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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진 Mar 27. 2023

[리뷰] 트라이건, 그리고 트라이건 스탬피드

사랑을 전파하려는데 사람들이 거부해요

왼쪽은 트라이건(1998), 오른쪽은 트라이건 스탬피드(2023)이다.


  어느 날 SNS에 글 하나가 올라왔다. 동일한 캐릭터를 서로 다르게 그려놓은 장면을 두고 둘 중 무엇이 더 취향이냐며 묻고 있었다. 나는 취향을 고르다 말고 문득 해당 작품이 무엇인지 궁금해졌다. 인터넷에 검색해 보니 [트라이건]과 [트라이건 스탬피드]라는 작품이 함께 나온다. [트라이건]은 원작 만화를 기반으로 한 1998년도 TV 애니메이션이고 [트라이건 스탬피드]는 동일 만화를 리부트하여 올해 내놓은 애니메이션인데, 전자는 고전적이고 개성 있는 2D 그림체가 특징인 반면 후자는 디즈니 애니메이션풍의 3D 그래픽 기술을 사용했다는 차이가 있었다. 여기서 나는 큰 고민에 빠졌다. 캐릭터 디자인 자체는 구 작품이 훨씬 마음에 드는데 화려한 전투 장면은 리부트 작품이 압도적이었다. 하지만 결국 몇 가지 부분 - 구작에서 꽤나 비중 있게 등장한 밀리 톰슨의 캐릭터가 신작에서는 삭제되었고 메릴 스트라이프의 캐릭터 디자인이 혼자 동동 뜨는 점 - 때문에 나는 [트라이건]으로 선회했다. 재미있어서 결국 [트라이건 스탬피드]도 봤으니 고민한 의미가 없지만 말이다.


  [카우보이 비밥]이 우주 공간의 다양한 행성을 배경으로 한 SF라면, [트라이건]과 [트라이건 스탬피드]는 온통 모래사막밖에 없는 행성 노맨즈랜드를 배경으로 한 서부 SF극이다. 서부극의 특징을 가지고 있는 만큼 시원한 총격전이 자주 등장하고, 매력적이고 독특한 무기도 여럿 있어 보는 맛이 일품이다. 특이하게도 주인공인 밧슈는 일반적인 소년만화 주인공들과는 매우 다른 캐릭터성을 가지고 있다. 약육강식 세계의 정점에 설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음에도 답답할 정도로 불살의 의지를 꺾지 않는다. 하지만 총알과 피가 난무하는 사막의 한가운데서 사랑과 평화를 외치고 다니는 그의 행적을 따라가다 보면, 왜 그와 얽히는 사람들이 전부 그에게 감화되는지 알 것 같기도 하다. 러브 앤드 피스!




  주인공 밧슈의 빗자루 머리가 큰 장벽이었음에도 결국 [트라이건]에 푹 빠져 결말까지 달리게 된 것은 주요 인물들의 탄탄하고 개성적인 캐릭터성 덕분이었다. 밧슈는 웬만한 문제는 쉽게 해결할 수 있을 만큼 능력이 출중하지만, 아무도 죽이지 않는다는 신념 하나 때문에 온갖 사건사고를 일으키며 다닌다. 모름지기 서부극이라면 승자와 패자가 존재하는 정오의 결투나 치열한 총격전을 기대할 텐데 이 답답한 주인공은 오히려 아군과 적을 구분하지 않고 모두를 살리려 한다. 하지만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의지와 어떻게든 이뤄내는 불살 원칙은 결국 우리의 마음을 움직인다. 그가 허황된 꿈을 꾸는 것이 아니고 진실로 모두가 사랑할 수 있는 낙원을 갈망한다는 것을 깨닫고 나서도 밧슈의 자취에 반기를 들기는 어렵다. 서로 반대되는 믿음을 가진 인물이 서로의 세상에 녹아드는 과정이 매끄럽게 묘사되는 것도 좋았다. 밧슈의 신념에 거부감을 느끼던, 살아남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건 어쩔 수 없다고 믿던 울프우드가 마음을 여는 지점은 감동적이다.


  재미를 놓치지 않았다는 점도 마음에 든다. [트라이건]의 초반 회차는 거의 개그 만화라고 해도 무방할 만큼 유머러스한 장면이 빵빵 터져 나온다. 촐싹대느라 마냥 가볍게만 보이는 주인공의 행동은 몰입을 방해하기 쉽고, 가벼운 얼굴 뒤에 진중한 면모가 숨겨져 있다는 설정도 잘못 사용하면 극을 진부하게 만들 수 있다. 그러나 밧슈는 가벼움과 진지함의 균형이 완벽한 캐릭터라 오히려 극의 개성을 한층 더 살린다. 덕분에 결말 부분에 자욱이 깔리는 우울함을 어느 정도 희석하면서도 서사가 갖는 무게감을 전혀 흩트리지 않아 좋다. 고급진 블랙코미디 프로그램 같은 느낌이다.




