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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즐겁꾼 Jun 22. 2022

기찻길 옆 오막에서 아기 잘도 잔다더니

기차 소리에 잠 못 드는 아기와 함께한 캠핑


기찻길 옆에서 잘 자는 아기는 따로 있나


기찻길 옆 오막살이 아기아기 잘도 잔다는 동요가 있지 않던가. 찾아보니 1947년에 발표된 곡으로, 가사에 따르면 기차 소리가 요란해도 아기가 잘 자고 옥수수도 잘 큰다는 내용이다. 빛바랜 흑백 사진들이 알려주는 그 시절 철도의 모습이라고 한다면 피난민들이 기차에 올라타 있고, 증기기관차라고 해야 맞을 비주얼로 거대한 증기를 내뿜으며 철길을 칙칙폭폭 달린다.


과거와 달리 요즘 기차는 대부분이 고속 열차라 아무래도 칙칙폭폭보다 쌩하는 소리에 가까워서인지, 이제는 기차 소리를 자장가 삼아 잠들기는 조금 어려운 시대가 된 건 아닌가 싶다. 아니면 조심스럽게 예상하건대 기찻길 옆에서 잘 잔다는 동요에 나오는 주인공 아기는 어디서나 잘 자는 순둥이는 아니었을까?



캠핑의 변수는 아이의 잠에 달려있다


지난여름, 우리가 다녀온 캠핑은 기찻길 옆에 있던 캠핑장이었다. 현장에서 사이트를 고르는 시스템이었는데, 캠핑장 옆으로 나있는 기찻길과 터널을 보고 설마 저기로 기차가 지나다니는 건가 했더니 진짜 다닌다. 처음엔 얼마나 시끄럽겠어~라고 가볍게 생각했는데, 때마침 지나가는 KTX 한대가 ‘응 아니야~’라고 대답하듯 굉음(?) 같은 소리를 내며 지나갔다.



사실 어른도 깜짝 놀랄법한 소리였어서 아이가 괜찮을까 내심 걱정이 됐다. 우리는 캠핑의 가장 큰 변수를 뭐니 뭐니 해도 아이의 잠이라고 늘 염두에 두고 다닌다. 왜냐하면 이전 글에서도 거듭 설명해왔지만, 우리 아이는 태어나서부터 잠에 꽤 예민한 친구라 잠귀도 밝은 편이고, 익숙한 곳이 아니면 잘 못 자고, 피곤하면 피곤하다고 잠투정하고, 안 피곤하면 안 피곤하다고 잠투정하는 스타일이기 때문이다.(이렇게 적고 보니 이런 애를 데리고 캠핑을 용케도 다닌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이날도 아이가 오늘 밤에 잘 자줄까 하는 기대 반 염려 반으로 캠핑을 떠났는데, 심지어 예상치 못했던 기차마저 지나다닌다. 그런데 아이는 의외로 기차 소리에 아랑곳 않고 잘 놀았다. 나의 괜한 노파심이었나, 아이 귀에는 소리가 크게 안 들리나 보다 생각했다.(그럴 리가 없잖아) 캠핑 가면 바닥에 굴러다니는 파쇄석만 있어도 잘 노는 아이여서 돌을 가지고 놀거나, 캠핑장에 있는 닭, 고양이들도 구경하며 시간을 보냈다.


땡볕이 조금 가라앉은 오후가 되니 캠핑을 하러 온 아이들이 한데 모여 어울려 놀고 있었다. 다들 캠핑장에서 처음 만난 사이일 텐데 시원시원하게 통성명을 나누며 친밀하게 놀고 있는 광경이 신기했다. 심지어 아이들은 한없이 쬐깐한 우리 아이도 그 틈바구니에 끼워 넣어 데리고 놀아줬다. 이렇게 컨디션 좋게 잘 노는 거면 밤에도 문제없을 것 같았다.(희망고문)



덩그러니 빈 텐트를 놔두고 나온 밤


해가 지고 추워지기 전에 아이를 씻겼다. 책도 읽고 장난감도 가지고 놀고 일련의 의식을 치른 뒤 밤잠을 재우기 위해 이너텐트 안으로 들어갔다. 눕자마자 밖으로 기차 한 대가 지나가는 소리가 들린다. 어둑한 텐트 안에서 듣는 기차 소리에 무서웠는지 잠시 칭얼거렸지만, 기차가 떠나고 조용해진 틈을 타 아이는 마침내 잠이 들었다.


늦은 저녁을 먹기 위해 밥상을 세팅하고 먹어보려 하니까 기차가 또 지나갔다. 막차가 언제인지 찾아보니 밤 10시~11시쯤 되는 듯했다. 어째 영 불안한데… 하면서 다음 기차가 올까 봐 조마조마해하고 있던 찰나, 그 후로 기차가 한 두어 대쯤 더 지나가고 아이는 결국 잠에서 깨어나 엉엉 울기 시작했다. (기차가 체감상 지하철만큼 자주 지나다녔다...)



우는 아이를 보니 쉽게 그칠 울음이 아닌 것 같아서 급하게 시동을 걸고 시댁으로 향했다. 우리는 아이가 잠에 예민하다 보니 캠핑 지역을 선정할 때 만약을 대비해 아이를 재울 수 있는 가족들의 집이 있는 지역 위주로 캠핑을 간다. 이 날의 캠핑장이 있던 제천은 시댁이 있는 곳이라 우선 잠은 시댁에서 자고 다음날 다시 캠핑장으로 오기로 했다.


차에서 잠이 든 아이를 시댁에 눕히고, 아이는 그렇게 아침까지 편안하게 주무셨다. 다음날 캠핑장으로 돌아와 살림살이를 정리했다. 새로 산 텐트에서는 결국 자보지도 아니 제대로 누워보지도 못하고 접어버렸다. 어제까지만 해도 아이는 신나게 잘 놀았고, 주변 형, 누나들과 어울려 노는 모습을 보며 이것이 캠핑 육아의 참맛!이라고 좋아하며 밤에도 잘 자주지 않을까 하는 작은 희망을 품어봤는데, 결국 이렇게 한 것도 없이 하룻밤 캠핑이 끝나버렸다.


아무도 없는 빈집 텐트와 야무지게 정리한 살림살이


캠핑장에서 돌아오는 길, 괜히 아쉬워서 캠핑용품점에 들러 애꿎은 캠핑용품을 구경했다. 이러다 또다시 캠핑을 갈 수 있긴 한 건지, 다음 캠핑은 언제가 될는지 잘 모르겠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우리 아이는 그 시절 동요의 주인공 아기처럼 기찻길 옆에서 잘도 자는 아기는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다음 캠핑은 기차가 지나다니지 않는 조용한 캠핑장으로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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