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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차 Jun 19. 2022

사랑은 자꾸만 나를 어린아이로 만든다(4)

불안형 그녀, 회피형 그

'떠날 거야.'




불안함이 계속 증가하는 상황에서 오로지 내게 드는 생각. 저 사람은 날 떠날 거야. 영영 헤어질 거야. 다 큰 성인이 되어서도 엄마가 집에 돌아오지 않았던 그날에도 난 큰 두려움을 느꼈다. 어쩌면 엄마가 돌아오지 않을 거야. 정말로, 멀리 떠난 거야. 세차게 뛰는 심장소리가 들렸다. 한참을 바라보던 천장이 아득해졌다. 새벽이 다 돼서야 현관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려서야, 난 불을 끌 수 있었다.






이유를 알지 못했다. 내가 이렇게 큰 불안감을 느끼는 데에 어떤 바탕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그냥, 관계에서 오는 자연스러운 불안감이라 생각했다. 그러다 이번 이별을 겪으며 나는 '불안형'이었단 사실을 알게 되었다. 헤어짐을 책으로 소화하던 내게 <그들이 그렇게 연애하는 까닭>이란 책이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었다.





애착유형에는 안전형, 불안형, 회피형이 있다. 책에 따르면 50%가 안전형, 30%가 불안형, 20%가 회피형이라고 한다. 난 그중 불안형이었다. 간단한 테스트도 있지만, '항의 행동'을 한다는 데에 있어 내가 불안형이 맞구나를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항의 행동이란 자신의 불만을 다른 식으로 표현하는 불안형의 '행동'이다. 난 불만이 생기면 제대로 얘기하지 못한다. 내면 깊숙이 '저 사람은 내 얘기에 관심이 없을 거야.'라거나 '내 불만이 예민한 걸 수도 있어.'로 이어지다 결국 '어떻게 얘기해야 할지 모르겠어.'가 되고 만다. 그리고 이 얘기를 꺼내면, 갈등의 회복이 아닌 갈등의 종결 즉 이별이 올 것이라 예상한다. 아이러니하다. 왜 나의 메커니즘은 이렇게 되어버린 걸까.




우선 나는 갈등을 싫어한다. 양보가 편하다. 내가 먼저 이해하고 넘어가면 굳이 싸움을 벌일 필요가 없다. 나쁜 방식은 아니라 생각한다. 다만, 문제는 내 스스로 나의 '기준'을 정확히 알지 못한 데에서 시작된다. 쌓이고 쌓이다 결국 입을 다문다. '내 기분을 알아줘.'라고 입 대신 온몸으로 얘길하는 것이다. 상대방이 나를 제대로 봐주지 않았으니 내 스스론 이게 합당한 방식이라 생각하면서. 네가 정말 나를 사랑한다면, 내 기분을 살펴보는 게 맞지 않냐는 식의. 문젠 여기서 시작이다. 내가 얘기를 하지 않는데 상대방이 어떻게 알 것이며, 이 방식의 제일 큰 단점은 나를 갉아먹는 데에 있다. 




무수한 의문들과 의심, 괴로움이 나를 잠식한다. 상대방이 내 기분을 알아채고 얘기를 먼저 꺼내기 전까지 말이다. 사람 사이의 일에 효율성을 따지는 게 맞나 싶지만, '나'를 보고 '관계'를 생각했을 때 긍정적인 방향이 아니다. 우리는 행복하려고 연애를 하지, 불행하려고 연애를 하려는 게 아니니까. 




그래서 했다. 섭섭함을 얘기하고 이유를 설명했다. 다행이 그는, 내 이야기를 진심으로 귀기울였고 다음에 속상한 일이 생기면 바로 자신에게 얘길해달라 말했다. 어쩌면 이 순간이 내게 용기를 주었는지도 모른다. 갈등이 꼭 파국을 의미하진 않는다고. 






그러나 종국에 그는 이별을 고했다. 자신의 영역을 더이상 내줄 수 없다는 얘길하면서. 그땐 몰랐지만 지금은 안다. 그는 거리가 필요한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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