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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하지 않은 보육원의 갈비 파티 -1

by 지크 Mar 03. 2025

돼지갈비 식당도 여러 군데 운영하면서 밀키트도 만들어 홈쇼핑에서 판매를 하는 파트너사의 방송을 진행하며 친분을 쌓은 적이 있습니다.


방송을 위해 구워놓으면 온 스탭과 지나가던 피디들도 한 점 먹고 싶어 군침을 삼킬 만큼 맛도 좋고 가성비도 좋은 상품이었기에 상당히 자주 방송을 진행했었고 홈쇼핑 영업 담당자인 과장님도 인간미 있는 분이라 종종 업무 외 이야기도 하곤 했습니다.


어느 날 회의 전 이런저런 수다를 떠는데  과장님이 불쑥 말을 꺼냈습니다.


"PD님. 솔직히 저희 상품 어떠세요?"


"가성비 상품으로 참 괜찮은 것 같아요. 먹기도 간편하고"


"퀄리티가 뛰어나지는 않다는 뜻으로 이해하면 되겠죠? 저희도 그게 고민이에요"


"당연히 유명한 돼지갈비 식당에서 직접 구워 먹는 수준은 아니겠지만 이 가격에 이 정도 퀄리티면 저는 홈쇼핑 판매용으로는 충분한다고 생각은 합니다"


과장님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말을 이어갔습니다.


"사실 저희가 비용 생각 안 하고 아무리 해봐도 돼지갈비 퀄리티를 더 올리는 게 한계가 있더라고요. 그래서 소갈비를 준비 중이긴 하거든요? 근데 또 이게 막 대중적 일지 고객들 입맛에 맞을지 확신이 안 서서 샘플 생산만 주구장창 하고 있어요"


"소갈비면 단가도 올라가고 브랜딩에도 도움이 되긴 하겠네요. 얼른 MD랑 회의해 보세요"


그날 과장님과 나눈 이야기는 다시 언급된 적이 없어 그렇게 기억 속으로 자연스레 사라졌습니다.


하루는 호형호제하는 방송인과 술을 한잔 하는데 취기가 오른 형이 넋두리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사실 내가 이제 나이도 좀 있고 하다 보니까 불러주는 데가 없어서 수입이 좀 줄었는데 다른 건 참 괜찮거든? 내가 좀 줄이고 이러는 건 괜찮아. 그런데 매년 보육원에 보내던 금액을 줄일 수밖에 없어서 그게 참 마음 아프다"


"남 도우면서 미안해하는 건 착한 거예요 미련한 거예요? 원장님도 충분히 이해하실 거예요"


"그래서 내가 요즘은 몸빵하고 있어. 친한 연예인들 데리고 가서 공연도 해주고. 돈이 없으니 그렇게라도 돕는 거지 뭐"


"아이들한테 그게 얼마나 큰 추억이 되겠어요. 대단한 일 하시는 거예요"


의미 없고 도움도 안 될 위로를 하던 제 머릿속에 왜 갑자기 파트너사가 떠오른 건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지만 어렴풋하게 뭔가 연결고리가 만들어질 듯 말듯함이 느껴졌습니다.


다음날 과장님께 전화를 드렸습니다.


"과장님. 소갈비 준비 잘 되어가시나요?"


"PD님 기대가 많으신가 봐요? 보통 출시 전 상품에 PD분들이 관심 갖는 일은 드문데요 하하. 그때 말씀드린 내용에서 크게 더해진 건 없어요. 아직 맛 테스트랑 시장 반응 어떻게 확인할지 알아보고 있죠"


"그렇군요. 과장님 다름이 아니라.. 소갈비요. 제가 너무 무례한 부탁을 드리는 걸 수도 있고 전혀 고려 안 하셔도 됩니다만.. 혹시 보육원에서 테스트를 해보는 건 어려울까요? 보육원에 의미 있는 일도 하고 실제 아이들이 맛있게 먹나 확인도 해볼 수 있고요"


"PD님. 조금 당황스럽기는 한데.. 일단 제가 대표님께 말씀드려 볼게요"


갑작스러운 제안이라 그런지 꽤 긴 침묵 후 과장님은 자신 없는 말투로 서둘러 전화를 끊었고 저 역시 큰 기대를 하지 않았습니다.


그날 저녁 과장님으로부터 다시 전화가 왔습니다.


"PD님. 저도 이게 지금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르겠는데.. 대표님이 PD님 한번 모시고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다고 하셔서요.."


"네? 아 혹시 오해하실까 봐 아까 드린 제안은 홈쇼핑 회사 차원의 제안이 아니라 제가 개인적으로 제안드린 거라 너무 무겁게 생각 안 하셔도 됩니다"


"저도 그렇게 말씀드렸는데 PD님과 꼭 좀 이야기를 나누고 싶으시다고.."


괜한 오지랖에 저는 파트너사 대표님을 만날 처지가 되었습니다.


한껏 긴장한 모습으로 저를 마중 나온 과장님의 표정은 편치 않아 보였습니다.


"PD님. 대표님이 어떤 말씀을 하실지 몰라서 저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혹시 기분 나쁘실만한 일이 생기면 제가 어떻게든 이후에 만회할게요"


과장님의 말에 저도 어쩌면 대표님이 홈쇼핑사의 갑질이라고 오해했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덩달아 긴장하며 대표님 방으로 들어갔습니다.


"PD님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저희 방송 힘 많이 써주고 계시다면서요. 감사합니다"


"저희가 더 감사하죠. 그런데 오늘 어떤 일로.."


"박 과장한테 하신 말씀 전달받았는데요"


무표정한 대표님의 얼굴을 봐서는 대체 어떤 말이 나올지 가늠이 안되었습니다. 손에 땀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대표님은 천천히 말을 이어갔습니다.


"너무 좋은 기회 주신 것 같아요. 사실 고객 테스트 그런 건 둘째치고 저도 몇십 년 사업하면서 뭔가 허전함이 있었어요. 내 장사하는 거에 바빠서 사회에 도움이 되는 일은 못한 것 같아요. 그런데 이번 제안을 듣고 보니 이런 제 갈증을 풀 수 있는 기회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지 뭡니까"


"사실 저도 꼼꼼하게 생각해 보고 제안드린 것은 아니라 예상하신 것과 좀 다르게 흘러갈 수는 있습니다.. 사실 보육원에 얘기도 안 해봤거든요.."


"일이 성사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다만 진행된다면 저희가 소갈비 등 음식 일체는 물론이고 진행 요원이나 직원들까지 모두 제공하겠습니다"


예상치 못한 대표님의 말에 발등에 불이 떨어진 건 오히려 저였습니다. 


보육원은 물론 보육원 이야기를 전해준 형에게도 어떠한 말을 하지 않은 상황.


최악의 경우 세치혀 놀려서 여러 사람 피곤하게 만들고 아무 일도 성사되지 않을 수도 있었습니다.


급하게 형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형. 혹시 보육원에 아이들이 몇 명이에요? 혹시 소갈비 파티 해도 될까요?"


"소갈비 파티?? 갑자기 무슨 말이야?"


저는 자초지종을 설명했고 형은 제 말을 다 듣기도 전에 말했습니다.


"그런 건 싫다. 네가 어떤 마음으로 이야기한건지는 충분히 이해하는데 하지 말자"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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