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너리즘에 빠진 캠핑을 구하는 방법
캠핑에도 매너리즘이 찾아오나
중간에 공백기를 포함해 우리가 캠핑을 시작한 지 5년쯤 됐으니까, 직장인도 그 무렵 매너리즘에 빠지는 경향을 고려하면 그럴 수도 있겠다고 멋대로 생각해본다.
캠핑이 싫은 건 아니지만 번거롭고 귀찮다는 생각이 들 때가 종종 있다. 캠핑 의자에 앉아서 마냥 쉬고 싶은데, 손이 많이 가는 아이 탓에 아이가 잠들기 전까지 계속 움직이며 무언가를 해야 한다. 남편과 둘이 캠핑을 다니던 때보다 분명 지금 더 부지런히 움직이고 있는 것 같은데, 어딘가 게으른 느낌이 드는 걸 지울 수 없다.
짐은 무조건 간편하게 챙기고, 감성템이라고 샀던 캠핑 용품들은 굳이 필요하지 않다면 꺼내지 않는다. 불 피우다 행여나 사고라도 날까봐 불멍도 안 하고, 고기 굽는 건 셋팅이며 뒷정리까지 손이 많이 가니까 안 한다. 배달로 치킨을 시켜먹거나, 캠핑장 오는 길에 닭강정을 사 와서 끼니를 해결한다. 맥주컵은 설거지하기 귀찮으니까 캔 채로 먹고, 멀쩡한 식기를 두고 일회용품을 쓰는 횟수가 늘어난다. 변해버린 캠핑은 과연 애 때문인 건지, 아니면 우리가 게을러진 탓인지 잘 모르겠다.
즐거웠던 세 번의 동반 캠핑
올해만 세 번의 동반 캠핑을 다녀왔다. 한 번은 동갑내기 아이를 키우는 친구 부부와, 한 번은 초등학생/유치원생을 키우는 친구 부부, 그리고 한 번은 아직 아이가 없는 신혼인 친구 부부와 함께했다. 덕분에 게으름 피우던 캠핑 욕구가 스멀스멀 깨어났고, 그간 애 때문에 할 수 없었던 것들을 부지런히 시도해볼 수 있었다. 그리고 누구와 함께 가느냐에 따라 캠핑의 색깔이 조금씩 달라지는 걸 지켜보는 것도 재미있었다.
공동육아 쌉가능! 동갑내기 아기와 함께한 캠핑
또래 아이를 키우는 친구 부부는 가끔 만나서 놀기도 하고, 여행도 같이 가는데 역시 가장 편하다. 아이들의 하루 패턴이 비슷하고, 노는 방식도 비슷하기 때문에 같이 있으면 공동육아의 장점이 백번 발휘된다.
아이들의 즐길 거리를 위해 선택한 키즈 캠핑장은 동물 먹이주기 체험을 할 수 있고, 트램펄린이나 미끄럼틀 같은 놀이 시설이 있어서 낮 시간을 보내기에 딱 좋았다. 애가 둘이다 보니 정신이 없을 것 같아서 바베큐는 포기하고, 아이들 잠드는 시간에 맞춰 치킨을 시켰다. 캠핑이 처음이라는 친구 부부와 모처럼 불도 피워보며 '그래, 이런 게 캠핑이지!' 하고 늦은 밤까지 수다도 즐겼다. 아이들이 새벽같이 일어날 걸 알지만, 잠들기 싫어하는 엄빠들은 이 밤의 끝을 잡느라 좀처럼 잠들 수 없었다.
학부형이 된 육아 선배 친구와 함께한 캠핑
3세 아이를 키우는 내 기준에 아이가 8살 정도 되면 왠지 다 키운 느낌일 것 같았는데, 생각보다 이 무렵 아이들에게도 손이 제법 많이 간다. 물론 우리처럼 일일이 따라붙을 정도는 아니지만, '8살도 아직 애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가 ‘그럼 엄마 아빠가 자유롭게 캠핑을 하려면 아이가 몇 살쯤 되어야 하는 거지?’라는 의문이 들었는데, 부모가 캠핑에서 진정 자유로워지는 나이쯤 되면 아이는 더 이상 캠핑에 따라오지 않겠지…라고 생각하니 어딘가 서글퍼졌다.
