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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진 May 19. 2023

처음 본 바닷속 세상이 그렇게 아름답지 않아서

콜롬비아 타강가 마을에서의 스쿠버다이빙

콜롬비아 북부에 위치한 타강가의 작은 해안가


  콜롬비아는 계획에 없던 나라였다. 베네수엘라와 콜롬비아, 그리고 브라질 쪽은 다른 남미 국가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치안이 안 좋다는 소문이 많았다. 다행히 세 나라에 따로 보고 싶은 명소가 있는 것도 아니었기에 선택지에서 미련 없이 제외할 수 있었는데... 에콰도르 여행을 알아보던 도중 변수가 생겼다. 갈라파고스를 200% 즐기려면 스쿠버다이빙 자격증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 아닌가. 덧붙여 콜롬비아에서 자격증을 수료하는 것이 가장 저렴하다는 조언까지 얻었다. 계획을 수정할 수밖에 없었다.


  콜롬비아의 북부에 위치한 작은 마을 타강가까지 가는 건 고된 길이었다.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비행기로 13시간을 이동해 콜롬비아 보고타 공항에 도착하고, 보고타에서 카르타헤나행 항공으로 환승해서 3시간을 더 이동한 다음, 카르타헤나에서 하룻밤을 묵어야 했다. 다음날 아침, 9시간 걸리는 버스를 타고 산타마르타까지 이동한 뒤 택시를 타고 또 30분 정도를 들어가니 언덕 뒤편에 숨어있던 타강가를 마주할 수 있었다. 꼬박 이틀이 걸린 기나긴 이동이었다.




  스쿠버다이빙 자격증은 다양한 종류가 있는데, 보통 초보에게는 오픈워터와 어드밴스드 정도가 권장된다. 오픈워터를 통해 다이빙 장비의 원리와 사용 방법을 익히며 물에 익숙해지고, 어드밴스드를 통해 다양한 다이빙을 즐기는 방법을 배운다. 속성으로 배운다면 오픈워터와 어드밴스드를 묶어 보통 5일 안으로 끝낼 수 있다. 갈라파고스는 제법 난이도가 있는 다이빙 성지이기 때문에, 우리는 두 과정을 전부 하기로 했다.


  타강가 숙소에 짐을 풀자마자 미리 알아둔 다이빙 샵으로 가 수강 등록을 했다. 붉은색 해마가 그려진 멋진 로고에 감탄하며 들어갔더니 내부까지 깔끔해서 큰 고민 없이 결정했다. 아침에 막 다이빙을 갔다 온 듯한 사람 두 명이 공기통을 내려놓고 물이 뚝뚝 떨어지는 웨트슈트를 벗느라 낑낑대고 있었다. 한 번도 본 적 없던 생소한 장비를 보니 내가 미지의 세계에 발을 내딛고 있다는 것이 새삼 실감 났다.


  비용은 장비 대여와 강습 시 제공되는 간식 등을 전부 포함해서 한화로 약 55만 원. 다른 데서 찾아볼 수 없는 저렴한 가격이었다. 흥정 없이 바로 결제를 하려는데 누가 봐도 뱃사람처럼 생긴 호쾌한 사장이 돈은 나중에 내라고 한다. 강습을 먼저 받고 나서 돈을 지불하는 방식은 처음 겪어봐서 당황스러웠다. 그럴 리는 없겠지만 혹시라도 자격증을 받고 나서 돈을 안 주면 어떡하려고. 아니면, 수강생이 중간에 수강을 포기했을 때 환불하는 절차가 까다롭고 귀찮아서 그런 걸까? 그땐 막연하게 이런저런 추측만 할 뿐이었다.




  첫째 날의 수영장 강습은 꽤 재미있었다. 처음에는 내게 배정된 호흡기가 낡아서 허우적댔지만, 잘 관리된 호흡기를 건네받고 나서는 잘 적응해 나갔다. 물속에서도 편안히 숨을 쉴 수 있다는 것을 깨닫고 부력을 몸으로 느끼는 것은 즐거운 배움이었다. 문제는 바다로 나가 전날 제한 수역에서 배운 것을 복습하는 과정에서 발생했다.


