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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클래미 Apr 03. 2024

변호사 '임현서'가 알려주는 거친 사회에서 살아남는 법

Written by 클래미

변호사 임현서가 웨이브에서 방영한 정치 서바이벌 예능 '더 커뮤니티'에 출연했다. 빠른 두뇌 회전과 말솜씨뿐만 아니라 예능감 덕분에 사실 그가 방송을 하드캐리했다고 봐도 무방하다.


사실 4년 전 로펌 서바이벌 예능 '굿피플'에서 그를 처음 알게 되었고, 그때부터 그의 열렬한 팬이었다. 잘 모르시는 분들을 위해, 임현서는 대원외고와 서울대 경영학/로스쿨 출신이며, 변호사 및 공인중개사 자격증을 갖고 있다. 그 밖에 부동산 관련 IT 스타트업을 창업 및 운영했고(최근에 폐업한 걸로 알고 있다), 슈퍼스타K 및 여러 방송에도 출연한 진정한 멀티플레이어다. 현재 나이는 1991년생으로, 겨우 만 33세다.


'굿피플'은 로펌에서 신입 사원 채용을 위해 로스쿨 졸업 예정자들을 대상으로 경쟁을 시키는 프로그램이다. 8명의 인턴이 모집되는데, 나머지 6명은 거의 비중이 없고, 임현서와 이시훈 인턴의 경쟁 구도로 흘러간다. 캐릭터상 임현서는 까탈스러운 천재파, 이시훈은 착실한 노력파로 표현된다.


사실 서바이벌에서 누가 우승했는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더 커뮤니티'와 마찬가지로 '굿피플'에서도 임현서가 방송을 하드캐리했기 때문이다. 아직도 그가 출연한 분량은 화제가 되고 있고, 변호사가 아닌 나조차 그의 언변과 논리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법조인이 아니더라도 일상에서 말과 글을 통해 상대를 조리 있게 설득하는 능력은 매우 중요하다. 여기서 단순히 논리를 통해 상대를 압도하는 것뿐만 아니라 적당한 유연성과 여유까지 겸비한다면 완벽하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을 갖춘 사람은 사실 그리 많지 않다. 그래서 임현서에게 더욱 매료되었던 것 같다.


그의 언변술은 유튜브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고, 최근에 그가 책을 썼다고 해서 읽어보았다. 방송에서는 그가 히어로급으로 묘사되긴 하지만, 사실 그도 30대 초중반으로 아직 한창의 나이다. 그래서 대단한 인생의 가르침을 알려주기보다는 본인이 살면서 느끼고 배운 점을 솔직하고 담백하게 쓴 책이다. 그래서 읽기 편했고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많았던 것 같다.


이렇게 다재다능한 사람이다 보니 많은 사람들이 그의 꿈이 무엇이냐고 물어본다고 한다. 여기서 우문현답이 나오는데, 본인은 "그때그때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는 인생"을 사는 게 꿈이라고 한다. 생각보다 허무하고 겸손한 답변이라고 생각했지만, 다시 생각해 보니 그것만큼 가슴 벅찬 꿈이 없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과 좋아하는 일을 하며 좋은 시간을 보내는 것이, 결국 우리가 모두 꿈꾸는 행복이 아닐까 싶다. 본질을 꿰뚫은 답변이었다.


아무튼 그가 쓴 책의 이름이 좀 길다. <이런 삶이 꼰대라면 나는 그냥 꼰대 할래요>라는 제목이다. 1살짜리 아이를 낳아서 요즘 키우고 있는데, 나중에 아이가 크면 해주고 싶은 말을 정리한 책이라고 한다. 핵심을 내 맘대로 요약하자면, "변호사를 하다 보니 범죄자를 처벌하는 게 마냥 쉽지 않다. 왜냐하면 제도가 억울하게 처벌받는 사람이 절대 나오지 않게 하려는 데에 초점이 맞춰져 있지, 잘못한 사람들을 잡아다가 처벌하는 데에 맞춰져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애초에 사기꾼이랑 엮이지 않도록 처신을 잘하자"인 것 같다. 책 표지에도 "거친 사회로부터 자신을 지키는 방법"이라고 부제가 쓰여 있다.


