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하늘을 뚫고 쏟아지던 어느 날, 장 보러 마트를 가기 위해 버스를 탔던 날이 있었다. 버스는 한참을 묵묵히 비 속을 달렸다. 마트에는 결국 도착하지 못했다. 반대 방향을 잘못 탔기 때문이었다.
10분 거리를 50분 돌아서 가는 길, 버스의 STOP 버튼은 빨갛게 빛났다. 언제나 돌아가는 것은 아닐까 아등바등하던 난 비로소 그곳에서 잠깐 멈춰 섰다. 무엇이 그토록 나를 조급하게 했던 것일까.
돌아간다 하더라도 그 길 위에서 소중한 인연과 좋은 풍경, 아름다운 순간들을 만난다면, stop이란 네 글자가 조바심이 아닌 아름다움으로 다가올 수 있다면 좋겠다 생각했다.
가만있는 것이 괴로운 순간, 난 앞만 보고 가는 것에 지나치게 익숙해져 버린 사람이 되어버렸음을 깨닫는다. 가끔은 쉬어가고, 또 가끔은 옆을 보며 그렇게 살아가는 삶도 아름답지 않을까 생각하는 요즘이다. 모든 쉼표에는 그 나름의 의미가 있을 테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