  다음날 아침, 우리는 일찍부터 타강가 해변에 모여 보트에 올랐다. 30분 정도 달려 조류가 약한 다이빙 포인트에 도착하자 배가 닻을 내렸다. 마스크를 꼼꼼히 쓰고 오리발을 신은 다음, 배에 걸터앉아 뒤로 백텀블링하며 차례차례 떨어졌다. 나도 짙푸른 파도 앞에 조각조각 흩어진 용기를 한 줌씩 그러모아 숨을 들이쉬며 수면 밑으로 내려갔다. 물속에서 패닉이 오면 더 위험하다는 것을 명심한 채 자연스레 호흡하려 노력하니 몇십 분 동안은 괜찮았다! 하지만 내가 처음 마주한 물속 세상은 생각보다 아름답지 않았다. 타강가의 바다는 짙고 흐려서 볼 수 있는 게 없었다. 우리를 맡은 친절한 강사 론이 가끔 지나가는 물고기를 발견해 알려줘도, 내 옆을 스쳐 지나가는 것이 흙덩어리인지 물고기인지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로.


  깊은 바다도 아니라서 아래로는 산호와 바위가 무성했다. 어느 순간 부력을 조절하지 못해 바닥에 거의 닿을 만큼 내려갔는데, 그 순간 잘 제어하고 있던 상상력이 폭주했다. 내 앞을 가로막고 있는 거대한 산호 언덕들이 쭈글쭈글한 사람의 뇌처럼 보였다. 웨트 슈트가 날카로운 바위나 산호 조각으로부터 나를 보호해 주리란 말을 들었지만, 산호에 닿기라도 하면 살갗이 찢길 것만 같아 바닥으로 가라앉나 싶으면 몸이 뻣뻣하게 굳었다. 여유가 점점 바닥나기 시작했다. 5분 정도 더 참았을까, 더 이상은 견딜 수 없었다.


  론에게 침착하게 '나 위로 올라가고 싶어'라 수신호를 보내고 오케이 사인을 받자마자 올라갔다. 다이빙 컴퓨터에서 상승 속도가 높다는 경고음이 계속 울렸지만 내 침착함은 거기까지였다. 수면 위로 올라온 내게 론은 자신의 눈을 보고 심호흡을 하라며 나를 달랬다. 그의 간절한 눈빛에 나는 굳게 마음을 먹고 한 번 더 물속으로 내려가 보았지만, 1회 차 다이빙 시간이 끝나기까지 재미를 느끼지도 못하고 그저 물아래서 버텼을 뿐이었다. 그렇게 강습 시작 이튿날, 나는 스쿠버다이빙을 포기하고 말았다.




  타강가에서 스쿠버다이빙 강습을 받지 않으니 시간이 남아돌았다. 타강가는 조그마한 마을이고 관광객보다는 휴가 나온 현지인이 많은 곳이다. 친구는 오전에 강습을 받으러 갔다가 오후쯤 숙소로 돌아왔다. 혼자 아침에 브런치를 먹으러 근처 가게를 돌아다니다가 숙소 앞에 자리를 잡은 얼룩 고양이를 챙겨주고, 해변가를 거닐면 하루치 할 일이 끝났다. 남는 시간 동안은 내가 놓친 기회에 대해 곰곰이 돌아보기도 했다. 그러면서 오히려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더 확실하게 알게 되었다.


  만약 이전부터 스쿠버다이빙에 대한 흥미가 있어 이것저것 정보를 찾아보고 영상도 즐겨 봤더라면 결과는 달랐을 것이다. 나는 무언가를 시작하기에 앞서 그것을 자세히 파악할 시간이 필요한 사람이다. 여러 가능성을 탐색하고 시간을 들여 그것들을 분석하지 않으면 불안을 느낀다. 여행을 와서 내가 해본 적 없던 새로운 것들을 마구 도전하지 않으면 아까울 거라고 생각하는 바람에 나를 몰아세웠던 것을 깨달았다.


  생각을 정리하고 나니 마음이 조금 후련해졌다. 스쿠버다이빙에 대한 안 좋은 기억을 털어버리고 새로이 시작할 여유를 얻은 느낌. 분명 물속 세상은 내 상상과는 다른 칙칙한 풍경이었지만, 그렇다고 지구의 절반이 전부 이런 모습일 것 같지는 않았다. 도전은 양날의 검과도 같다. 처음의 시도는 실패했으나 어찌 되었든 새로운 세상을 겪었고, 이 세상을 다시 제대로 탐색하지 않는다면 진심으로 아쉬울 것 같았다. 한국으로 돌아와서 나는 필리핀으로 스쿠버다이빙 자격증을 따러 떠나기로 했다. 이번에는 처음부터 끝까지 스스로 결정했고, 그렇기에 도중에 포기하지 않을 거라는 확신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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