불과 몇 년 전이라면 가볍게 흘려 들었을 텐데, 나도 나이가 들고 직간접적인 경험이 쌓이다 보니 그가 주장하는 내용의 90%는 강하게 동의할 수 있었다. 그리고 나머지 10%도 곧 이해하게 되지 않을까 싶다. 확실히 어릴 때부터 사업을 하며 비상한 삶을 살더니, 곱상한 외모와는 다르게 거친 삶을 살았던 모양이다. 나도 시간이 지나면서 좀 더 다듬어지고 단단해진 것 같다. 그래도 갖고 있던 꿈과 열정을 잃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이 두 가지가 합쳐지면 언젠가 좋은 시너지를 낼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역시 젊을 때 부딪힌 모든 경험은 모두 피와 살이 되는 것 같다.


위 내용이 무슨 말인지 이해가 잘 안 된다면, 아래 책을 읽으면서 인상 깊었던 구절을 기록했으니 참고하시기 바란다. 아니면 그의 유튜브 채널을 보거나 책을 사서 읽는 것도 물론 추천한다.

임현서 신간 도서


Prologue: 내가 미리 알았더라면 좋았을 무기


- 시간이 흘러 어느새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 키우고 있다. 그렇다 보니 그 어느 때보다도 '내가 이걸 미리 알았더라면'하게 되는 순간이 많다. 아이가 자라는 모습을 보고 있으니, 자연스레 나의 어린 시절이 떠오르면서, 아버지로서 어떤 이야기를 어느 시점에 어떻게 해주야 할지에 대한 깊은 고민에 빠진다.

- 내 아이가 아직은 너무 어려서, 내가 하는 이야기를 알아들으려면 한참의 시간이 필요하겠지만, 현재 내가 안고 있는 고민으로 인해, 이 아이가 성인이 되어 사회에 첫발을 내딛거나, 세상에 나아갈 준비를 할 시기가 오면, 해줄 말이 참 많을 듯하다.

- 솔직히 고백하자면 나의 자녀에게 들려주기 전이고, 세상 사람이 다 아는 얘기가 되어 버리면, 내 아이는 그 덕을 덜 볼 것 같아서 걱정도 된다. 하지만 이 책을 선택해 완독 할 만큼 나와 내 글에 애정이 있는 독자라면, 아깝지 않을 듯하다.

- 딱 이 정도의 눈높이에서 내가 살아온 삶의 과정과 내가 만난 수많은 동료, 직원, 거래처, 사업가인 척하는 사기꾼, 그냥 사기꾼, 범죄자, 스승, 갈등 대상과 관련해 보고, 듣고, 느낀 바를 정리해, 여태껏 몰랐다면 꼭 알았으면 하는 부분만 추려냈다.


Part 1: 삶을 풍족하게 해 줄 간접자본이라는 무기


[꿈의 변덕은 당연하다]

- 지금까지 "꿈이 뭔가요?", "궁극적인 인생의 목표가 뭔가요?", "무엇을 이루고 싶은가요?"와 같은 질문을 수백 번 넘게 들은 나 또한 그렇다. 예전에는 여기에 어떻게 답해야 할지 많이 고민했지만, 이제는 "지금 하는 거 잘하면서 그때그때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살고 싶네요." 정도로 정리한다. 김 빠질 수도 있겠지만 내 진심이다.

- 이제는 패스트푸드 가격이 과거에 비해 저렴해지기도 했고, 지금 벌이로는 모든 식구가 하루 세끼, 아니 다섯 끼를 채운다고 해도 전혀 무리가 없는 수준이 되었다. 간절히 바랐던 어린 시절의 꿈이 큰 감흥으로 다가오지는 않는다. 상황도, 꿈도 변했기 때문이다.

- 한편 생을 마감하는 날까지 꿈만 꾸다가 죽는 사람도 있겠지만, 꿈과 현실의 괴리는 심적인 고통의 원인이 되기도 하므로 임종 직전까지 꿈을 향해 살아가는 사람은 많지 않을 테다. 죽음이라는 결말이 기다리고 있음에 꿈의 끄기와 모양을 조절하게 되니까.

