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나를 잘 모른다
나를 잘 아는 건 나의 결심들
가령 하루를 스물네 개로 치밀하게 조각내서 먹는
사과가 되겠다든지
밤 껍질 대신 뼈를
혹은 뼈 대신 고개를 깎겠다는 것
사람의 얼굴 양쪽에는 국자가 달렸으니
무엇이든 많이 담아 올리리라
국자가 아니라 손잡이라든가
그렇다면 뭐든 뜨겁게 들어 올리리라
여하튼 입을 벌리고 살지 말자
나를 나보다 더 잘 아는 건 내 결심들
한밤의 기차에 올라
옥수수를 너무 많이 먹어
입안이 감당 안 되는 느낌처럼
무엇보다 창피스러운 건
떠나면 후회할까 봐 후회를 떠나지 못하는
신선한 베이커리 빵집처럼
언제나 당일 아침에 만들어서
당일 밤에 폐기하는
결심들만큼
영원히 나를 잘 모르는 것도 없다
_김경미, 『당신의 세계는 아직도 바다와 빗소리와 작약을 취급하는지』, 민음사,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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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자가 끊어질 것 같을 때엔 어떻게 견뎠냐고 내게 물었다.
무조건 참았다고 말했다.
가끔 위태하기도 했지만 그래도 잘 참아 왔다고.
그건 내 장점이자 통점이라고.
그런데 다시 생각해 보니 나는 참는 걸 선택했구나, 싶다.
함부로 영향받지 않으려고 참는 걸 선택했구나.
나를 후려치지 않기 위해 참는 걸 선택했구나.
그렇지,
나는 나를 잘 모르지만 나의 결심들은 나를 잘 알지.
가끔 나에게 꿈이 뭐냐고 물어봐주는 사람이 있다.
거기에다 대고 나는 하릴없이 내 꿈에 대해 주절거렸다.
아직도 꿈이 있다는 것은 여태 이루지 못한 것들이 많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그래서 나의 결심들은 종종 나의 욕망을 대변한다.
몇 겹으로 위장한 채 어떤 결심들은 의지박약처럼 부서지기도 하겠지만
허약한 나의 결심들로 나는 조금 반듯해지기도 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