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닝닝하고 밍밍한 Dec 14. 2023

허연_24시 해장국

 24시 해장국




  중력이 없는 곳에서 울고 있다는 느낌

  

  스쳐 가는 생각들

  순서 없이 파고드는데

  시가 아닌 건 없다. 잠들기 다 틀린 새벽

  아무것도 남지 않고 시가 남았다.


  한기가 심장까지 들어왔던

  비바크의 날들과.

  죽었는지 잠들었는지 알 수 없는

  운 없었던 친구들이

  순서 없이 시로 온다.


  유리창 가득 성에 낀 24시 해장국집은

  영하 13도짜리 먼 나라


  입김으로 흘러나온 경전들은

  희게 희게 하늘로 간다.

  말줄임표가 많은 해장국집


  용케 시동이 걸린 첫차는 용역들을 태우고

  태엽 장난감처럼

  위태롭게 멀어졌다.

  기대했던 걸 내려놓았다. 새벽에.


_허연, 『당신은 언제 노래가 되지』, 문학과지성사, 2020, p.58-59.



 *

  서서히 떠오르는 얼굴이 있다.

  문득, 어느 순간, 사라져 버린 얼굴.

  내내 옆에 있었던 것 같은데.


  지킬 게 많은 사람은 언제나 사람을 잃지.

  나는 그녀에게서 커피를 배웠는데.

  아침마다 손에 쥐어 준 커피에서, 아니 당신의 온도에 대해 배웠는데.


  나는 사실 넓지도 깊지도 높지도 않았는데 그 넓이만큼 깊이만큼 높이만큼 멀어졌다. 그런 척 했던 날들은 언젠가 위태롭게 사라진다.


  어디에 있을까.

  그녀를 떠나보내고 나는 오래 시를 썼다.

  시를 쓰는 동안은 나에게로 오는 중이라고 믿을 수 있으니까.

매거진의 이전글 안미옥_캔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