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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크 Sep 22. 2023

지하철 만두가게에서 커머스의 절정을 맛보다

바쁜 업무처리로 인해 저녁을 건너뛰고 꽤나 늦은 시간에 퇴근을 한 어느 날이었습니다.

여전히 사람이 많은 지하철 안에서 흔들리며 저는 온통 무엇으로 좀 요기를 할까 하는 생각뿐이었습니다.


새벽같이 일어나는 루틴 상 뭔가 거하게 먹기는 너무 늦었고 그렇다고 간단히 한 끼 먹는데 큰돈을 쓰기도 싫었습니다. 마침 지하철역에서 내려서 타야 하는 버스가 20분 정도 후에 오는 것을 확인한 후라 버스도 기다리면서 배도 채울 수 있는 좋은 기회였습니다. 돌아오는 내내 한참을 고민하고 제가 내린 결론은 근처 편의점에서 컵라면과 김밥을 먹자는 것이었습니다. 푸짐하지는 않지만 배는 차고 가격도 착한, 제가 선호하는 모든 조건에 맞는 완벽한 해답이었습니다. 


그렇게 지하철에서 내려 개찰구로 걸어가던 그때, 어디선가 고소하고 맛있는 냄새가 나서 저도 모르게 고개를 들어 주위를 둘어봤습니다. 저 멀리 '마감 세일 만두 10개 만원!'이라고 크게 쓴 간판이 보였습니다. 저도 모르게 발길이 향하는데 그 순간 사장님의 우렁찬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새우만두는 다 나갔습니다! 납작 만두도 3개 남았어요!"


뜨거운 찜기들이 활짝 열려 만두 냄새가 온통인 그곳으로 저도 모르게 발걸음이 빨라졌고 얼른 남은 만두를 스캔하기 시작했습니다. 생각보다 종류가 다양해서 잠시 고민하는데 사장님이 말했습니다.


"손님! 10개 골고루 섞어서 드릴까요?"


"아..네 감사합니다.."


포장용기를 들고 이것저것 담던 사장님 손이 멈칫했습니다.


"혹시 못 드시는 거 있으세요?"


"아 저 매운 걸 잘 못 먹어요"


"아 그럼 매운 소고기 만두는 빼드릴게요. 꽤 매워요. 매운 거 좋아하는 손님들은 이것만 드시기는 해도 허허"


재빨리 만두 10개를 담고 포장하려던 사장님은 매운 소고기 만두 하나를 더 넣으면 말했습니다.


"아 그래도 이게 우리 집 자랑이라서.. 서비스로 하나 넣어드릴 테니까 맛있으면 다음에 또 오세요!"


단무지와 젓가락까지 야무지게 챙겨주는 사장님에게 만두를 건네받고 지하철역을 나섰습니다.

허기를 느끼고 서둘러 포장을 뜯고 맨손으로 만두 하나를 입에 넣었습니다.

어디 가서 추천할 만큼의 대단한 맛은 아니었어도 충분히 맛있었고 이미 제 손은 다음 만두를 집고 있었습니다. 


두 개째 만두를 삼킬 때쯤 편의점이 눈에 보였고 순간 약간의 혼란을 느꼈습니다.

저는 꽤나 고민한 끝에 라면과 김밥을 먹기로 했고 맛있겠다는 상상을 지하철 내내 했습니다. 양은 물론이고 가격 또한 많아봐야 5천 원을 넘지 않았을 것이기에 더할 나위 없는 선택이라는 것을 저는 알았고 정말 확실하게 결정을 내렸습니다.


그런데 정신을 차리고 보니 생각하지도 않았던 만두를 걸어가면서 먹고 있었고 심지어 생각했던 예산보다 두 배 가까이 지출을 했습니다. 분명히 간단하게 라면과 김밥을 먹겠다 했는데 이게 무슨 영문일까요?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저는 이 만두집이 커머스의 훌륭한 사례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사람들이 많이 지나가는 곳에서 찜기를 활짝 열어 냄새로 후각을 자극하고 마감세일이라는 자극적인 문구를 멀리서도 볼 수 있게 배치했습니다. 그래도 망설이는 사람을 위해 사장님은 만두가 점점 떨어지고 있다는 것을 어필했습니다. 손님이 선택을 위해 고민을 하자 결정도 도와주고 빠른 회전을 위해 추천을 해주고 그러면서도 고객 개개인의 니즈를 맞춰주려고 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추가 혜택을 슬쩍 주며 재방문을 유도하기도 했습니다.


나름 커머스의 전문가라고 자부하는 제가 이 완벽한 시스템에 빠져 생각지도 않은 상품을 구매하고 더 많은 지출을 하게 된 것입니다. 이것이 커머스 업계 모두가 고객들에게 바라는 점이기도 합니다.


제가 여러 회사나 지자체 강연에서 그렇게 강조하던 강조하던 모든 요소들이 담겨 있는, 커머스의 절정을 지하철 만두가게에서 본 느낌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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