- 나는 목표했던 학과에 입학했다. 그러나 이미 이룬 꿈은 꿈같지 않았다. 이 경험이 바탕이 되어 나는 인간이 상향 비교에 익숙한 동물임을 절실히 느꼈다. 꿈이 없던 사람도 자신이 처한 상황에 맞추어 새로운 꿈을 꾸고, 그걸 꿈이라고 부르지 않더라도 달성하고 싶은 목표와 욕구가 생겨나기 마련이므로.

- 다시 말하지만, 꿈은 자신이 처한 여건에 따라 바뀌기 쉽다. 외부 상황에 영향을 많이 받으니까. 그러니 흔들리지 않는 단 하나의 꿈을 찾고자 한다면 당연히 힘들 수밖에 없다.

- 이처럼 단계적으로 떠오르는 고민을 해결하거나, 혹은 목표를 달성하고 나면, 그다음 단계로 무언가가 생각날 것이다. 나는 이 또한 꿈의 형태이고, 꿈을 이뤄나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물질적 기반은 인간의 사고에 큰 영향을 미친다]

- 다시 강조하건대, 물질적 기반은 개인의 사고에 지속해서 폭넓은 영향을 준다. 그에 영향을 받아 꿈의 높이와 폭도 영향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 그래서 아직 정확히 뭘 하고 싶은지, 꿈이 뭔지 도통 몰라도, 물질적 여건은 아주 중요하다. 왜냐하면 언젠가는 물질적 문제와 마주할 가능성이 높고, 그로 인해 미래에 꿀 수 있는 꿈의 폭에도 영향을 받을 수도 있어서다.

- 이러한 이유로 만일 지금 뾰족한 꿈이 없다면, 장래에 다가올 물질적 제약에 대비해 돈이라도 열심히 벌겠다는 생각을 하는 것도 전혀 나쁘지 않다고 본다. 즉, 꿈이 없으면 돈 벌 궁리라도 하라는 것이다. 이미 돈 걱정에서 해방된 상황이 아니라면, 가까운 미래에 돈 문제가 들이닥칠 것이다. 하지만 사전에 준비해 두면, 비로소 생각나지 않았던 꿈이 나중에라도 떠오르거나, 새로운 의욕과 목표로 세상을 살아갈 수도 있을 것이고, 혹은 돈 버는 것 자체가 재미있어서 그게 꿈이 될 수도 있다.


[현실 문제에 균형 잡힌 결론을 도출하는 방법]

- "좋아하는 걸 하는데도 잘하지 못하면, 앞으로 그 일을 안 좋아하거나 덜 좋아하게 될 것이다."로 요약할 수 있다. 이를 조금 더 맥락에 맞게 구체화한다면, "잘하는데 돈도 되는 걸 하면 좋아질 거고, 그래도 굳이 잘하는 걸 하기 싫다면 좋아하는 걸 하세요."가 되겠다.

- 나 역시 그런 일을 아직 찾지 못했고, 시간이 지나도 그것을 찾는 게 가능할지 잘 모르겠다. 그래도 상관없다. 그때그때 좋아하는 걸 하면서 살 수만 있다면, 좋아하는 걸 찾지 못해도 되니까. ✅ 더욱이 마음이 여유롭고, 경제적으로도 준비가 되면, 그런 삶을 살지 못할 이유도 없다. 그래서 꿈을 찾다가 담이 안 보이면, 현실적 고민부터 해결할 생각을 하라는 결론에 이르는 것이다.

- 나는 지나가는 말로 어머니에게 이런 이야기를 했다. "제가 주 1회 3시간씩 과외를 4주간 하면 40만 원을 받는데, 시급으로 치면 33,333원꼴이에요. 한 달에 209시간을 일한다고 치면 약 700만 원이 되는데, 제 월급이 700만 원이 되기 전까지는 과외를 해서 돈을 버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산수로 틀린 말은 아니지만, 딱 과외로 아르바이트하는 대학생의 머릿속에서 나올 법한 결론이었다.