  [트라이건 스탬피드]는 [트라이건]과 비교했을 때 좀 더 암울한 서사를 그려낸다. 그렇기에 개그 요소가 거의 없고 진지함의 극치를 달린다. 전체 러닝타임도 짧기 때문에 밧슈의 믿음을 납득시키는 구조가 아니라 불살과 지배의 신념을 극적으로 대비해서 보여준다. [트라이건]의 느릿하고 여유로운 서사에 익숙해졌다면 살짝 정신없을 수도 있다. 하지만 액션 및 전투 장면은 최고였다. [트라이건]의 액션씬도 화려하지만, 동시대에 방영된 [카우보이 비밥]의 수려한 액션과 비교했을 때 화면이 조금 단조롭고 엉성한 건 사실이다. 하지만 [트라이건 스탬피드]에서는 모든 움직임이 애니메이션 특유의 과장됨을 자연스럽게 녹여내면서도 매끄럽다. 특히 여러 전투 장면에서 등장하는 각종 총기류 액션이 화려함의 극치를 달려 보는 눈이 즐겁다.


  20년 동안 발전한 컴퓨터 그래픽의 덕도 톡톡히 봤다. 전작에서 비슷비슷하게 그려지던 모래 행성의 각 마을은 리부트에서 서로 다른 특징이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새로운 마을 - 그러나 전에도 본 듯한 - 이 등장하면 군데군데 빈 설정을 상상력으로 채워 넣어야 했던 옛날과 달리 각기 다른 건물의 모양새와 사람들의 삶의 형태 등이 자세하게 그려져 훨씬 직관적이다. 또한 인물의 신념과 감정에 무게를 둔 [트라이건]과는 달리, [트라이건 스탬피드]는 인물의 대립과 SF적 설정에 더 큰 비중을 두었다. 기존 작품에서 제대로 드러나지 않았던 플랜트의 원리, 인간과 플랜트의 대립이 일어날 수밖에 없는 이유, 그리고 나이브스의 목적 등이 더욱 구체적으로 나타나며 서사의 개연성이 한층 높아졌다. 세밀하게 연출되어 SF 덕후들의 마음을 울리는 우주선과 미래 기술은 덤이다.


  게다가 사운드 연출은 소름 끼칠 정도로 아름답다. 과거의 작품들이 텅 빈 공간에 은은한 향을 두는 것처럼 가볍게 배경 음악을 배치했다면, 현대 작품은 장면에 맞는 묵직한 사운드를 꽉 채워 넣어 순간의 강렬한 감정을 끌어올린다. [트라이건 스탬피드]는 무거운 서사를 풀어나가고 있기 때문에 이러한 효과가 더욱 강렬하다. 특히 밧슈와 나이브스의 대립 장면에서 흘러나오는 웅장하고 수려한 피아노 선율은 순간적으로 극에 깊이 몰입하도록 돕는다. [트라이건]이 긴 시간 동안 느긋하고 착실히 쌓아간 감정을 [트라이건 스탬피드]에서는 압축시켜 터뜨린다고 해야 할까. 전자가 하나의 완결된 드라마 같다면 후자는 강렬하고 짧은 영화 같다.




  [트라이건 스탬피드]에서 가장 아쉬웠던 것은 진부하고도 폭력적일 수 있는 여성과 임신에 대한 메타포를 놓지 못했다는 점이다. [트라이건]은 밧슈와 나이브스, 그리고 플랜트에 대한 이야기가 단 몇 화에 압축되어 구체적인 착취와 지배 관계, 서로 다른 신념 간의 갈등보다는 주인공이 추구하는 사랑과 평화에 초점이 맞추어졌다면, [트라이건 스탬피드]는 밧슈의 신념과 정면으로 충돌하는 나이브스의 신념과 그가 그러한 신념을 쌓게 된 과정에 대해 집중하고 있기 때문에 다루는 주제가 꽤나 다르다. 하지만 서사적으로 조금 더 보완이 필요함에도 불쾌한 장면을 찾기 힘들었던 [트라이건]과는 달리 [트라이건 스탬피드]는 완벽해진 서사를 뒷받침하는 묘사가 꽤나 노골적이고 불쾌하다.


