캠핑카 세계 여행 에세이 24 - 체코 전원풍경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로부터 시작된 캠핑카 세계여행이 벌써 두 달이 지나가고 있었다. 그리고 라트비아 리가 민박집에서 편한 휴식을 취하고 나선 지 벌써 9일째가 되었다. 계속된 여행은 즐거운 일이지만 그 여행도 계속하면 우리를 힘들게 한다. 즐겁자고 한 여행이 고통이 되어서는 안 된다. 따라서 적절한 시점에서 쉬어가야 한다. 그래야 새로운 에너지와 기쁨이 생긴다. 오늘이 바로 그때이다. 풍경 좋은 곳에서 하루 쉬어가기로 하였다.
폴란드를 떠난 우리는 체코 국경의 첫 번째 방문 도시인 올로모츠로 가기 전 오드리(Ordry)의 포로스(Pohor)라는 작은 마을에서 쉬어가기로 했다. 이 마을에는 아름다운 농촌 전원 풍경을 즐길 수 있는 전망대가 있다. 높이 17미터인 이 전망대는 주변 지역의 아름다운 전원풍경을 보존하고 알리기 위해 2014년에 만들어졌다.
폴란드 여행이 무언가 아쉽게 느껴졌다. 짧은 여행기간도 있지만 고속도로를 중심으로 이동을 하면서 폴란드를 가깝게 느낄 수 있는 기회가 적었던 것도 그 원인 중 하나이다. 바르샤바에서 크라쿠프로 향하던 고속도로는 주변 풍경을 한 순간에 지나가게 하였다. 너무 빠름은 세상을 깊이 있게 보는 것을 방해한다. 가끔 느리게 가는 여행이 필요하다. 그래서 체코에서는 가능하면 고속도로를 타지 않기로 했다. 차 안의 또 다른 여자 친구에게 명령했다.
‘이제 체코에서는 고속도로를 검색하지 마’.
명령을 받은 내비게이션은 우리 캠핑카 아톰을 좁은 길을 따라 구릉지 전망대로 안내한다. 굽이 굽이돌아가던 중 가로수로 심어져 있는 사과나무에서 정말로 가로수 나무 꽃들이 떨어져 있는 것처럼 빨간 사과들이 도로를 수놓고 있다. 에스토니아에서 시작된 사과 여행이 발트해 3국과 폴란드를 거쳐 이곳 체코까지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동안 보았던 것 중에서 가장 화려한 사과 꽃 길이 지금 우리 앞에 있다. 이런 길을 한참 달려 어느 작은 마을로 들어간다. 작은 운동장이 있고 집들이 가끔 씩 있는 마을에 들어섰다. 마을 길가에 몇 그루 사과나무가 있고 싱싱한 사과들이 푸른 풀 밭 위를 수놓고 있었다.
제법 대담해지고 익숙해진 아내와 나의 아담과 이브의 사과 여행이 체코에 들어오자마자 다시 시작되었다. 먹음직스럽고 깨끗한 사과들로만 골라 커다란 비닐봉지 하나를 가득 채웠다. 너무나 즐거워하는 아내를 보면서 나도 기분이 즐겁다.
도착한 전망대 주변 풍경은 안개 때문에 흐린 날씨였음에도 불구하고 전원 풍경으로 유명한 이탈리아의 토스카니가 생각날 정도로 아름다웠다. 넓은 풀밭에 피어있는 꽃들도 우리의 눈길을 유혹한다. 간혹 다녀가는 방문객들과 아이와 함께 연 날리기를 위해 찾아온 가족들이 있을 뿐이다. 각자의 방식으로 아름다운 전원 풍경을 즐기고 사라진다.
시베리아에서 맞이했던 늦가을 날씨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날씨가 추워지니까 이제 꽃들도 모두 사라지겠지.’
‘저 꽃들을 보려면 내년 봄이나 되어야 할 거야.’
여행 내내 아내는 꽃을 보면 저 꽃들을 이제 보기 힘들어질 거야 하면서 항상 꽃을 사진에 담아왔다. 그러나 아직도 초원에는 많은 꽃들이 피어있다. 아톰 옆 화단에 꽃잎 어디에도 상처 하나 없는 분홍색 장미 한 송이가 도도한 자세로 피어 있다. 오늘도 어김없이 아내가 사진기를 들이민다. 무슨 이유인지 모르지만 나의 눈에 그 장미 한 송이가 너무나 예쁘게 느껴진다.
주변 상황을 점검하고 정박시킬 수 있도록 차를 정비한 후에 내가 아내에게 말한다.
“살생을 해도 용서해줘. 잠깐 나갔다 올게.”
'저 넓은 들판의 야생화를 조금 꺾었다고 아내가 크게 화내지는 않겠지. '
나는 풀밭에 나가 적당한 크기의 흰색과 노란색 야생화를 꺾어서 작은 꽃다발을 만들었다. 그리고 도도한 자세로 분홍빛 색깔을 자랑하고 있던 그 장미를 꺾었다. 그 장미를 꽃다발 가운데에 꼽는다. 하얀 꽃들과 노란색 꽃들로 둘러싸여 있는 장미가 가장 돋보인다.
나는 수줍은 미소로 장미꽃이 들어있는 꽃다발을 아내에게 건넨다.
‘당신은 이 장미처럼 가장 아름다운 이 세상의 주인공입니다.’
사실 우리는 꽃 선물을 주고받은 적이 별로 없었다. 아내는 꽃 선물은 쓰레기가 되고 낭비라는 생각이 강한 사람이다. 그래서 아내에게 꽃 선물은 신혼 때 말고는 해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아내가 너무 좋아한다. 이게 사랑인가 보다.
아침에 사냥해온 사과가 빨간 바구니 위에 꽃처럼 놓여있고 내 꽃다발도 그 옆에 작은 술병으로 만든 화병에 꽂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