- 논리적 결함을 가진 사고는 아니지만, 향후 커리어와의 연장, 교육이나 네트워크 등에 투자함으로써 미래 기대 소득에 미치는 영향, 현재의 소득을 어떻게 관리하고 운용할지에 대한 기대 이익 등을 전혀 반영하지 못한 판단이었다.


[지금 원하는 것이 진짜가 아닐 수도 있다]

- 구조적 인식을 갖추고, 나의 꿈과 내가 처한 상황을 다시 돌이켜보라는 부분도, 당신이 미처 보지 못한 것을 보길 바라는 마음에서 추천했다. 단언컨대 '지금 내가 희망하는 것이 진짜'라는 생각에서 벗어남으로써 더 냉철하게 자기 자신을 검증하는 과정이 되리라 확신한다.

- 구조적 인식은 누구나 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도록 해준다. 그리고 이런 시각에서 냉정히 판단하면, '더 나은 물질적 기반'은 '더 나은 삶을 선택'을 허락해 줄 가능성이 높다. "돈이 많으면 더 좋은 선택을 한다."는 것이 아니다. "구조적으로 더 유리하므로 이를 논리적이고, 분석적으로 이해해 내 상황에 맞춰 활용해 보자."는 것이 내가 말하자고 하는 요지이다.

- 일례로 내가 어렸을 때 지겹도록 들을 말 중 하나가 "부자들의 사고방식을 따라 해라."였다. 다시 봐도 여전히 싫증 나는 이 문장을 "부자들이 가진 풍부한 물질적 기반을 염두에 두고, 그들이 누리는 높은 수준의 정보 자산과 지적 자원에 저비용으로 접근하거나, 전략을 모방하여 비슷한 효과를 내도록 노력해라."로 순화해 보면 어떨까?

- 당신은 월 1,000만 원 원을 버는 게 꿈인가? 아니면 충분한 자산을 모아서 은퇴한 후에 하고 싶었던 일을 하면서 사는 게 꿈인가? 그도 아니라면, 명예, 사랑, 혹은 다른 성공의 잣대를 만족시키는 것이 꿈인가? 지금 떠올린 그 꿈과 욕망이 자리 잡은 현실적 여건을 구조적으로 인식하고 돌아보았으면 한다. 다시 말해, '현재의 나'는 왜 그런 욕망을 갖게 되었는지, 내가 사는 모습이나 삶의 여건이 바뀌면 '미래의 나'는 당연히 다른 꿈을 갖게 되지 않을지, 그렇다면 머릿속을 복잡하게 채운 생각, 감정, 욕망의 뒤범벅에서 물러나, 그 뿌리가 된 나의 삶의 모습을 냉철히 바라보는 것이 '나의 꿈'을 생각할 때 가장 첫 번째로 해야 할 일이라고 본다.

- 참고로 나는 꿈에 대해 질문할 때 "나의 꿈은 무엇인가?"보다 "나의 꿈은 무엇이 될까? 왜 그렇게 될까?"가 더 적절하다고 생각한다. 미래를 가정하고 던지는 이 질문이 언제나 나의 꿈과 더 닮아 있었다.


[간접자본은 삶을 풍요롭게 한다]

- 세상 전부를 화폐 단위로 환산해 물질적으로 측정하는 것이 정상적인 사고방식도 아니지만, 나도 그렇거니와 독자들도 원하는 삶의 방식을 개척해 나가려면, 그게 꼭 돈은 아닐지언정 '가진 것'이 두둑해야 한다. 당연히 물질적으로 가진 것이 없어도 풍요로울 수 있다. 하지만 원하는 생활 방식을 누리려면, 가진 밑천이 있어야 한다. 예컨대, ✅ 내 주머니에 땡전 한 푼 없어도 만족하면서 살려면, 단순히 돈 몇 푼 버는 것보다 훨씬 힘든 정신적 자산이 뒷받침되어야 해서다.

