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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luese Oct 02. 2021

거리두기

이천이십일년시월아홉째날


눈을 뜨니 새벽 4시 30분.

아직 동이 트지 않은 창밖은 까맣다.


거리두기 4단계가 2주 더 연장된다는 뉴스를 봤던 어제

친구의 지인이 상견례를 2년째

4번을 취소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이러다 양가 부모가 한 번 만나 보지도 못한 상태로

결혼식을 올리게 생겼다고.


그건 그것대로 좋지 않을까.

서로를 몰라 겪게 되는 어색함보단

잘 알아 받게 되는 상처들이

대미지는 더 큰 편이니까.


가까운 이들에게 상처받게 되는 일들이 종종 있다.

그리고 그것과 비슷한 빈도로

가까운 이들에게 상처가 되는 쪽이기도 하다, 난.


편안함이란 보호막을 뒤집어쓴 체

입을 벗어나 상대에게 날아드는 날 선 말들은

그저 그런 생채기가 아닐 때도 있을 거라고.

알고 있다.


이상하게도 해를 지나며 자연스레 둥글어지는

일상의 많은 부분 중에 유독

이 부분은 무뎌지질 않는다. 오히려 퇴화에 가깝다.

아무리 굴러도, 부서져서는 다시 뾰족한 날이 선다.


어쩌면 나의 본성은 그저 못돼 처먹은 걸지도 모른다고

스스로의 태도를 쿨하게 인정하는 척 하기도

이젠 지친다.

수없는 자책의 횟수만큼 후회와 반성과 다짐이

무한대 기호를 그리며 그저 

내게서 가까워졌다 멀어졌다를 반복할 뿐이다.


지난 일주일, 업무가 아닌 거의 대부분의 대화를

셀프 차단했다.

방어기제다.

이러다 인간 자체로 차단당할까 조금은 겁이 난 탓이다.

지극히 보통의 날들에, 늘 곁에 있어주는 이들과

의미 없이 주고받던 대화의 소중함을 깨닫기 위해.

하고 싶은 말들을 삼켜낸다. 웃음을 참아낸다.


오락가락하는 날씨만큼이나

불쑥불쑥 우울에 가까운 마음이 들락거린다.

Yes, it works.

내 속에 쌓여가는 말들이 많아,

결국엔 입을 떼고 말겠지만.

그때엔 성숙한 태도로, 상대에 대한 애정과 존중을 담아,

후회하여 주워 담고 싶을 말들을 내뱉지 않겠다는

굳은 각오를 한다.


오늘은 백신 접종이 있다.

못된 것들은 언젠가 꼭 화를 당하게 되어 있다고

강한 믿음을 가진 터라, 후유증이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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