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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DHDLAB Dec 01. 2024

엄마가 무너질 때

공황증상을 겪다

올해 초 갑자기 공황 증상을 겪었습니다. 


공황증상은 스트레스가 극도에 달하는 일이 생길 때 그러니까 무슨 일이 벌어졌을 때 겪는건 줄 알았습니다. 아이와 실갱이하다가 또는 감당하지 못할 만큼 충격적인 뉴스를 접했을때처럼 말이죠.


그런데 공황은 제가 아이들과 날씨 좋은 곳으로 한달살이를 하러 갔을 때 갑자기 찾아왔습니다. 

새벽2시반 호텔방에서 잠이 깨 뒤척이다 갑자기 무서워졌습니다. 

공포가 저를 집어삼킨 것 같았죠. 

숨이 쉬어지지 않고 눈물이 났습니다. 

평화롭고 조용한 호텔 방에서 아이들은 새근새근 자고 있었는데 저만 혼자 지옥에 있는 것 같았습니다. 


남편 없이 혼자 아이들을 데리고 해외에 온 게 부담이었을까요. 

ADHD 첫째아이를 데리고 해외로 오는 과정에서 많이 걱정하고 긴장해서였을까요. 


지금 돌이켜보면 

저 혼자 아이를 데리고 해외에 처음 나갔기에 긴장이야 당연히 했겠지만

4주 일정 가운데 첫주였고

아이들이 무슨 문제를 만들거나 귀찮게 하지도 않았습니다. 

공황이 찾아올만큼의 사건이 있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날따라 잘 차려진 저녁 뷔페 음식을 앞에 놓고 도저히 음식을 목구멍으로 넘길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오늘 밤 호텔방에서 나를 압도하는 공포와 싸우며 긴 밤을 견뎌낼 자신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밖으로 나와 남편과 부모님께 전화를 걸었습니다.

나의 상황이 머리로는 이해되지 않겠지만, 

나도 내가 왜 이런지 머리로 이해되지 않는다고,

그러나 지금 숨도 못쉬겠는 공포에 사로잡힌 상태라고 알렸습니다.

통화를 끝내고 항공사로부터 오늘밤 비행기에 빈 자리가 있어 탑승 가능하다는 확답을 받았을 때 

아이들에게 알렸습니다. 


"엄마가 몸이 아파서 오늘 밤에 비행기 타고 귀국해야할 것 같아"라는 말을 듣고

엉엉 울던 아이들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합니다. 

생각만 해도 여전히 가슴이 저릿저릿 합니다. 


엄마가 아파 밤에 잠도 못자는 지 모르고 신나게 놀기만 했다며 미안하다고, 

밤새도록 안 자고 엄마 옆에 함께 있어주면 돌아가지 않을 수 있냐고도 물었습니다.

아이들의 예쁘고 따뜻한 마음이 너무 고마웠지만 

아쉬워하는 아이들을 이끌고 돌아와야만 했어요.


무작정 짐을 싸서 비행기를 타고 귀국했습니다. 

그러곤 생각했습니다.

아무리 아이에게 좋은걸 해준다한들

엄마인 내가 무너지면 무슨 소용인가.


한동안 자책을 했습니다.

이렇게 마음이 약해서 어떻게 살아갈지 내 자신이 한심하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그런데 상담을 해주신 의사 선생님은 다른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어려움이 있는 아이를 키우는 부모들 상당수가 우울과 무기력, 공황을 경험한다고 했습니다.

마음이 약해서도 아니고 나약해서도 아니라고 말입니다. 자신을 탓하지 말라고 했어요.

늘 관심이 어려움을 겪는 아이에게 향해 있기 때문에 스스로를 챙기지 못해서 벌어지는 일이라고 했습니다. 


육아가 시작되고 10년 이상

걱정과 긴장 속에서 저를 돌보지 못했기에

저는 속으로 많이 지쳐있었습니다. 

내 힘든 마음을 챙길 새 없이 아이와 생긴 갈등을 해결하고 

아이의 마음을 진정시키고 행동방법을 알려주는 데 많은 시간을 썼던 것 같습니다. 

아이가 문제행동을 하지 않을 때도 늘 머리에서 아이에 대한 생각이 떠나지 않았고 

이렇게 했으면 어땠을지 되감기하는 일이 일상다반사였어요. 


그래서 해외살이라는 긴장감을 이겨내지 못했던걸까요. 

네. 그런 것 같아요. 

그동안 저는 건물을 튼튼하게만 지으려고 했지

건물이 세워진 땅에 구멍이 숭숭 뚤리고 있는걸 외면했던 셈입니다. 


이 경험으로 나를 돌보기 시작했어요.

의사 선생님의 추천으로 받아본 성격검사를 받았습니다. 

이 검사에서 나라는 사람의 성향과 성격, 사고회로를 알 수 있다고 했어요. 

검사 결과를 받아보고 전 머릿속에서 전구가 팍 켜지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희생적이고 완벽주의적인 성향"


이런 성향의 사람이 어려움을 가진 아이를 만났으니

더욱 희생적이 되었을테고

아이의 어려움 앞에서 더욱 완벽주의적으로 해내고 싶어했을 저 자신이

안쓰러워졌습니다.


공황증상까지 겪고 나서야 

이런 마음을 갖게 된 건 안타까운 일이지만

그래도 40대 초반에 그리고 20년 육아의 절반 정도 지나온 지금

나 자신을 돌보기 시작한 건 다행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즈음 은유 작가님의 <해방의 밤>에서 아래의 문장을 만났습니다. 


"포기하면 실패이고 완주하면 성공인가. 그곳의 풍토와 공부가 내 몸에 맞지 않는다는 걸 알았으면 그 역시 배움이고 경험 아닌가. 차돌같이 야무지고 씩씩한 정수가 그랬을 리 없는 게 아니라 다부지고 예민하고 주체적인 정수라서 그랬구나 싶습니다. 아픈 몸을 돌보기 위해 만사 제치고 온 용기는 아무나 낼 수 있는 게 아니니까요."


책에서 받는 위로의 힘

그리고 그 깊은 울림.

작가님이 제게 건네는 위로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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