캠핑카 세계 여행 에세이 103 - 터키 파묵칼레
에페소스부터 파묵칼레까지는 약 200km 정도이다. 3시간 조금 넘게 걸리는 거리다. 이 구간에서는 고속도로가 없기 때문에 시간이 꽤 걸린다. 파묵칼레에 거의 다 도착해서 간단하게 식사를 하는데 아내가 제안을 한다.
"파묵칼레에서는 호텔에서 쉬었다가 가자?"
아내는 파묵칼레에 대하여 악평을 한 블로그를 보았는지 크게 기대를 하지 않고 있다. 다만 여기에서 쉬어가자는 것이다.
사실 파묵칼레에서는 적당한 캠핑카 정박 후보지가 없어서 신경이 쓰였던 터라 흔쾌히 "O.K. "
차 안에서 파묵칼레에 있는 호텔 중 저렴하면서 평가가 가장 좋은 곳을 예약한다. 하루만 머물려고 했던 그 작은 호텔에서 우리는 3일을 보냈고 2019년 1월 1일에 나왔다. 작은 방이지만 매우 깨끗하고 조식도 좋은 조용한 호텔이었다.
호텔에 체크인을 하고 파묵칼레 공원에서 산책을 하고 허름한 식당에서 세트 메뉴 두 개를 시켜 먹었다. 가격도 30리라. 참 착한 가격이다.
다음날 아침 늦게 까지 게으름을 피워본다. 그 덕분에 11시가 되어서 파묵칼레에 입장했다. 유적지 보호를 위해 맨 발로 올라가야 한다. 날씨가 추워서인지 입구 쪽에 살얼음이 얼어 있다. 엄청 차갑다. 물이 있는 곳에 발을 담그니 미지근하다. 다행이다. 조금 더 올라가니 물이 훨씬 따뜻해진다. 너무 추워서 올라가지 못하겠다던 아내도 흘러 내려오는 물이 따뜻해지자 금방 즐거워한다.
아내는 지금 파묵칼레의 풍경에 완전히 빠져 버렸다. 하얀 석회암 위로 흘려내리는 온천물과 크고 작은 웅덩이가 만들어내는 풍경은 그야말로 환상 그 자체이다. 흘려보내는 물이 적어서 인지 사진보다는 풍경이 덜 아름답지만 말이다. 그래도 아내는 계속해서 감탄, 감탄이다.
겨울 파묵칼레가 형편없다는 악평을 블로그에서 보았던 아내는 오지 말까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자기야, 블로그 보고 오지 않았으면 후회할 뻔했어. 너무 이쁘다.”
위로 올라갈수록 물이 더 따뜻해지고 몸도 더 따뜻해진다.
몸이 따뜻해지니 기분이 좋아진다. 파묵칼레 위쪽에 난 산책길을 따라 걸어가 본다. 지금 올라왔던 곳 보다 더 넓은 파묵칼레 지역이 나온다. 이곳에 물을 흘려 내보내면 그 풍경이 너무나 아름다울 것 같다. 그러나 지금은 물을 흘려보내지 않고 있다.
그 산책로 끝에 다양한 형태의 돌무덤 유적지가 보인다. 봉분 형태부터 석실분 묘까지 다양한 형태의 무덤이 끝없이 흩어져 있다. 심지어 흰색의 파묵칼레 안에도 있다.
나중에 알고 난 사실이지만 이 유적지는 기원전 190년부터 만들어져 과거 10만이 살았던 온천 휴양도시 히에라폴리스 Hierapolis (성스러운 도시라는 뜻)의 묘역 일부이다. 이 파묵칼레 온천에 치료를 위해 사람들이 몰려들어왔고 그중에 병을 고치지 못하고 죽은 사람들이 묻혔던 곳을 지나온 것이다. 이집트 여왕 클레오파트라가 2천 년 전에 이곳까지 방문했었다는 기록에서 이곳이 얼마나 유명하고 귀족들에게 가보고 싶었던 곳이었는지를 싶게 짐작할 수 있다.
묘역 구역에서 유적지 도심 구역 쪽으로 방향을 틀면 묵직한 분위기의 네크로 폴리스 문이 보인다. 화려한 장식으로 치장되어 있지는 않지만 두꺼운 벽이 무거운 느낌을 준다. 그 문을 지나면 아고라가 나온다. 꽤 큰 규모의 아고라 유적이다. 아고라를 지나고 나면 무수히 많은 집터들이 드 넓게 흩어 저 있다. 이곳이 과거 10만여 명이나 살았다는 그 흔적들이다.
그 흔적들 위로 산 쪽으로 올라가면 히에라 폴리스 전체를 바라다볼 수 있는 위치에 원형극장이 나타난다. 다른 유적들에 비해 복원작업을 많이 해서 인지는 몰라도 보존 상태가 매우 좋다. 만 오천 명 정도를 수용할 수 있는 꽤 큰 규모이고 무대 건물까지도 양호한 상태이다. 계단이 조금 가파른 느낌을 주는데 아내가 무서워 계단을 오르내리지 못한다. 극장 밑으로는 내려가지 못하게 막아 놓아서 이 극장의 진 면목을 알기는 어렵다는 게 아쉽다. 무대가 진짜로 꾸며지고 공연이 이루어지면 엄청나게 화려할 것 같다.
히에라 폴리스 유적지가 너무 크고 그늘 한 점 없는 유적지다 보니 걷는 게 너무 지친다. 히에라폴리스 상부지역에는 고대 교회 유적지도 있는데 올라가는 것은 포기해야겠다.
오전부터 시작된 강행군인데 점심시간이 훌쩍 지나가고 있다. 다음에 다시 온다면 식사 시간 잘 계산해야겠다. 주변에 그늘 하나 없어서 간식 먹기도 힘들다. 그러나 아래로 내려가면 간단한 끼니를 해결할 수 있는 카페가 있다. 몸이 카페 안으로 이끌려 들어간다.
그 카페 안은 사실 대리석으로 만들었던 온천 수영장 유적지이다. 지금도 입장료를 내면 그 안에 들어가서 수영을 할 수 있다. 우리가 방문한 날이 12월 30일인데도 많은 사람들이 수영을 즐기고 있다. 이 수영장에서 클레오파트라가 수영을 했단다. 들어가고 싶은데 수영복이 없다. 아쉽지만 그냥 가야겠다. 그리고 배 고프다. 빨리 내려가서 밥 먹어야겠다.
파묵칼레로 올라왔던 길로 다시 내려가야 한다. 그때 한국 단체관광객들이 들어온다. 가이드분이 이 도시와 파묵칼레 뷰 포인트 등을 설명하고 해가 지기 전까지 돌아오란다. 2 시간채 안 되는 시간의 자유시간이다.
이분들은 이 곳을 나가면 저녁 먹고 호텔로 들어가겠지. 우리는 이곳에 4시간가량 있었는데도 제대로 못 보았는데 2시간이라니.
파묵칼레는 풍경만 보러 오는 곳이 아니었다. 10만의 고대도시 히에라 폴리스가 있었다. 겨울 파묵칼레에 실망했다는 블로거는 무엇을 보고 갔던 것일까? 햇빛이 강렬한 여름보다는 겨울의 히에라 폴리스가 더 좋을 수도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