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애정 Dec 12. 2023

몸이 말을 걸기 시작한다.

몸의 언어에 귀 기울일 때 

초등학교에 입학하자마자, 나는 내가 체육에 뛰어나다는 걸 알았다. 달리기를 하면 항상 반에서 일등이었고, 모든 체력 테스트에서는 ‘수’를 맞았으며, 방과 후 아무리 뛰어다녀도 지치지 않았다. 이런 능력은 아빠 쪽에서 물려받은 것 같다.. 아빠는 군대에 있을 때 달리기 하나로 포상휴가를 나왔다. 나보다 먼저 초등학교에 입학했던 언니들은 이미 계주선수로 뽑힌 상태였고, 이에 질세라 나도 계주선수로 뽑히며 우리 세 자매는 줄줄이 계주선수로 활약을 하였다. 성인이 되어서도 일단 뭔가 시작하면 몸을 쓰는 분야에서는 대부분 자신 있었다. 뭘 해도 ‘감이 있다.’는 말을 들었고, 주변에서는 항상 나의 체력을 부러워하였다. 말 그대로 이틀밤을 새워도 다음날 멀쩡한 나였다. 


그러다 올해 갑자기 몸이 말썽을 부리기 시작했다. 지난 몇 년간 코로나 한번 걸리지 않고 넘어가다가 지난 5월, 갑자기 오른 열에 속수무책이었다. 다행히 약도 먹고, 수액을 맞으니 금방 괜찮아졌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이렇게 감기몸살로 고생한 건 처음이었다. 여태까지는 조금 몸이 안 좋다 싶을 때 미리 약 먹고 푹 자고 일어나면 큰 탈 없이 몸이 회복되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번에는 한번 아프고 나니 몸이 완전히 회복이 안 되는 느낌을 받았다. 조금만 무리해도 피곤하고, 말 그래도 체력이 떨어진 느낌이었다. 주변에서 뭐만 해도 ‘피곤해’를 달고 사는 친구들을 보며 뭐가 그렇게 피곤할까 싶었는데 이제야 그 친구들이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그러다 지난 10월 말, 정말 하룻밤 사이에 다시 몸이 엉망이 되었다. 아침에 일어나 보니 또 열이 38.8도까지 올랐다. 쑤시는 몸을 이끌고 겨우 병원으로 가서 수액을 맞고 약을 처방받았다. 여태 감기로 이렇게까지 아픈 적이 없었는데 일 년에 두 번이나 이런 일이 벌어지다니.


하지만 그게 끝이 아니었다. 며칠 전, 새벽에 갑자기 몸이 돌아가는 이상한 느낌이 나서 눈을 떠보니 눈앞에 360도 회전을 하고 있었다. 너무 어지러워서 당장 화장실로 달려가 모든 것을 게워냈다. 더 이상 나올 것도 없는데 너무 어지러워서 워 변기를 떠날 수가 없었다. 그러다가 겨우 다시 침대로 갔는데, 누우니 다시 하늘이 빙빙 돌아서 한동안을 뜬눈으로 앉아있었다. 과거에 주량이 넘게 소주를 들이붓다가 새벽에 눈앞이 빙빙 도는 경험을 했던 적이 있었는데, 그거의 10배, 20배는 더 고통스러웠다. 겨우 다시 잠이 들고 깨어나서는 응급실로 향했다. 결과는 ‘이석증’이었다. 이석증의 원인이 뭐냐는 나의 질문에 의사는 “누구에게나 생길 수 있는 병이에요. 다만 나이가 들 수록 발병확률이 높고, 면역력이 낮거나 스트레스 수치가 높으면 발병할 수 있어요. 재발확률이 높으니 조심하세요.”라고 했다. 


너무 억울했다. 그 어느 때보다 건강한 식습관, 꾸준한 운동, 과거에 비해 여유로운 스케줄 속에서 살 고 있는데 올해 이게 무슨 일인지… 지금 돌이켜보면 ‘건강하지 않은 나의 몸’ 이 너무 낯설어서 받아들일 수가 없었던 것 같다. ‘나는 건강한 사람인데, 나는 건강해야 하는 사람인데. 지금 이건 내가 아니야.’라고 내 몸을 스스로 거부해 왔다. 그러다 문득 그동안 수고한 내 몸을 다시 보게 됐다. 그동안 건강하게만 나를 지켜준, 부단히 노력해 온 나의 몸. 지금 비록 가장 건강한, 완벽한 상태는 아닐지라도 나와 함께해주고 있는 나의 몸. 나는 이 몸은 왜 받아들이지 못했을까…그런 나 때문에 더 반항심이 들었는지도 모르겠다. ‘내가 여태까지 얼마나 많이 애써왔는데, 이제 와서 나를 탓하다니..’이런 생각을 했어도 할 말이 없다. 이제 나의 몸은 아마도 자연스러운 노화로 인해서 어딘가는 더 안 좋아질지도 모른다. 자연스럽게 나는 또 아프기도 할 테고, 다시 체력이 회복되는 날도 있을 것이다. 요 며칠 갑자기 다시 심해진 미세먼지, 황사로 인하여 나빠진 목 컨디션 그리고  또 찾아온 이 으슬으슬함. 오늘도 나는 피곤해서 운동을 일주일 더 미뤄본다. 이전 같으면 몸이 근질근질해서, 죄책감 때문에 다 낫기도 전해 다시 찾았을 공간이지만, 나의 몸이 한 주 더 쉬라고 말하고 있으니까. 가만히 누워 몸 치유 명상을 시작한다.


‘우리의 몸은 스스로 치유 능력이 있습니다. 몸을 그대로 바라봅니다. 저항하지 않고 느껴지는 것을 허용합니다……’

작가의 이전글 이태원 참사 일주기를 추모하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