, 몇 밀리의 맘마를 먹여야 하고 먹고 남은 모유는 어떻게 보관해야 하는지, 기저귀 갈 때가 되었다는 것은 어떻게 알 수 있으며 속싸개를 짱짱하게 싸는 방법은 무엇인지까지. 신생아실에 있는 선생님들에게 종종 간식을 챙겨드리며 이것저것 물어보았다. 아침 7시에 목욕시간이 되면 신생아실 유리창에 찐득이처럼 착 붙어서 선생님들의 능숙한 목욕 기술을 꼼꼼히 관찰했다. 조리원에서 집으로 가는 순간 이 모든 과정을 온전히 내가 할 줄 알아야 한다는 생각이었으므로.


 비로소 본격적인 육아가 시작되던 그날을 기억한다. 겉싸개에 폭 싸여있는 작디작은 딸을 안고 아내와 집으로 들어오는 순간, 드디어 꿈에 그리던 환상적인 세 식구의 탄생에 뭉클한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감동은 잠시. 곧바로 불안함과 조급함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아직은 잠들어 있는 아기가 깨기 전에 이런저런 준비를 마쳐야 했기 때문이다. 갈아입을 배냇저고리와 속싸개, 젖병, 유축기, 가제손수건, 기저귀, 분유, 로션, 물티슈 등등 필요한 순간에 빠르게 사용할 수 있도록 세팅을 하기 시작했다. 

 그 순간 알게 된 사실.

이미 아기를 위한 모든 것이 적소에 준비되어 있었다. 아기를 안은 채로 손만 뻗으면 닿을 거리에 앞서 얘기한 모든 용품들이 가지런히 준비되어 있었던 것이다. 임신기간 동안 아내가 수시로 하던 말이 떠올랐다. 

"아유~ 무슨 종류가 이렇게 많아. 육아용품 사는 것도 일이네."

그랬다. 아내는 이 많은 용품들을 검색에 검색을 반복하고 고민에 고민을 거쳐 이렇게 살뜰히 준비해 놓은 것이다. 그 부른 배를 하고 말이다.

 아내에게 말했다. 


"자기야. 은유(딸 이름이다.)를 보면서 느낀 건데 집에 용품들이 완벽하게 준비되어 있더라고. 내가 준비한 기억이 없으니 자기가 이렇게 다 준비해 놓은 걸 거 아냐. 내가 못 도와줘서 미안하고 편하게 은유 키울 수 있게 준비해줘서 너무 고마워! 그리고 어쩌면 하나같이 이렇게 다 예쁜 것들로 골랐어? 역시!"


 임신 과정에서 내내 아내에게 미안한 것이 있었다. 

결과적으로는 자연임신이 되었지만 아내와 나는 인공수정 과정을 한번 거쳤다. 그래서 우리의 첫 병원은 난임 병원이었다. 정기적으로 병원을 방문하는 일정 중에는 함께 가는 날도 있었지만 사정상 아내 혼자 가는 날도 있었다. 어느 쪽이든 아내는 특유의 씩씩함으로 진료를 받았다. 아기가 찾아왔음을 확인하고 본격적인 임신 생활이 시작되었을 때. 안도감과 함께 찾아온 미안함이 하나 있었다. 그동안 지켜본 과정에서 아내는 꽤 많은 주사를 맞았기 때문이다. 병원에 갈 때마다 이런저런 이유로 피를 뽑거나 약을 주입하기 위해 바늘로 피부를 찔러야 했다. 하지만 아빠가 되고자 하는 나는 그 어떤 주사도 맞지 않았다. 나는 주사 맞는 것을 무서워 하지만 아내는 평소에도 주사 맞는 것이 뭐가 무섭냐며 아무렇지 않다고 말하는 사람이었다. 그렇더라도 엄연히 감각을 가진 사람인데 어찌 바늘에 찔리는 불쾌한 따끔함이 아무렇지 않겠는가. 작든 크든 주사를 맞는다는 것은 고통이고 함께 아이를 만드는 과정에서 아내에게만 고통이 주어진다는 것이 무척이나 미안했다. 여성과 남성이라는 생물이 가지는 어쩔 수 없는 이치겠지만 그렇다고 미안한 마음이 들지 않는 것은 아니다. 대신 주사를 맞아줄 수도 없는 노릇이고 나에게는 조영술을 할 나팔관도 없으니 그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미안해하고 고마워하는 것뿐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아내에게 말했다. 


"자기만 주사 많이 맞게 해서 미안해. 그 아픈 나팔관 조영술을 받게 된 것도 미안해. 그리고 내가 걱정할까 봐 늘 더 씩씩하게 더 웃으며 모든 걸 해내 줘서 고마워."


 내가 고맙다고 말할 때마다, 미안하다고 말할 때마다 아내는 웃으며 이런 말을 나에게 돌려준다. 

"오빠는 그런 걸 알아주니까 내가 더 고맙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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