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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애정 Aug 10. 2023

기후위기 한가운데서 보내는 말복

당신의 복날, 건강한가요


나에게 어린 시절 강아지란 마당에서 ‘1m의 삶’을 살며 집을 지키는 존재였다. 그래도 시골집에 가면 개 한 마리가 있는 것이 반가웠다. 어쩌다 새끼 강아지를 낳으면 그들의 앞날도 모른 채 좋아라 했다. 할머니는 손주들이 밥을 남기면 밥과 잔반을 섞어서 마당에 있는 개에게 주었다. 시골집 개는 딱 그런 존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그렇게 푸대접을 받고도 내가 오면 외부인이라고 짖어도 할머니 할아버지를 보면 꼬리를 흔들던 개였다. 


시골에서는 복날이면 마당에서 키우던 개를 잡았다. 어린 시절에도 개를 먹는다는 것에는 묘한 거부감이 있었다. 아마 다른 동물들과 다른 점이라면, 개는 눈에 잘 뜨였다는 것뿐이었을 것이다. 한 번 먹어본 적도 있었는데 그다지 맛이 있지도 않아서 두 번 먹지는 않았다. 그러다 어느 해에는 개를 잡는 것을 직접 보게 되었다. 개의 목에 줄을 매달아서는 그 줄을 나무에 매달았다. 나무에 매달려 점점 숨통이 조여오던 개는 발버둥을 쳤고, 이내 숨이 끊어졌다. 그렇게 숨이 끊어진 개를 성인남성 몇 명이서 몽둥이로 두들겨 팼다. (추측하건대 고기를 연하게 하려고 그런 게 아닐까 싶다.) 이후 털을 제거하기 위해 개의 몸을 불로 그을렸다. 그렇게 1m 이내의 삶을 못 벗어나던 개는 처음 목줄이 풀려서 나무에 매달렸다. 기억이 흐릿하지만, 그때의 감정은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너무 끔찍하다고 생각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어린 마음에 그게 구경거리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십수 년이 흐른 후 나는 강아지를 키우게 되었고, 이후 몇 년이 더 흐른 후 나는 채식을 하게 되었다. 


치킨민국이라고 불려도 어색하지 않을 만큼 우리나라는 1인당 치킨소비량이 많은 나라이다.  식탁 위의 치킨이 되기 위해서 갓 태어난 병아리는 불 꺼지지 않는 축사에서 24시간 사료를 먹고 비정상적으로 가슴을 부풀리게 된다. 자연에서 평균수명이 10년 이내인 닭은 농장에서 30-35일이면 죽임을 당한다. 돼지, 소라고 나을 건 없다. 매일 5만 마리의 돼지가 도살장으로 끌려가게 된다. 그들 역시 몸도 움직이지 못하는 좁은 철장에서 짧은 평생을 살다가 처음 나가게 되는 곳은 도살장이다. 소 역시 공장식 축산 환경에서 강제 임신과 출산, 신체 훼손을 당하다가 평균 30개월 짧은 생을 살다가 등급이 매겨진 채로 백화점으로, 동네 마트로 이동하게 된다. 


8월 10일 말복인 오늘도 어김없이 마트에는 닭을 세일한다는 광고가 붙어있고, 배달앱에서는 복날이라고 치킨할인 이벤트를 한다고 한다. 사실 나도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이 거대한 산업에 일조하고 있었다. 회사생활을 하며 복날은 나에게 그저 소풍 같은 날이었다. 복날이면 점심시간을 30분 앞당겨서 근처 유명 삼계탕집, 갈비탕집으로 동료들과 향했다.  점심시간을 30분이나 더 누릴 수 있다는 혜택에 더해 삼계탕집에서 주는 인삼주 한잔이 그 순간을 행복하게 했다. 하지만 정말 그날이 행복했는지, 돌이켜보면 그건 아니었던 것 같다. 무리하게 닭 한 마리를 다 먹고 함께 있는 찰밥까지 싹 먹고 나면 오후 내내 소화가 되지 않아 힘들었다. 그도 그럴 것이, 예부터 삼 복인 초복, 중복, 말복에는 보양식을 먹으며 열을 다스려 여름을 지냈는데, 먹을게 부족하던 예전에나 일 년에 한두 번 날을 잡아 고기를 먹어야 영양이 보충되는 것이지 지금처럼 먹을 게 넘쳐나는 시대에 한 끼에 닭 한 마리를 다 먹는다고 영양이 보충될 리 없었다. 오히려 한 끼를 가볍게 비우는 게 현대인에게는 도움이 될 터이다.

제철과일과 가지볶음, 콩국수 그리고 그냥 올리고싶어서 올리는 얼마전 한 두부장


올해 초복, 중복, 말복을 보내면서 평소와 다르게 먹어야겠다는 생각은 한 번도 들지 않았다. 7월 11일 초복에는 가지를 볶아 상추에 쌈을 싸 먹었고, 7월 21일 중복에는 과일식으로 아침을 먹고 점심에는 시원한 콩국수를 먹었다. 그리고 오늘 8월 10일 말복에는 정성스레 숙주무침을 하고 양배추를 삶아서 며칠 전 만들어준 쌈장과 쌈을 싸 먹었다. 기후위기가 점점 심해지고 있는 요즘이다. 여기저기서 산불 소식이 들리고, 한 곳에서는 홍수로 사람이 죽고 있는데 반대편에서는 가뭄으로 많은 것들이 죽고 있다. 생명을 죽이며 내년의 기온을 더 높이는 대신 나를 조금 더 건강하게, 지구를 조금 더 건강하게 하는 식사로 하루를 마무리해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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