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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즐겁꾼 Mar 19. 2023

아이가 어린이집에 가자 생기는 일

비로소 다시 시작된 엄마의 시간


가정보육을 오래 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두 돌만 되면 당장 기관에 보내리라 했건만, 지난해 어린이집 실패를 맛본 덕에 30개월이나 집에서 아이를 끼고 지냈다. 그때는 어린이집을 두 달 만에 퇴소하면서 하늘이 무너지는 기분이고, 세상이 붕괴되는 느낌이었는데 지나고 보니 퇴소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그간의 가정보육은 전쟁터 같았지만, 지금이야말로 아이가 의사소통도 되고, 또래 친구들과 노는 걸 좋아해서 어린이집에 다니기 적기라는 확신이 들었다.


<지난 글>

https://brunch.co.kr/@skgus5130/40 

 

집 가까운 어린이집에 새 학기 입소 확정을 받아두고 봄이 오길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어쩌다 들러본 아빠의 직장 어린이집에 마음을 홀라당 빼앗기고 말았다. 넓고 쾌적한 시설은 물론, 아이를 데리고 갔더니 원래 다니는 애처럼 잘 어울려 놀길래 이번엔 어쩐지 느낌이 좋았다. 무엇보다 당장 입소가 가능하다는 말에 거의 영혼을 팔 듯 결정하게 된 것이다.


1월 2일, 새해가 밝자마자 우리는 어린이집 생활을 시작했다. 첫날부터 엄마와 분리를 하게 된 아이에게 조금 이따 만나자는 인사를 하자, "엄마.. 힝..." 하면서 울상을 짓더니,  "빠방 보러 갈까?" 하는 선생님 말에 아이는 곧장 어린이집으로 들어갔다.


씩씩한 등원길


생각보다 아이는 엄마가 없어도 재밌게 잘 놀았고 첫 주부터 1시간, 2시간, 3시간씩 점차적으로 적응 시간을 늘려갔다. 이런 수월함은 기대한 적이 없었는데, 마침내 2주 차에는 낮잠까지 성공했다. 두 달이 걸리든 세 달이 걸리든 상관없다고 생각했건만, 예상보다 훨씬 빠른 속도였다. 행여나 작년 어린이집의 적응 실패 경험이 트라우마로 남아서 이번에도 기관 적응을 어려워하면 어떻게 하지 걱정했는데, 그 걱정이 무색해질 만큼 아이는 순조롭게 어린이집에 적응해 줬다. 좋은 타이밍에, 아이와 맞는 좋은 어린이집과 좋은 선생님들을 만난 것 같아서 감사했다.


신나는 어린이집 적응기




아이가 어린이집에 가면 하고 싶은 일들이 많았다. 그중에서도 단연 첫 번 째는 운동이었다. 아이를 돌보며 체력이 많이 망가지다 보니 아이에게 짜증도 내게 되고 부정적인 생각도 늘어나는 것 같았다. 미혼일 때부터 요가를 좋아했는데, 오로지 호흡에만 집중하며 땀 흘리는 귀중한 시간을 다시 느껴보고 싶었다. 그래서 요가를 다시 시작했고, 아파트 지하에 있는 헬스장에도 등록했다.  


4년만에 다시 요가를 시작했다


‘혼밥’도 하고 싶던 일들 중 하나였다. 오전에 운동을 하고 집에 오면 혼자 점심을 먹는다. 아이와 집에 둘이 있으면 티비를 틀어주는 동안 내 점심은 후다닥 먹고 설거지를 하는 일이 다반사인데, 혼자 있으니 먹고 싶은 것들을 사 먹기도, 해먹기도 하며 여유롭다 못해 게으르게 식사를 할 수 있게 됐다.


어느 날은 피곤하면 낮잠도 잤다. 아이가 자는 동안 항상 같이 낮잠을 자곤 했는데, 아이랑 함께 자면 아침이든 낮이든 내 의지에 관계없이 일어나야 했으나, 빈 집에서 혼자 자는 낮잠은 내 맘대로 잠들었다 일어날 수 있다. 아무 일정 없이 집에서 쉬며 유튜브도 보고, 인스타의 바다도 허우적거리면서 바보상자 같은 핸드폰을 한참이나 들여다보고 시간을 낭비해보기도 했다.


약 8시간 정도 되는 자유시간 동안 나름 여유롭게 외출도 해볼 수 있었다. 친구를 만나 맛집에서 맛있는 것을 먹고, 여유롭게 커피를 마시면서 수다도 떠는 호사스러운 일상을 누려봤다. 집 근처 도서관에 가서 읽고 싶던 책을 빌려 읽기도 하고, 필요한 물건을 사러 쇼핑도 가고, 내친김에 막혀있던 귀 피어싱도 다시 뚫었다.


한낮의 여유




아이가 어린이집에 갔을 뿐인데, 육아로만 가득했던 지난 몇 년간의 내 삶이 다른 것들로 채워지기 시작했다. 가끔 “이렇게 행복해도 되나?”, “이렇게 즐거워도 되는 건가?”하는 의심도 들었다. 마치 30개월 동안 멈춰있던 '나'라는 시계가 다시 돌아가기 시작한 것 같았다.


아이가 언젠가 어린이집에 가면 해보고 싶다고 생각해 오던 일들을 하나씩 해나갔을 뿐인데, 그것은 마치 어떤 연쇄작용처럼 앞으로 내가 살아가고 싶은 삶의 고민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하고 싶은 일에 다시 도전하기 위한 계획을 세우고, 실행을 위한 첫 발자국들을 내딛으며 드디어, 비로소 ‘나’의 미래를 그려볼 수 있게 된 것이다.


아이가 하원하는 순간부터 나는 다시 엄마라는 직업으로 돌아가지만, 기나긴 가정보육 끝에 만난 어린이집 덕분에 내 삶에도 작은 새싹이 돋아났다. 아마 자유로운 엄마의 날들이 그리 길진 않겠지만, 그저 무사히 어린이집에 (금방) 적응해 준 나의 사랑하는 아이에게 고마울 따름이다!


하원하고 만나면 더 반가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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