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촌 백수가 행복하게 살아가는 이야기 2
50대 중반에 이른 자발적 은퇴를 한 후, 20여 가구가 모여 사는 작은 농촌 마을로 귀촌하였다. 3채의 집들이 들어서 있었던 집터는 모두 폐가 터만 남긴 채 대나무가 자라는 숲으로 변해 있었다. 새 집을 짓고 살기 위해서는 그 대나무를 정리해야 했다. 그 과정에서 몇십 년 동안 방치되어 있던 쓰레기가 보이기 시작했다. 우리 집터에 많은 사람들이 투기해 놓은 쓰레기들을 주워내고 발굴(?)하던 일이 집 주변으로까지 자연스럽게 확대되었다.
그 일은 반년 가까이 진행되었다. 주변을 정리하고 나서 돌아보면 더 넓은 지역에서 끊임없이 쓰레기가 발견되었다. 그 쓰레기에는 어린아이의 신발, 사용하지 않게 된 그릇을 포함해서 항아리, 독, 농기구, 부탄 가스통 등이 있었고 그 모든 것들은 마을 주민들의 생활사를 말해주고 있다. 그리고 그동안 농촌 쓰레기가 어떻게 처리되어 왔는지를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그러면서 이러한 일은 우리 마을만의 일은 아닐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주변 마을을 둘러보아도 상황은 마찬가지이고 이 문제에 대해 많은 분들에게 여쭈어 보아도 대부분 농촌이 비슷한 상황일 것이라고 말씀을 하신다.
‘농촌 쓰레기 문제 전체를 내가 어찌할 수는 없지만 내가 살고 있는 이 마을 쓰레기 문제는 어찌해 볼 수 있지 않을까?’라는 아주 거만한(?)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내가 살고 있는 마을만큼은 정말로 깨끗한 곳이었으면 좋겠다는 아주 이기적인 마음이 이런 거만한 일을 하게 만들었다. 우리 부부는 숲 속의 풀이 숨을 죽이는 겨울철이 되자 본격적으로 집 주변 산속의 쓰레기를 줍기 시작했다. 손으로 집어낼 수 있으면 정말로 다행이다. 그것도 안되면 삽이나 호미로 발굴을 해야만 했다. 첫해에는 우리 집 뒷 산 자락에 대한 청소를 마무리했다. 집어낸 쓰레기는 곡식을 담던 포대에 담아 산속 길가에 쌓아 놓았다. 그동안 오고 가면서 신경 쓰지 않았던 쓰레기가 저렇게 많이 나오는 것을 보고 많은 분들이 보게 되었다.
마을 주민들이 다니면서 우리를 쳐다본다. 도와주지 못해서 미안하다는 분들도 계시지만 대부분의 주민들은 ‘나는 거기에다 버리지 않았다’ 라거나 ‘옛날에 살았던 누군가 버렸을 거야.’라고 말씀하신다. 이를 한마디로 말하면 ‘지금 네가 주워낸 쓰레기에 직접적인 책임이 없어.’라고 항변을 하시는 듯하다. 그러나 진짜 속 마음을 다른 데 있다고 생각한다.
‘아! 옛날에 어떻게 처리할 줄 몰라 태우거나 몰래 버렸는데 그렇게 하면 안 되겠구나.’
이러한 우리의 쓰레기 줍기는 마을 도로 주변으로까지 확대되었다. 시간이 나는 대로 집게를 들고 쓰레기를 줍기 시작했다. 쓰레기 줍는 일이 집 주변이 마을 전체로 확대된 것이다. 반년 가까이 진행된 우리 부부의 쓰레기 줍기는 마을 전체의 화제가 되었다. 부정적인 여론이 아니라 긍정적인 여론으로 변한 것으로 보인다.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이사를 온 그해 말에 열린 대동회에 우리 부부가 초대를 받았기 때문이다. 대동회에 초대를 받은 것은 마을 주민들이 우리 부부를 마을 주민의 일원으로 받아들였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그 자리에서 마을 주민들 중 일부가 바람막이가 없던 쓰레기 분리수거대에 대한 문제를 제기했다. 나는 조심스럽게 그 분리수거대를 마을 주민들이 주로 모여 사는 곳과는 조금 떨어졌지만 바람을 막을 수 있는 마을회관 옆 공간으로 옮기자는 제안을 했다. 그런데 나이 많으신 어머님들이 "그럼 옮겨"라고 말씀하시는 바람에 그날 회의가 끝나자마자 쓰레기 분리수거대가 옮겨졌다.
그 일은 우리 마을 전체가 쓰레기 문제를 본격적으로 대응하기 시작한 첫출발이 되었다. 결론적으로 그다음 해에 쓰레기 분리수거가 정착되고 일부 주민을 제외한 대부분 주민들이 쓰레기를 태우는 일을 하지 않게 되었다. 3년 동안 진행된 마을 사업을 통해 쓰레기 분리배출, 쓰레기 종량제 봉투 사용의 일상화, 쓰레기 불법 소각 없는 마을로 변화되었다. 그 과정은 다음 회에서 다루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