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앞으로 지켜나가야 할 것들
일 년 전 이맘때, 친구들과 노들섬에 가서 자전거도 타고 저녁도 먹고 좋은 시간을 보냈다. 그중 한 친구가 물어봤다. “나 저녁에 이태원 갈 건데, 같이 넘어갈래?” 잠시 고민을 하다가 대답했다. “어후, 오늘 사람 얼마나 많겠어. 벌써부터 집 오는 거 걱정된다. 난 안 갈래.” 끝날 것 같지 않아 보이던 코로나바이러스의 공포가 조금 사그라들고 3년 만의 핼러윈 축제였다. 사람들은 들떠 보였고, 많은 인파가 예상되었다. 그렇게 저녁즈음 친구와 헤어지고 나는 집으로 돌아갔다.
그날 늦은 저녁, 이태원에 대한 뉴스가 조금씩 올라오기 시작했다. 사상자가 발생하고 있다고 뉴스가 올라오는데 갑자기 겁이 났다. 급하게 친구한테 문자를 보냈다. “어디야? 너 괜찮은 거야?” 답은 오지 않고 사상자는 계속 늘어났다. 다행히 잠시 후 답장이 왔다. “응 나는 무사해. 근데 지금 이태원 난리가 났어.” 그 이후로는 내 몸이 무슨 감각이었는지, 무슨 감정을 느꼈는지 솔직히 모르겠다. 잇따른 큰 사고 속에서 어쩌면 조금은 무감각해졌을지도 모르겠다. 또 하나의 사고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10,20,30명.. 그리고 100명이 넘어갈 때까지 나는 무슨 감정을 느껴야 하는지 모른 채 멍하니 뉴스를 지켜봤다.
얼마 전, 미국에서 만들어진 다큐멘터리 ‘크러쉬’가 미국 내에서 공개되었지만, 한국에서는 공개되지 않았다. 지인이 공유해 준 블로그 주소로 영화를 볼 수 있었는데, 보고 나니 가슴이 답답해졌다. 그동안 나름대로 관심 있게 지켜봤다고 생각했는데 내가 몰랐던 내용들도 있었고, 생존자들의 이야기를 들으니 그동안 느끼지 못했던 감정들이 다가왔다. 사망자가 나오기 약 4시간 전, 처음으로 경찰에 신고가 접수되었다. 최초 신고자는 ‘압사’라는 말을 분명하게 전달하였다. ‘골목에 사람들이 너무 많고, 통제가 되고 있지 않고, 압사의 위험이 있다’고 분명하게 신고 접수를 하였으나 경찰은 나타나지 않았다. 그 이후로도 접수 전화는 계속해서 이어졌지만 경찰이 나타난 건 몇 시간이 흐른 후였다.
이 보다 더 화가 나는 것은, 정부의 대처 미흡과 그 이후의 사건 은폐이다. 핼러윈 전, 10만 명의 인파가 몰릴 것으로 예상된다는 보고서가 작성되어 안전부로 보고되었으나 아무런 대책이 없이 사건 당일을 맞이하였다. 이후 사건이 터지자 수사 3일 뒤 보고서는 은폐되었고, 수사를 받던 정보계상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정부에서는 어쩔 수 없는 ‘사고’였다고 하지만, 이 재난은 분명히 예방될 수 있는 사고였다. 서울 한복판에서 195명이 죽어서 도로에 시체가 널브러져 있었고, 그중 살아남은 생존자 한 명은 혼자만 생존한 게 미안하여 스스로 생을 마감하였다. 이태원에서 구두가게를 운영하시는 사장님은 자기 손자 같은 아이들에 미안하여 골목에 작은 제사상을 차렸지만, 당일에는 없던 경찰들이 어디선가 나타나서 제사상을 치워버렸다.
그리고 일 년 뒤 지금. 여전히 피해가족들은 진상규명을 요구하고 있고 정부는 묵묵부답으로 일관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지겹다는 이야기도 나오는 게 마치 세월호를 연상시킨다. 정말 마음 아픈 것은 세월호 세대가 시간이 흘러 똑같은 일을 겪었다는 것이다. 세월호 이후 ‘애도’를 명목으로 모든 축제를 취소시켰다. 그리고 똑같이 이태원 참사 일 년이 지난 지금, 핼러윈문화는 많은 부분 지워졌다. 할로윈이야 워낙 우리의 문화도 아니니 이거 하나쯤이야 없어진다고 해서 큰 일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사람들에게는 삶에서 축제가 필요하고, 유흥도 필요하고, 기념일도 필요하고, 특별한 날도 필요하다.
가르치는 학생들이 얼마 전 수학여행, 수련회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요즘은 수학여행이나 수련회의 일정이 부모들의 투표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70% 이상이 넘어야 진행이 되는데 60%대에서 마무리가 되어서 결국 수련회를 가지 못하게 되어다는 아이들. 아예 투표의 기회도 없었다는 아이들. 왜 본인들은 선택권이 없냐며, 불공평하다며 목소리를 높여 이야기를 하는데 미안해진다. 무엇이 이 아이들의 삶에서 축제를 앗아가 버렸나.
또 최근에는, 아이들을 가르치는 공간에서 매년 열리는 할로윈행사를 열었다. 영어학원 특성상 할로윈은 매년 큰 행사였는데, 많은 분원들이 행사를 취소하였지만 우리 분원은 행사를 진행하였다. 나도 조심스러운 건 사실이었다. 1주기를 애도해야 하는 시기인데, 행사를 여는 게 맞나? 학부모들의 전화를 받기도 했다. 하지만 행사당일, 멋지게 꾸미고 일 년에 한 번 이런 기회를 갖게 된 아이들이 활짝 웃으며 교실을 들어오는 순간 진짜 지켜야 할 것이 무엇인지 깨닫는다. 아이들은 일 년에 한 번 엘사도 되어보고, 드라큘라도 되어보고, 유령신부가 되어보기도 한다. 서로서로 사탕과 초콜릿을 나누어 먹으며 소소하게 그들만의 축제를 즐긴다. 이 아이들이 커서 이태원에서도, 그 어디에서도 안전하게 느끼며 본인들의 삶을 즐기기를 바라본다. 이태원 참사 1주기를 생각하며 일 년 전으로 돌아가서 사진첩을 둘러본다. 아무 일 없던 그날의 오후로. 누군가의 사진첩은 거기서 시간을 멈췄을 것이다. 그 누군가를 애도하며 글을 마무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