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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즐겁꾼 May 31. 2024

딱히 좋지도 않으니까 좋아요는 이제 그만 누를래요

결코 쉽지 않은 인스타그램과 멀리하는 삶


성실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브런치를 하고 있고, 유튜브 동영상도 보는 주제에 디지털 디톡스를 하고 싶다니? 우울하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다는 심산인 건가. 아무리 봐도 앞 뒤가 안 맞는 말이다. 하루종일 인스타그램의 구천을 떠돌며 딱히 좋지도 않은데 좋아요를 누르는 삶이 지겨워 죽겠다. 궁금하지도 않은 연예인들의 근황과 예능 정보를 강제로 주입당하는 것도 싫다. 그놈의 소통도 이제 좀 안 하면 좋겠다.


알아...안다구..


사실 나는 소셜미디어에 우호적인 사람이었다. 중고등학생 때는 싸이월드로 시작해 대학생이 되고부터 결혼을 하고 나서도 꽤 오랜 시간 페이스북을 열심히 해왔으니 인생의 절반 이상을 소셜미디어와 함께했다. 인스타그램은 긴 글을 쓰기 불편하다며 가입을 차일피일 미뤄오다가, 페이스북의 담벼락이 휑해지고 인스타그램이 주류가 되어버린 어느 날 느지막이 인스타그램에 가입을 했다.


애를 낳고 나니 인스타그램은 내 인생의 유일한 소셜미디어이자 취미 생활로 등극했다. 요리 레시피나 짧은 운동 게시글들을 저장해 두기 바빴고, 육아의 애환이 담긴 짤막한 웹툰이나 실없이 웃긴 게시글을 찾아보는 것도 쏠쏠하게 재미있었다. 내가 좋아할법한 게시글들을 어찌 그리 잘 선별하는지, 돋보기 버튼만 누르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핸드폰을 들여다보게 됐다. 가끔 짬만 났다 하면 무조건 인스타그램부터 켰다. 인스타그램에 잠식당한 내 삶은 무슨 해프닝이 생기면 인스타그램에 업로드할 생각부터 했다. 맛있는 걸 먹고, 좋은 걸 보고, 그걸 인스타에 올리지 않으면 마치 그 의미가 퇴색되기라도 하듯 굴었다.


기록이라는 명분으로 ‘나 이렇게 잘살고 있어요’라고 만천하에 알리고 싶었던 건지, 아니면 남들이 하니까 그냥 따라 하고 있었던 건지는 잘 모르겠다. ‘이게 아닌데’라는 생각은 늘 마음 한켠에 있었지만, 인스타그램은 엄마의 바쁜 일상 속 휴식이라고 변명했다. 따지고 보면 그것은 나를 그렇게 편하게 만들어주지도 않았다. 나보다 더 행복해 보이는 사람들이랑 비교하기 바빴고, 그들의 기준에 못 미치는 내 삶을 비관하는 지경에 이르기도 했다.


가끔 아이 앞에서 습관처럼 인스타그램을 열었다가 릴스 동영상이라도 흘러나오면 “엄마 이게 뭐야?“라고 묻는 아이에게, ”응 어떤 모르는 사람이야“라고 대답하는 삶이 피로해졌다. 그러게 말이다. 왜 엄마는 널 앞에 두고, 그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이 움직이는 동영상을 쳐다보며 시간을 쓰고 있던 걸까.




아침 10시부터 오후 4시, 아이가 유치원에 가고 나에게 주어진 시간을 낭비 없이 사용해야 한다는 의무감으로 하루를 시작하곤 하지만, 집안일을 하다가도, 점심을 다 먹고 앉아서 한참을, 일을 하다가도 습관처럼 멍하니 인스타그램을 쳐다본다. 하루의 그 시간들을 다 합치면 얼마나 될까? 하루에 목표했던 일들을 다 끝내지 못하면 ‘인스타만 안 봤어도 다 할 수 있었을 텐데.‘라고 죄 없는 인스타그램을 탓했다.


평소에 즐겨 보던 인스타그램 계정이 어느 날부터인가 광고와 물건 팔이로 변모하기 시작하고, 우리 아이 이렇게 이렇게 키우세요~ 하며 장황하게 육아 팁을 알려주는 육아 만렙 인스타그래머는 이제 막 돌쟁이, 두 돌 쟁이를 키우는 엄마다. 그들이 나쁘다는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내 인생에 딱히 좋은 영향도 아니었다. 인터넷 세상에 대한 환멸감을 적립해 오던 나는 어느 날 갑자기 충동적으로 인스타그램 어플을 삭제했다. 정나미가 떨어졌다.


인스타그램을 끊은 지 며칠이 지나자 어딘가 허전한 기분이 드는 건 부정할 수 없었다. 그것도 그럴 게  인스타그램은 거의 루틴한 일과나 다름없는 일이었다. 핸드폰을 들고 엄지손가락이 목적을 잃은 채 방황하다가, '아, 나 인스타그램 지웠지' 하면서 핸드폰을 내려놓는 날들이 반복됐다. 그렇게 두 달쯤 지났을까, 핸드폰을 만지는 시간이 확연히 줄었다. 무엇보다 소셜미디어 속 모르는 사람 혹은 아는 사람과의 비교를 끊어내니 마음이 편하다. 나를 짓누르고 깎아내리던 습관을 버려내니 비로소 자유를 얻은 기분이 들었다.


급하게 해야 할 일이나, 무언가를 검색할 일 외에는 아이 앞에서 핸드폰을 보는 횟수도 줄었다. 세간의 중요한 뉴스들은 내가 알아서 찾아보면 됐고, 누가 이혼을 하든 음주운전을 하든 내 인생과 상관없는 연예인들의 단발성 뉴스들도 필터링할 수 있게 돼서 속 시원했다. 진작 끊을 걸 그랬다.




그럼에도 세상은 아직 인스타그램 위주로 돌아가는 건지, '공식 인스타그램에서 확인하세요', '인스타그램에 태그 하시면 공짜로 드려요' 등의 안내문을 보게 될 때면 어쩔 수 없이 타협에 실패하고 인스타그램을 열게 됐다. 게다가 나는 인스타그램에 아이 사진을 올리는 계정과 내 일상을 올리는 계정 두 개를 가지고 있었는데, 아이가 태어나고부터 쭉 성장을 기록해 오던 아이의 계정은 차마 방치할 수가 없어서 한 달에 한두 번쯤은 앱 설치와 삭제를 반복하며 아이의 사진을 올렸더니, 인스타그램은 또 다시 나를 돋보기의 바다에서 유영하게 만들었다.


인스타그램과의 완전한 작별이란, 계정을 탈퇴하지 않고서는 결코 불가능한 일일지도 모르겠다. 바보 같은 나는 아직도 인스타그램에 꼬리가 물려 있다만, 인스타그램을 멀리하려고 했던 시도가 유의미한 건 나의 자유 시간을 더 이상 인스타에 쏟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일상의 중요한 순간들이나 멋진 풍경, 맛있는 음식을 소셜미디어에 공유하지 않아도 경험의 가치를 충분히 곱씹을 수 있게 됐다. 최신 유행 정보를 습득하는 속도는 느려졌을지 언정, 필요한 정보만 내가 스스로 선택할 수 있게 된 것은 ’이놈의 정보화시대에서 자발적 디지털 원시인이 되겠습니다!‘라고 선포한 것만 같은 기분이라 어쩐지 두근두근하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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