우리가 다녀온 이 캠핑장은 물고기 잡기, 공예 체험, 음식 만들기 등 아이들이 체험해볼 수 있는 프로그램이 다양해서 아이 동반 캠핑에 좋은 캠핑장이었다. 아직 어린 우리 아이는 참여가 어려울 것 같아서 따로 프로그램을 신청하지는 않았지만, 바닥에 떨어진 도토리를 줏으며 귀엽게 한참을 잘 놀았다. 친구의 아이들은 좀 컸다고 엄마 아빠 없이도 알아서 잘 놀다 보니 잉여 인력(?)이 많아서 모처럼 고기도 구워 먹을 수 있었다. 또, 친구가 뽁뽁이에 싸서 정성스레 가져온 각종 위스키들로 재미난 밤을 보냈다.
든든한 육아 지원군, 신혼부부와 함께한 캠핑
우리와 함께 첫 캠핑을 온 친구 부부는 결혼한 지 얼마 안 된 신혼부부다. 마침 연휴 기간이기도 했고, 1박으로는 캠핑의 매력을 충분히 즐기기에 부족하니 2박을 해보기로 했다. 사실 연휴 기간이라 대부분 캠핑장 예약이 꽉 차서 선택지가 많지 않았는데, 그중 우리가 선택한 이 캠핑장은 결론적으로 너무너무 마음에 들어서 다시 가고 싶은 캠핑장 중 하나가 됐다.
친구 부부는 아직 아이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아이와 함께 너무 잘 놀아줬다. 아이 역시 낯을 안 가리는 인싸 기질(ㅋㅋ)이 있어서 이모, 삼촌을 잘 따랐다. 그 덕분에 남편과 나는 육아에서 잠시 벗어나 캠핑 살림살이들 셋팅에 전념할 수 있었다.
친구 부부가 준비해온 가리비로 찜도 해 먹고, 좀처럼 사용하지 않는 그릴을 야심차게 챙겨 와 닭고기, 돼지고기도 구워 먹었다. 치킨, 닭강정, 컵라면이 주식이었던 우리 캠핑의 식사메뉴가 이렇게 확장될 수 있다니 감격적이었다.
이번 캠핑의 하이라이트라고 한다면 밤이 되자 쏟아질 듯 무수히 많은 별을 볼 수 있었다는 것이다. 캠핑장이 산속에 있다 보니 빛이 거의 없어서 사진으로 담기지 않을 만큼의 엄청난 별들이 보였는데, 먼저 잠든 아이에게 보여주지 못한 게 아쉬웠다.
적당히 쌀쌀한 날씨에 따뜻한 모닥불을 피워놓고, 맥주 한 모금 머금고 별을 올려다보던 순간이 너무 행복했다. 그동안 이런 깨알 즐거움 없이 캠핑을 다녔더니 거짓말 조금 보태 캠핑과 다시 사랑에 빠진 느낌이었다. 이튿날은 양양 바닷가에도 놀러 가고, 우리끼리라면 불가능했을 카페도 들러봤다. 친구 부부의 존재가 어찌나 든든하고 고맙던지, 같이 캠핑할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역시 2박 하기를 잘했다.
이제 셋이서 캠핑 어떻게 다니지?
세 번의 동반 캠핑을 다녀오고 난 뒤, 우리끼리 캠핑을 가려고 하니 어쩐지 자신이 없어졌다. 캠핑과 육아를 도와주는 동지들의 든든함과 여럿이서 복작복작하게 즐기는 캠핑의 맛을 찐하게 알아버린 것이다. 이래서 사람들은 여러 가족이 모여 동반 캠핑을 다니는 거였나 보다. 이제 우리는 다시 불멍과 바베큐 없는 조촐한 캠핑으로 돌아가게 되는 걸까.
매너리즘을 극복하는 방법은 결국 반복되는 루틴으로부터 변화를 꾀하는 것이다. 아마 우리의 캠핑이 매너리즘에 빠져버린 건, 일상 속 반복되는 육아에 지쳐 캠핑에 온전히 집중할 수 없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매너리즘인지 귀찮음인지 모를 캠핑에 조금씩 변화를 더하는 것이 우리의 다음 도전 과제이며, 분명 그 속에서 또 다른 즐거움을 발견할 것이라고 믿는다.
아무리 캠핑이 지겹다고 한들 결국 우리는 캠핑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라, 내년 봄이 되면 다시 캠핑을 떠날 것임을 안다. 핫딜가에 쟁여둔 워터저그를 사용해보는 것, 도전해보지 못했던 요리를 해먹어보는 것, 캠핑룩을 맞춰 입어보는 것, 그리고 같이 캠핑 떠날 친구를 꼬시는 것(ㅋㅋ), 우리가 앞으로 해볼 소소한 변화가 될 수도 있겠다. 그리고 지금보다 더 자라날 아이 덕분에 캠핑이 조금 편해질 수 있을 것이라는 기분 좋은 헛된 기대도 한 번 품어보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