- 물질적인 부분에 초연한 가치관을 가진 현명한 사람이 가족 중에 있어서 그로부터 진심 어린 감화를 받게 된다면 어떨까? 아마도 물질적으로 풍요로워도 돈 한 푼에 일희일비하는 사람보다는 나은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이러한 유형의 영향이 당장 사용할 수 있는 돈 따위의 형태가 아니더라도, 인간적 상호작용 범위 내에서 얻을 수 있는 삶의 자양분이 된다고 생각하기에 '간접자본'이라고 칭하고 싶다. ✅ 조금 더 쉽게 설명하자면, 나를 사랑하는 가족, 힘들 때 위로해 주는 배우자, 보기만 해도 힘이 나는 자녀, 늘 믿고 이야기할 수 있는 친구들과의 관계는 내 마음속에 왕복 10차로 경부고속도로가 뻥 뚫린 것처럼 살의 큰 버팀목이 되니, 간접자본이라고 하겠다는 것이다.

- 포괄적인 지적 경험의 공유는 대단히 제한적인 여건에서만 나타나는데, 부모와 성장기의 자녀 사이가 대표적인 사례 중 하나다. 그도 그럴 것이 이들은 생활을 공유하지 않을 수 없으며, 항상 친밀하게 교류하고, 연령 차이로 인해 사회 체험의 깊이와 지적 경험의 수준이 차이 날 수밖에 없다. 이로써 부모는 지적 경험을 전수하는 첫 스승이 된다. 때로는 터울 있는 형제나 부모 외의 동거 가족이 그런 역할을 함께해 주기도 한다.

- 이렇듯 부모는 자녀에게 가장 손쉽게 접근할 수 있는 지적 경험의 원천이므로, 어떤 부모를 두었느냐에 따라 가용할 수 있는 지적 자산에 큰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 애초에 미성년자녀는 부모의 보살핌이 있어야 할 뿐만 아니라, 사회 경험도 짧고, 무엇을 배워야 할지 알 수 없으니 부모의 결정에 따라야 하는 구조다. 그러므로 1차원적 정보와 지식의 허브로서 부모 혹은 그에 준하는 양육자의 역할이 절대적으로 부각될 수밖에 없다.


[간접자본의 차이를 이해하라]

- 물질적 자본뿐만 아니라 간접자본은 우리가 태어난 시점부터 성장기까지 강하게 지배하고, 어떤 이에게는 성인이 될 때까지, 어떤 이에게는 성인이 된 이후에도 한참 동안 영향을 준다. 또 어떤 이에게는 부모가 자식에게 몇 푼을 물려주느냐와 차원이 다른 차이를 만들어 주기도 한다.


["그래서 어쩌라고?" 묻지 마라]

- 지금까지 이야기한 내용을 정리하자면, "똑똑한 부모, 풍부한 지적 경험을 가진 부모, 혹은 귀중한 정보의 원천을 가진 부모는 자녀에게 든든한 간접자본이 된다."정도로 요약할 수 있다. 그럼, 그러한 부모를 두지 못한 사람이라면? ✅ 빈곤을 인지하고, 그것을 채우기 위한 전략적인 사고와 실행이 중요해질 것이다.

- 설령 기구한 운명으로 가짜 뉴스에 현혹되는 부모와 함께 성장하는 자녀라도, 가정의 정보 자산 및 지적 경험 빈곤을 구조적으로 인지할 수 있다면, 더 나은 방법을 찾아 나서는 것만으로도 빈곤의 잠심으로부터 멀어질 수 있다.

- 안타깝게도 간접자본은 물질적 자산보다 그 세습이 훨씬 더 경제적이다. 가진 것의 60%를 세금으로 내놓는다는 것은 그 누구에게도 엄청난 수준의 경제적 타격이다. 그러나 함께 시간을 보내며, 자연스럽게 전수되는 지적 경험과 정보 자산은, 세금을 물리는 사람도, 세금을 매길 방법도 없다. 그리고 이러한 차이는 알게 모르게 다른 형태의 부의 세습과 맞물려 공고하게 부의 흐름을 지배한다.

- 나는 당신의 가족도, 스승도 아니지만, 고작 30대에 불과한 젖먹이의 아빠가 나름대로 만들어 놓은 간접자본이 글로나마 전해졌으면 한다.


