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즈도 준비 안 했나요?

캠핑카 세계 여행 에세이 40 - 오스트리아 상트 안톤 암 아를베르크

by 류광민

상트 안톤 암 아를베르크 St. Anton am Arlberg 고개에서의 정박

인스브루크 시내 관광, 비싼 유심칩 구입, 트레킹, 지역주민들이 내다 파는 시장에서 맛있는 빵도 사고 거기에다 조금 격한 부부 싸움까지. 동해를 출발한 지 두 달 만에 벌어진 부부 싸움이었다. 아직도 우리 부부는 서로를 잘 알지 못하고 있는가 보다. 이렇게 알차고 힘들게(?) 보냈던 3박 4일의 인스브루크 일정을 마치고 우리는 스위스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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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스로 넘어가는 도중에 상트 안톤 스키리조트 단지에 들러 하루 정박하기로 하였다. 대규모 스키리조트 단지가 궁금했기도 했고 인스브루크에서 스위스로 직접 넘어가기에는 조금 먼 거리였기 때문에 중간 정박지가 필요했다. 조 선생님도 우리와 함께 스위스로 넘어가기로 하였다. 조 선생님과의 동행은 그 후로 15일 정도 이어졌다.

고속도로를 이용한 우리가 먼저 도착해서 정박이 가능한지 살펴보기로 하였다. 조 선생님은 일반도로로 천천히 오신단다. 우리가 먼저 도착한 상트 안톤. 주변에 흰 눈이 쌓여 있는 높은 산들이 있고 그 산들을 여기저기 연결하는 많은 리프트들이 설치되어 있었다. 그리고 마을에는 크고 작은 호텔들이 들어서 있다. 우리나라처럼 스키리조트 단지에 한 개 회사의 숙박단지가 있는 게 아니라는 점이 눈에 뜨인다. 스포츠 센터 앞 주차장에서 정박이 가능할 것 같은데 왠지 주변 시선이 부담스럽다. 자리를 옮겨도 될 것 같다. 1시간가량 정도 지나서 도착한 조 선생님 팀과 마을 산책을 하고 나서 정박지를 옮기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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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이 모두 스키장인 상트암톤암아를베르크 마을 풍경. 크고 작은 숙박시설들이 우리 대규모 스키리조트와 다른 풍경이다.

상트 안톤 시내를 벗어나서 가파른 마을길로 넘어가니 넓은 차도가 나타난다. 그리고 굽이 굽이도는 산길로 계속 올라간다. 나의 운전석 왼편에는 뾰족한 설산이 내 옆에 있는 것처럼 보인다. 아내의 탄성이 자연스럽게 나온다. 그러면서 나보고 풍경을 보지 말란다. 정말 조심 운전해야 한다. 풍경에 빠지면 위험한 상황. 이런 풍경을 한참 지나니 또 다른 스키장이 나타난다. 그리고 고개를 넘어가니 식당 주차장 옆으로 비포장 빈 공간이 있다. 네비가 가르쳐 준 바로 그 지점이다. 그 밑에 엄청난 협곡이 보인다. 모두들 정박지를 바꾸길 너무 잘했다고 한다. 주변에는 눈과 살얼음이 아직 녹지 않은 곳도 있다. 고개에는 오늘 자동차로 통과 가능한지를 표시하는 표지판이 있었다. 아마 겨울에는 통행이 통제되는 날이 있는 도로인가 보다. 다행히도 오늘은 통행이 가능하다.

다만, 걱정이 되는 것은 밤에 찬 바람이 세게 불면 기온이 급격하게 떨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오늘 밤에 바람이 세게 불지 않기를 기원해본다. 오늘도 차 두대가 문을 마주하고 서 있다. 저녁에 4명이 와인 한잔씩 하는 여유를 가져본다. 이거야 말로 캠핑카의 낭만이 아니겠는가! 다행히도 그날 밤에 바람이 불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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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스로 넘어가는 고개 언덕의 주차장과 주변 풍경. 주차장은 식당 앞에 있다.

아침에 일어나 시원한 바람을 즐기고 눈 쌓인 길도 걸어본다. 언덕 위에서 아톰을 내려다보니 그 풍경이 정말로 장관이다. 그래, 캠핑카 여행은 바로 이 맛이야. 탄성이 절로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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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한 번의 아톰 위기

오늘은 스위스와 오스트리아 사이에 있는 중립국 리히텐슈타인을 거쳐 스위스로 들어가는 날이다. 아침에 시동을 켜고 출발 준비를 한다. 그런데 시거잭과 차량 내비게이션에 전원이 들어오지 않는다. 시거잭은 시직 내비에 필요한 전원을 공급하고 있고 차량 내비게이션은 차 후면 카메라와 연결되어 있다. 내비가 작동 안 하면 이국 땅에서 운전하기는 매우 어렵다. 차 후면 카메라는 캠핑카를 주차장에 안전한 주차를 위해 매우 필요한 물건이다. 빠른 시간 안에 이 문제를 해결해야만 한다.

휴즈박스를 열어보니 시거잭과 차량 내비게이션이 한 개의 휴즈와 연결되어 있는데 그 휴즈가 나가 있다. 휴즈 박스를 살펴보니, 해당 용량의 비상용 휴즈가 없다. 나도 추가로 예비 휴즈를 준비하지 않았다. 조 선생님께서 어떻게 휴즈도 안 가지고 다니냐고 하신다. 정말로 우리는 준비한 게 없나 보다. 조 선생님이 가지고 있던 휴즈로 교체하니 정상 작동한다. 조 선생님과 함께 한 여행이 아니었으면 정말로 고생이 많았을 것이다.

그런데 조금 있다가 다시 전원이 나간다. 휴즈가 다시 나간 것이다. 용량을 높여 바꾸어 봐도 마찬가지. 너무 지체할 수 없어서 응급조치를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급하게 시직은 휴대용 충전기로 연결하여 운행하기로 하고 출발. 그리고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비상용 휴즈를 구입했다. 그 이후로도 며칠 동안 휴즈가 나가는 현상이 반복되었다. 다양한 시도 끝에 휴즈가 나가는 원인이 백밀러 조정장치에 있다는 것을 알아냈다.

스위스 Saillon에서 다시 만난 조 선생님께서 앞 문을 뜯어서 안쪽에 있는 백밀러 조정 전원 장치를 분리해 주셨다. 그 이후로 시거잭과 차 내비게이션에 정상적으로 전원이 들어왔다. 그리고 휴즈도 더 이상 나가지 않았다. 여행이 끝날 때까지 전원이 나가는 일은 발생하지 않았다. 조 선생님이 없으셨으면 정말로 고생이 많았을 것이다. 정말로 감사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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