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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DHDLAB Nov 24. 2024

미국에서 자폐 아들을 키워낸 어머니와 만나다

"당신은 혼자가 아닙니다"

미국 영어수업에서 만난 멕시코 출신의 마리는

자폐스펙트럼을 가진 아들이 대학생이 되기까지의 여정을 에세이로 써서 발표했습니다.

ADHD 아이를 키우는 제게 마리의 에세이는 특별했습니다.

'내 아이가 혹시 남들과 다른가?' 의구심 들던 날들.

소아정신과를 찾아가기 전 무섭던 여러 날 밤.

왜 이렇게 힘들게 할까 진이 빠지던 기억.

진단을 받던 날 오히려 마음이 정리되던 모순된 감정들까지.

제가 아이와 함께하며 느꼈던 감정들이 그녀의 글에서도 언급됐죠.

언젠가 마리와 마주 앉아 어려움을 가진 아이를 키워내는 일의 고단함을 나누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그러다 그만 종강일이 되었고, 더이상 미룰 수는 없다는 생각에 용기를 내 마리에게 문자를 보냈습니다.


"(중략)My child has ADHD.

but we have kept in a secret.

Because there is a lot of stigma in Korea. (중략)

I would like to ask if you know any program or good community for ADHD families?"


그동안 주저했던 제 모습이 무색하게

마리의 답문은 너무나 따뜻했습니다.


"First, you need to know that you are not alone, and you can talk to me every time you feel exhausted or sad, because it's is normal.

Everyone is special in different ways."


"당신은 혼자가 아니에요"

이 문장에서 눈을 뗄 수 없었습니다.

"슬프거나 지치면 언제든 얘기해요. 그건 당연한거에요. 모든 사람은 여러 가지 형태로 다르니까요"

이 문장은 여러 번 읽었습니다.

국적도 인종도 문화도 다른 우리가 어려움을 가진 아이를 키운다는 공통분모 하나로 마음을 나눌 수 있다는 게 감동이었습니다.


사실, 가족 이외의 사람에게 아이의 진단명을 공개한 적이 없습니다.

한국에서 ADHD아이는 늘 문제아로 취급받는 게 현실이니까요.

아이의 진단명을 공개하는 일은 제게 큰 용기가 필요한 일입니다.

그런데 미국에서는 ADHD 아이에 대한 시선이 한국과 다르다고 들었기에 용기를 냈습니다.

미국에서 자스를 가진 아이를 대학생까지 키워낸 마리의 경험이 궁금했습니다.


마리와 만나 대화를 나눈 3시간이 어떻게 흘렀나 모를 정도였어요.

언어의 장벽을 뛰어넘을 만큼의 공감과 위로, 수많은 정보 덕분이었던 것 같습니다.


마리는

미국 학교에서 ADHD 아이가 받을 수 있는 기본적인 support에 대해 알려주었습니다. 

놀랍게도 미국에서는 ADHD도 특수 교육(IEP)의 대상이 될 수 있다고 합니다. 

IEP까지는 아니더라도 그보다 약한 수준의 504 지원(accomodation)을 받을 수도 있다고 했습니다. 

마리는 하루빨리 학교와 meeting을 잡아서 아이의 상태를 학교에 알리고 아이가 받을 수 있는 모든 지원을 요구하라고 조언해주었습니다. 


'우리 아이는 그래도 학교에서 문제를 일으키지는 않는데'라는 생각에 주저하고 소극적이던 저는 마리와의 대화 이후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마리의 이 말 때문이었습니다.

"You should be the boss in school meeting. 

No request no offer.

아이에게 현재 해줄 있는 최선의 것을 찾는 집중하세요. 

누가 아이의 진단명을 알까 걱정하는건 다음입니다. 

그리고 미국에서 만난 한국인을 한국에 되돌아가서 만난다는 보장도 없잖아요?"


낯선 미국 학교에 다닌 지 4달째. 

물론 우리 아이의 장점은 많지만

학습적으로 작업기억이 낮아 영어 습득이 늦고

스펠링을 외우는 게 너무나 힘듭니다.

글씨도 알아보기 어려운 악필이죠.

핵심내용 파악도 어렵고, 

숙제를 시작하기 어려워 마감 기한 내에 제출한 숙제가 별로 없습니다.

나의 소극적인 생각 때문에

이런 상황을 혼자 감당해내며 적응해왔을 아이가 더 고독한 건 아니었을지 생각하니 뭉클해졌습니다.


물론, 

그동안 집에서 정서적으로 지지해주고 용기와 격려를 주었지만

이곳 미국에서 ADHD 아이가 받을 수 있는 지원을 조금 더 일찍 받게 해주었더라면 우리 아이가 조금 더 수월하게 적응했을까요?


504의 대상이 되면

산만해지지 않도록 교실 내에서 앞자리에 배치되거나

숙제 마감 기한을 더 연장해주고

교사는 지시 사항을 간단히 단계적으로 제시하게 되며

아이가 쉽게 잊어버리는 걸 막기 위해 칠판에 지시내용을 적어놓는다고 합니다. 

시험시간에는 조용한 교실에서 따로 시험을 볼 수도 있다고 해요.

IEP대상이 되면 심리치료 등의 치료까지 학교의 지원으로 학기중은 물론 방학까지 받을 수 있다고 합니다. 

(대략적으로 이러한데 보다 정확한 내용은 학교와 미팅을 통해 알아봐야 합니다)


한국에서는 상상하지도  못했던 지원 내용들을 들으며

우리 아이가 겪는 어려움을 그동안 한국에서는 홀로 감당해내도록 했구나 싶어졌습니다.


마리는 이렇게 덧붙였어요.

"절대 아이가 영어를 잘 말하지 못해서라고 탓하지 마세요. 

아이의 탓이 아닙니다.

아이는 지금 최선을 다하고 있는 거에요."


지난 3년간 한국에서 ADHD 상담을 받으며 했던 깨달았던 것들을 마리의 입을 통해 그대로 들었습니다.

마리가 살던 미국과 제가 살던 한국이 다른 점은.


한국에선 제가 이런걸 깨달았어도 학교에서는 별로 도와주지 못했다는 거죠.

그러나 미국에서는 적극적으로 학생이 학교에서 성공할 있도록 성장하고 있도록 도와주고 있었어요.


마리와 헤어지고난 뒤 문자가 도착했습니다. 


"I had same experience with my son when I arrived in this country and I wish I had someone to help me. So text me anytime."


마리에게 도움을 받은만큼 저도 이곳에서 ADHD 아이들에게 마련된 시스템을 잘 보고 한국에 돌아가

어려움을 겪는 분들에게 도움을 드려야겠다고 생각해봅니다. 


고마워요 마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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