Part 2: 거친 사회로부터 스스로를 지키는 의심이라는 무기


[부모를 존중하되 이겨라]

- 어떤 부분에서는 분명 자녀가 부모를 넘어서게 되어 있다. 그러므로 모든 삶의 영역을 부모에게 의존하겠다는 생각은 버리는 것이 좋다. 지나치게 의존하기 시작하면, 합리성을 바탕으로 인생을 개선할 기회를 놓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당신을 사랑하는 마음에서 나온 조언이나 판단조차도 의심해 봐라]

- 중학교 1학년 정기고사를 준비할 때 어머니는 내게 "눈으로만 읽지 말고, 쓰면서 해야 공부가 된다."라고 했다, 어머니의 조언에 담긴 진심과 사랑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었지만, 결론적으로 이는 나에게 절대적으로 잘못된 정보에 가까웠고, 이를 무비판적으로 수용함에 따라 많은 시간을 낭비했다. 어머니를 사랑하지만, 틀린 건 틀린 거다.

- 망설일 것도 없이 한번 가늠해 볼 일이다. 내가 나도 모르는 새에 물려받은 그것이 내 자산인지, 혹은 탕감해야 할 부채인지와 더불어, 부모가 주입하는 삶의 방식이 과연 내 성장 잠재력에 맞는 풍부한 영향소를 갖춘 것인지.


[어르신들의 말을 귀 기울여 들어라]

- 편견으로 똘똘 뭉친 듯한 고리타분한 발화에도 지나치지 말아야 할 알맹이가 숨어있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왜냐하면 옛 어르신들의 대표적인 조언으로 "친구 잘 사귀어라.", "오토바이 타지 마라.", "사기꾼 많으니 조심해라."를 예시로 들었는데, 이를 귀 기울여 듣지 않음으로써 불과 나이를 몇 살 먹지도 않았는데도 이마를 '탁' 치게 하는 경험을 하다 보니, 뻔해 보이는 말도 흘려보내서는 안 되겠다는 깨달음을 얻어서다.

- 이처럼 모든 것을 직접 경험해 볼 수는 없다. 시간이 오래 걸리기도 하고, 사안에 따라서는 감당할 수 없는 위험도 따르기 때문이다.


[✅ 세상은 사기꾼 천지다]

- 결론은 검사가 따라오누 절차를 거쳐서 사기꾼의 사기 행위를 입증해야 해서 '사기를 쳤으니 벌을 받아야지.'라는 단순한 기준에 의해 피해자가 기대하는 처벌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란 말이다. 국가형벌권 발동은 훨씬 더 까다롭고 절제된 방식으로 작용된다.

- 첫째, 사기 피해자가 생각한 만큼의 형벌이 주어지지 않는다는 부분이다. 공문서를 위조해 담보가 있다며, 1억 5,000만 원의 돈을 빌려 가는 방식으로 사기를 친 경우와 같은 방식으로 7,000만 원의 돈을 빌려 간 경우 모두 징역 6개월이 선고되었다. 피해자와 합의도 전혀 되지 않았다. 게다가 그 돈을 모조리 탕진하여 피해 회복도 되지 않았다. 이런 방식으로 표현하는 것을 좋아하진 않지만, 6개월 징역살이를 이 사람들 직업이라고 치면, 한 사람은 연봉 3억, 한 사람은 1억 4,000만 원을 번 셈이다.

- 이러한 현실에서 사기의 재범률은 굉장히 높고, 잡히면 들어갔다 나온다는 생각으로 직업처럼 사기를 치는 사람이 매우 많다. 그들은 조직을 이뤄서 사기를 치고, 걸리면 법정에서 열심히 자신을 방어하고, 징역형이 선고되면 으레 받아들인다. 그사이에 피해자는 우후죽순 늘어나고, 자신이 입은 피해의 무게에 비해 보잘 것 없는 사기꾼의 선고형을 보며, 한번 더 괴로워한다. 10년 고생해 모은 돈을 빼앗겼다고 해서 사기꾼에게 징역 10년이 선고되는 것도 아니니까 말이다. 이렇게 국가형벌권이 피해자의 복수를 대신해 준다고 하더라도, 대부분 성에 차지 않음을 명심해야 한다.

