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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소미소 Jan 18. 2023

내가 유독 많이 울었던 이유

시를 쓰다가 

봄비  / 전영임



봄이 울 때가 있지

메마른 대지가 가여워 보슬보슬 울 때가 있지

울음을 뚝, 그치고 싶어도

차마 못 그칠 때가 있지

허기져 시든 싹들이 생기를 찾을 때까지

울어야겠다는 다짐을 하는지도 모르지


들일에 지친 엄마가

집에 돌아와서도 쉬지 않고

어둠 속에서 흐느적거리는 실루엣을 보았지

나는 아프다고 울었어


눈물샘 둑을 허물며

눈물이 마를까 봐 구피처럼 입술을 뻐끔거리며

물을 마시곤 했어

엄마가 내 이마를 짚으려 앉을 때까지


한참을 울던 내가 잠잠해지고

쫑긋 세운 귀에 일어서려는 엄마의 기척이 들면

울음소릴 더 높였어


벽에 기대 꾸벅꾸벅 졸고 있는 엄마의 모습에

울음소리를 뒤채며 굽 낮게 웃었어

저녁밥을 해 주지 않아도

밤이 깊어가도 나는 자꾸,

자꾸 울고 싶었어


내가 울어야 엄마가 쉴 수 있었거든


내가

여덟 살 때 일이었어.


**** 오늘 시를 쓰다가 문득 생각했다.

내가 어릴 때 많이 떼를 쓰고 울었던 이유

그래서 깍쟁이라는 별명을 얻은 이유는 단순히 엄마에 대한 내 마음 도 한몫을 했다.


엄마는 마흔둘에 막내인 나를 낳으셨는데, 봄여름 가을에는 들일을 하셨고

여름에는 들일과 함께 온 산을 헤매며 칡을 잘라 오셨고,

겨울이면 언 땅을 호미로 파 복숭아나무아래 떨어진 복숭아 씨앗들을 주워 오셨다

복숭아 씨앗을 껍질을 깨고 알맹이를 한약건제상에 가져가면 얼마의 돈이 되었기 때문이다.


내가 본 엄마는 늘 일에 지쳐 있었다.

쪽진 머리가 흐트러지도록 날마다 일에 찌들어 있었다.


그때 나는 골수염이 재발되어 자주 아프곤 했었는데

몸이 자주 아프니 짜증도 많은 아이였다. 


어느 날 들일에서 돌아온 엄마가 잠시 앉을 새도 없이

다시 집 일을 하는 모습을 보았다

흐트러진 머리, 땀에 얼룩이 진 흰모시옷,

그때부터 나는 울기시작했다

아프지도 않은 다리를 부여안고, 아프다고 소리를 지르며 떼를 썼다

내가 아프면 엄마는 만사를 제치고 나에게로 달려왔던 기억 때문이다

그리곤 내 옆에 앉아 아픈 내 다리를 계속 쓸어주시곤 했다


그날도 엄마는 나를 무릎에 누이시고 벽에 기댄 채

내 아픈 다리를 만져주고 계셨다.

그러다 엄마의 손길이 조용해 보니 엄마가 꾸벅꾸벅 졸고 계셨다

나는 울음소리를 낮추고 빙그레 웃었다

일을 하지 않는 엄마가 편안해 보였기 때문에


그날은 저녁을 안 먹어도 배가 안 고플 것 같았다

밤이 깊어도, 엄마가 계속 저렇게 잠들어 쉴 수만 있다면

다 참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내가 여덟 살이었는지는 잘 모른다.

다만 어린 나였다.

엄마를 생각하던 내 어린 마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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