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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닝닝하고 밍밍한 Feb 20. 2024

이장욱_돌이킬 수 없는

돌이킬 수 없는




  내가 뒤돌아보자 당신이 나의 이름을 불렀네.

  나는 미소를 짓고 나서

  열심히 우스운 이야기를 떠올렸지.

  놀라운 속도로 충돌한 두 대의 자동차가

  서로 다른 곳에서 시동을 걸었어.

  부릉부릉, 당신을 좋아한 뒤에

  나는 당신을 처음 보았어요.

  옥상에서 까마득히 저 아래를 내려다보던 여자는

  핫 둘, 핫 둘,

  뒤로 걸어서 계단을 내려갔지만.

  환멸을 느끼기 전에 먼저

  무심해진다는 것.

  겨울이 가고 가을이 오면

  당신이 거기 없겠구나.

  어디선가 말 없는 소녀가 자라고 있겠구나.

  모든 것을 이해할 것 같은 아침이 지나간 뒤에

  아무것도 알 수 없는 밤이 오네.

  혼자 앉아 있는 노인의

  생후 첫 음같이.

  내일 오후에 당신은 나와 함께 드라이브를 하다가

  아침의 현관문을 열었다.

  문을 연 뒤에는

  캄캄한 새벽에 깨어났어.

  두 눈을 커다랗게 뜨고 천장을 바라보는 당신,

  드디어 당신은 당신을 한꺼번에 깨닫고

  돌이킬 수 없는 것은 아직

  시작되지 않았다.


 _이장욱, 『생년월일』, 창비 시집, 2011, p. 24-25


*

  환멸을 느끼기도 전에 먼저 무심해진 어떤 날들을 지나고 있었을 때, 돌이킬 수 없는 것은 아직 시작도 안 했는데 나도 나를 한꺼번에 깨닫기 시작했다. 나의 이러이러함으로 인해 세계는 더욱 침울하고, 어긋나고, 소란한 어느 날, 시에서처럼 점점 말이 없어지는 어떤 소녀가 남몰래 가만가만 자라고 있었다.


  마치 처음 하는 이야기처럼 나는 나를 드문드문 설명하기 시작했다. 누군가가 나의 이름을 불러주길 바라면서, 당신과 내가 우리의 세계가 놀라운 속도로 충돌하기를 원했는지 모른다.  당신으로만 존재했던 어떤 날들을 떠올리며. 모든 것이 그 생각이 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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