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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즐겁꾼 Jan 07. 2025

두껍아, 새 집 줄게 헌 집 다오(1)

신축 아파트 팔고 구축 빌라로 이사 갑니다


결혼 7년 차, 벌써 네 번째 집이다. 데이트하러 자주 다니던 동네에 마련했던 신혼집, 잠깐 얹혀살던 친정집, 어느 날 거대한 곰 두 마리가 나오는 꿈을 꾸고는 덜컥 청약에 당첨돼서 살던 집, 그리고 지난해 봄 새로 이사 온 지금 집까지.


지금 집으로 이사를 오던 날, 이삿짐을 옮겨주시던 분들께 “내 집 장만해서 좋으시겠어요”라는 인사를 들었다. 출발지의 새 집은 전셋집이고, 조금 더 넓어진 도착지의 헌 집은 매매로 마련한 집일 거라고 추측한 결과의 축하였을 테다. 그것은 이사 전문가의 시선이었든 아니든 헌 집에서 새 집으로 가는 이사가 보통의 이사일 거고, 나조차도 그렇게 생각했으니 그 흐름을 거슬러가는 이사에는 나름의 우여곡절이 많았다.




청약으로 얻었던 25평 남짓의 신축 아파트는 방 세 개에 화장실 두 개, 셋이 살기 딱 좋은 집이었다. 공장에서 찍어낸 듯 바르고 깔끔한 내부와 널찍한 주차장, 지하 주차장과 연결된 병원과 약국, 월 만원에 이용할 수 있는 헬스장, 친정과 가깝고 서울과 접근성이 좋은 부분까지 모두 다 마음에 들었다.


한 3년쯤 살았으니 자연스레 동네에 정도 들었다. 자주 가던 집 앞 시장은 집 밖에 잘 나가지 않던 나를 반쯤 강제로 떠밀던 유일한 외출 장소나 다름없었다. 집에서 아이를 끼고 육아를 하다 보면 남편이 퇴근하기 전까지 성인과 대화할 일이 없는 날이 많았는데, 뭐라도 해 먹어야 하니까 유모차에 아이를 태워 장을 보러 나가면 아이에게 다정한 인사를 건네주시던 정육점 사장님이 있었고, 수다스러운 견과류 가게 사장님과 날씨가 어쩌네 저쩌네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어쩐지 사람 사는 냄새가 나서 큰 시장을 품고 있던 그 동네가 좋았다.


그런데 잊을만하면 수시로 날아오는 성범죄자 알림 우편은 그런 내 마음에 찬물을 끼얹듯 이사를 재촉했다. 어쩌다가 우편에 적힌 성범죄자의 거주지를 지도 앱으로 검색해 보곤 했는데, 우리가 종종 지나다니던 길이다. 심지어 그 근처에는 초등학교도 있다. 가끔 유모차를 끌고 그 주소의 길을 지나가는 날이면 ’이쯤이 그 새끼 집일까?‘하는 상상을 해보다 이내 드는 찝찝한 기분을 지울 수 없었다.


아마 아이가 없었더라면 거주 환경에서 오는 쾌적함이 꽤 컸기 때문에 그 우편을 그리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을 것도 같다. 그런데 이 동네에서 자라날 아이를 생각하면 인상이 절로 찌푸려졌다. 맹모삼천지교까지는 아니지만 어쨌든 아이가 자라날 환경은 중요하다고 생각했으니까 초등학교 전에는 무조건 떠야 한다고, 자리 잡기에는 기왕이면 빠르면 좋겠다는 것이 우리의 생각이었다.


마침 남편도 직장을 이동해야 하는 시점이었으니 이사에 더할 나위 없는 적기이긴 했다. 남편의 직장이 있는 지역 내에서 두세 군데 정도로 동네를 좁혀 임장을 다녔는데, 슬프게도 우리의 예산 내에서 보는 집들의 크기와 컨디션은 얼추 비슷했다. 20평대 초반의 구축 아파트, 쓸데없이 넓은 베란다, 식탁이 아예 들어갈 수 없는 비좁은 주방, 딱히 역세권도 아닌 위치, 여기나 저기나 다 똑같이 생긴 그런 아파트. 만약 그 위치가 서울이라면 산중에 사는 건가 싶은 정도의 언덕이 옵션으로 추가됐다.


‘동네가 더 나으니까’라는 이유로 받아들이기에는 원래 살던 신축 아파트에 비해 좋은 구석이 하나도 없었다. 이사 가면 괜히 우울함만 더하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더 좁아진 집, 더 낡아진 집을 보면서 그래도 아이가 학교 다니기에는 훨씬 낫겠지, 살다 보면 나중에 집값이 오르긴 하겠지 하고 위로하는 삶은 솔직히 자신이 없었다.