  태생적으로 어머니 혹은 여성은 삶을 이어가고자 하는 자연의 본성을 그대로 받아들여 실행하는 존재로 생각된다. 수명이 한정된 인간은 재생산을 통해서만 영생을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디지털 매체는 사회적 맥락과 동떨어져 해석될 수 없다. 오래도록 재생산의 도구로 여겨진 여성의 사회적 위치, 그러한 역할에 대한 폭력적이고 강압적인 대우를 고려했을 때 의식은 고차원 너머에 있는 상태로 껍데기를 통해 재생산을 하게 만드는 장면을 좋게 볼 수 없다. 차라리 플랜트에 대해 조금 더 인간의 시선을 초월한 해석을 붙였다면, 하는 아쉬움이 남게 되는 이유다. 에너지가 꼭 남성형과 여성형을 띤 채로 교배의 행위를 해서 다른 에너지를 낳을 필요는 없잖은가.


  캐릭터 디자인에서도 할 말이 많다. 복장을 현대식으로 재해석하는 건 좋은 시도라고 생각하나 기존에 매우 독특했던 캐릭터를 개성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캐릭터로 대체하니 재미가 반감된다(하지만 이 부분에 대해서는 이후 나올 트라이건 차기작 예고로 어느 정도 납득했다). '사회생활에 찌들어 골초가 되어버렸고 계속해서 투덜대지만 위기의 순간에는 든든한 남자 선배' 캐릭터라니, 당장 주위 콘텐츠만 둘러봐도 너무 많고 뻔하다. 캐릭터의 디자인 또한 3D로 바뀌면서 개성이 사라졌는데, 특히 메릴 스트라이프의 경우가 심각하다. 밧슈나 울프우드 등의 나름 길쭉한 캐릭터와 동떨어진 아기자기한 디자인 때문에 자주 몰입이 깨진다. 원작의 메릴이 키가 작고 아담한 여자 캐릭터였다지만 그렇다고 아기처럼 생긴 건 아니었는데 말이다. [겨울왕국]의 한스와 크리스토프가 디즈니식 동글동글한 데포르메에서도 성인의 모습을 갖춘 반면 안나와 엘사는 다른 행성에서 온 외계인 - 과하게 큰 눈과 과하게 작은 입 등 - 처럼 그려진 것과 같은 문제다. 이런 부분에서는 과거가 현재보다 나은 것 같기도. 언제쯤 사람의 모습을 갖춘 여성 캐릭터가 다시 등장할 수 있을까?




  [트라이건 스탬피드]는 캐릭터 디자인 및 오리지널 스토리가 공개되었을 때 기존 [트라이건] 팬들의 큰 반발을 받은 작품이다. 훌륭한 원작 스토리가 있는데 왜 굳이 캐릭터와 스토리를 리빌딩해서 새로운 작품을 만드냐는 의문이 가장 큰 논란이었던 것 같다. 하지만 원작 만화를 보지 않고 [트라이건]과 [트라이건 스탬피드]를 둘 다 본 사람으로서는 각기 다른 재미가 있어 좋았다. 개인 취향으로는 [트라이건]이 훨씬 마음에 든다. 특히 여유로운 흐름과 손맛이 담긴 그림체가 좋다. 획일적이고 완벽한 것보다 가끔 망가지기도 하지만 선과 개성이 살아있는 게 더 와닿을 수밖에 없다. 이런 식으로 말하니 나도 벌써 과거를 그리워하는 옛날 세대가 된 것 같은 느낌.


  삶의 무게 속에 가벼운 웃음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트라이건]을 보자. 슬픔 앞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는 인물들을 따라가며 살아가는 방식에 대한 답을 얻을 수도 있다. 좀 더 SF적인 면모와 화려한 장면을 즐기고 싶다면 [트라이건 스탬피드]를 추천한다. 요즘 시대의 SF가 던지는 물음인 '평등'과 '공존'에의 의문을 깊이 생각하며 더 나은 세상으로 나아가기 위한 치열한 고민을 마주할 수 있다.


  [트라이건]은 모두가 행복할 수 있는 길을 고집하는 주인공의 자취를 따라가는 과정이고, [트라이건 스탬피드]는 인류의 오래된 숙제인 착취와 공생에 대해 깊이 파고든다. 하지만 두 작품 모두 계속해서 던지는 물음이 있다. '너는 누구 편인가'라는 질문. 이 질문은 세상에는 두 부류의 사람, 승자와 패자가 꼭 존재한다는 믿음에 기반한다. 빼앗는 자와 빼앗기는 자가 있고, 폭력을 휘두르는 자와 핍박받는 자가 있다. 그건 어느 정도 사실이다. 지구의 자원은 무한하지 않다. [트라이건]에서 지구의 자원을 모두 축낸 인류가 다른 행성을 찾아 이주한 것이 그가 사실임을 시사한다. 과연 모두가 행복할 수 있는 길이란 참으로 이상적이면서도 어려운 길이다. 하지만 밧슈의 끈질긴 행적과 그 결실은 무언가 더 본질적인 물음을 던진다. 과연 세상을 반으로 갈라야 하느냐고. 눈앞에 그어진 경계선 너머로 향할 수는 없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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