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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미_결심은 베이커리처럼

by 닝닝하고 밍밍한

결심은 베이커리처럼



나는 나를 잘 모른다

나를 잘 아는 건 나의 결심들


가령 하루를 스물네 개로 치밀하게 조각내서 먹는

사과가 되겠다든지

밤 껍질 대신 뼈를

혹은 뼈 대신 고개를 깎겠다는 것


사람의 얼굴 양쪽에는 국자가 달렸으니

무엇이든 많이 담아 올리리라


국자가 아니라 손잡이라든가

그렇다면 뭐든 뜨겁게 들어 올리리라


여하튼 입을 벌리고 살지 말자


나를 나보다 더 잘 아는 건 내 결심들


한밤의 기차에 올라

옥수수를 너무 많이 먹어

입안이 감당 안 되는 느낌처럼


무엇보다 창피스러운 건

떠나면 후회할까 봐 후회를 떠나지 못하는


신선한 베이커리 빵집처럼

언제나 당일 아침에 만들어서

당일 밤에 폐기하는

결심들만큼


영원히 나를 잘 모르는 것도 없다


_김경미, 『당신의 세계는 아직도 바다와 빗소리와 작약을 취급하는지』, 민음사, 2023.


*

창자가 끊어질 것 같을 때엔 어떻게 견뎠냐고 내게 물었다.

무조건 참았다고 말했다.

가끔 위태하기도 했지만 그래도 잘 참아 왔다고.

그건 내 장점이자 통점이라고.


그런데 다시 생각해 보니 나는 참는 걸 선택했구나, 싶다.

함부로 영향받지 않으려고 참는 걸 선택했구나.

나를 후려치지 않기 위해 참는 걸 선택했구나.

 그렇지,

나는 나를 잘 모르지만 나의 결심들은 나를 잘 알지.



가끔 나에게 꿈이 뭐냐고 물어봐주는 사람이 있다.

거기에다 대고 나는 하릴없이 내 꿈에 대해 주절거렸다.

아직도 꿈이 있다는 것은 여태 이루지 못한 것들이 많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그래서 나의 결심들은 종종 나의 욕망을 대변한다.

몇 겹으로 위장한 채 어떤 결심들은 의지박약처럼 부서지기도 하겠지만

허약한 나의 결심들로 나는 조금 반듯해지기도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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