설상가상으로 집을 내놓고도 부동산에서 연락이 하나도 없었다. 우리 집은 나름 로열동 로열층인 데다가 그렇다고 비싼 가격에 내놓은 것도 아니었는데 말이다. 부동산에서는 집값이 올라서 거래가 주춤한 시점이기도 하고, 갭투자하는 사람들이 있어줘야 거래도 생기는데 여기는 그런 게 잘 없다며, 적어도 나에게 그 말은 ‘여기는 그렇게 매력적인 동네가 아니에요’라는 이야기로 들렸다. 이사 가야겠다는 마음에 쐐기를 박았다.


전세 줄 거 아니면 그냥 싸게 팔고 싸게 사자는 생각으로 가격을 급매급으로 확 낮추니 사람들이 집을 보러 오기 시작했다. 집을 깨끗하게 정리하고 매일같이 청소를 해뒀다. 그리고 집에 들어오자마자 잘 보이는 곳에 가족사진을 뒀다. 다소 인위적일지라도 우리 가족의 행복한 순간을 보여주면 왠지 이 집에서 좋은 느낌이 날 것 같았다.


그 작전이 통한건지 두 번째로 집을 보러 온 사람과 곧장 계약을 했다. 오후 햇살이 가장 많이 들어오는 오후 시간대에 집을 보러 온 것도, 아이가 없는 신혼부부인 그들에게 귀염지게 인사를 건넨 꼬맹이의 역할도, 모든 게 타이밍이 맞아떨어진 느낌이었다. 근처에 사시는 친정 엄마의 병간호를 위해 이 동네로 오려고 한다는 그들의 상황도 좋은 이슈였다. 우리보다 형편이 나아보이시는 분들이었는데, 깎아달라고 하셔서 나중에 딴말하지 마소 하는 입막음 느낌으로 기분 좋게 100만 원 깎아드렸다.





집이 팔리고 급히 새 집을 구해야 했다. 그게 2월 초였는데, 가급적 새 학기인 3월에 맞춰 이사를 가고 싶은 마음에 조금 서둘렀다. 후보로 정해뒀던 아파트들로 한번 더 집을 보러 갔다가 대뜸 남편이 ‘여긴 어때?’ 하고 데려간 곳에 마음을 빼앗겨 결국 집을 판지 3일 만에 새로운 집을, 그것도 후보로 생각 중이던 것과는 딴판의 집을 사버렸다. 일주일 사이에 억 단위의 돈을 굴리니 부자가 된 것 같은 착각도 들었다.


우리가 매매한 대단지 빌라의 집은 엘리베이터가 없는 1층 집이다. 조용하고 평화로운 동네, 초등학교와 유치원은 도보 5분 이내, 남편의 직장과는 차로 10분 거리, 집 안은 30평대 널찍한 크기, 지상에 차가 다니지 않아 안전하고, 30년 된 구축이지만 조경이 관리된 깔끔한 단지, 집 앞에 딸린 정원, 주차난 없는 지하주차장, 근처에는 산과 공원, 도서관, 관공서, 백화점 등등 장점을 나열하자니 끝도 없다. 게다가 예산 내에서 인테리어까지 가능하게 됐으니 손해 보는 장사는 아닐 것 같았다.


처음 집을 구하며 세웠던 기준은 직주근접, 유치원과 학교가 가깝고 안전하게 등하교가 가능할 것, 평지, 주변에 녹지가 있을 것, 도서관이 가까울 것, 가까이에 마트가 있을 것, 주차가 어렵지 않으면 땡큐 정도였었는데 그 기준을 다 부합하고도 남았다. 양보하고 포기할 건 그저 구축이라는 점, 행정 분류상 아파트가 아니라는 점, 1층이라는 점밖에 없었으니 망설일 여지가 딱히 없었다. 그 마저도 영유아가 있는 가족에게 1층살이는 장점도 많았으니까 마다할 이유는 더더욱 없었다.


가계약금을 입금하고 가족들에게 새 집을 계약했다는 소식을 알렸다. 그런데 왜 아파트가 아니라 빌라를 산 거냐며, 왜 하필 또 1층 집인 거냐며 핀잔을 들었고, 가계약금 포기하고 다른 집을 봐보라는 소리까지 들었다. 부동산의 가치가 중요하다는 건 잘 알지만 실거주의 가치를 우선하면 잘못된 선택이 되는 걸까?


영끌해도 이게 최대치인데 어떡해요! 잔소리할 거면 대신 돈으로 주시던가요!라는 말이 턱 끝까지 차올랐지만, 우리가 생각하는 이 집의 가치에 대해 설명하고 설득(?)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굳이 그럴 필요도 없었는데 말이다. 축하받지 못한 새 집 장만에 어쩐지 서운한 마음도 들었지만, 우리가 판단한 기준들이 결코 틀리지 않았음을 증명해 내는 건 그저 우리 셋이 행복하게 잘 살면 되는 거라고 생각했다.


3월 중순 입주를 목표로 곧바로 인테리어 업체와도 계약을 마쳤다. 인테리어가 얼마나 어마무시한 일인지 몰랐던 그때의 나는 우리의 헌 집이 신나게 부서지는 걸 보면서, 구축의 집이 어떻게 탈바꿈하게 될지 잔뜩 기대에 부풀어 있었다.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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