- 둘째, 사기 피해 회복이 절대로 쉽지 않다는 점이다. 사기 범죄자들이 집행유예를 받거나, 형량을 줄이려고 피해자들과 합의를 시도하는 경우가 적지는 않다. 그러나 애초에 돈에 영혼을 팔아서, 돈이 좋아서 사기를 친 것이라서 사기로 번 돈을 모두 내놓는 사기꾼은 많지 않다. 심경의 변화가 와서 감옥에만 안 가면 모든 것을 다 포기할 수 있다는 생각이 아니고서야, 피해자가 입은 피해를 전부 변제해 주겠다는 사기꾼을 찾기는 드물다고 봐도 무방하다.

- '그렇다면 민사 소송을 통해 사기꾼에게 직접 돈을 받아내면 되지 않을까?' 하며 민사 소송 계획을 고려해 보기도 할 것이다. 만에 하나 해당 절차를 경험 삼아 밟아보고, 배우겠다는 의도면 말리지는 않겠지만, 사기가 직접인 사람들이 ✅ 사기로 돈을 벌어서 남들이 빼앗아 갈 수 있는 상태로 둘 것이라는 헛된 기대는 하지 않길 바란다. 민사 소송 따위가 들어와도 눈 하나 꿈쩍이지 않을 테니까. 기껏해야 교도소에 있는 사람 영치금 압류나 할 수 있을 뿐인데, 그것도 많아 봐야 금액 한도가 300만 원이니, 피해 변제에 턱없이 부족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 사기로 인한 범죄 피해만큼이나 조심해야 할 것은 사기죄로 처벌할 수 없으나, ✅ 속아서 돈을 뺏기는 경우다. 속아서 돈을 편취당했는데, 사기죄가 되지 않을 수 있음은 앞서 이야기한 바와 같다. 형사법이 작용하는 방식은 일종의 논리 게임과 같아서, 법이 발동하는 요건에 맞추어 증거자료를 가져다가 조립해 작동시키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그리고 그사이에는 수많은 변수가 존재한다. 가령 경찰이 수사해서 증거랄 잘 모아줘야 하고, 검사가 공소 제기와 유지를 적절하게 해야 하며, 이 과정에서 협의 인정이 더 수월하도록 피해자가 힘닿는 데까지 조력해 줘야 하기도 한다. 이런 요소가 잘 조합되어 논리 게임의 조건을 만족시키면, 판사가 그에 걸맞은 결론을 되돌려주는데, 그 과정과 규칙이 굉장히 복잡하다. 우리의 일상에서 경험하는 것보다 훨씬 엄격하고, 상식적으로 개연성이 높다는 이유만으로 그냥 그렇겠거니 넘어가지도 않는다. 이런 이유로 실무에서는 범죄인지 아닌지 긴가민가한 사건이 많이 걸러진다. 부도덕하지만, 처벌하기 애매한 많은 문제가 국가형벌권이 개입하지 않고, 당사자 사이에서 해결할 문제로만 남겨지게 되는 것이다. 심지어 처벌받아 마땅한 일인데도, 이 시스템을 운용하는 수사 기관, 법원 등의 오작동으로 제대로 된 결과가 나오지 않기도 한다. 더군다나 이 논리 게임의 기본값은 억울하게 처벌받는 사람이 절대 나오지 않게 하려는 데에 초점이 맞춰져 있지, 잘못한 사람들을 잡아다가 처벌하는 데에 맞춰져 있지 않다.

- 이렇다 보니 죄를 지었으면 벌을 받아야 하고, 사기를 쳤으면 감옥에 가야 한다는 상식과는 괴리감이 있는 결론을 마주하기가 쉽다. 법정에 가면 형사 처벌이 어려운 일이 태반일 수밖에 없고, 스스로 생각하는 도덕적 잣대를 가지고 잘잘못을 따져봐야, 피해자만, 더 속이 터지고, 억울해진다. 사회가 지향해야 하는 도덕적 기준점을 강제하는 것이 법원이 하는 일은 아니라서 번지수를 잘못 찾았다고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사기를 치고 싶지만, 처벌을 받고 싶지 않은 사람들은 법과 도덕적 규범 사이의 틈을 노리기 마련이다. 나는 감옥만 안 가면 된다며 사기를 칠 궁리를 하는 사람들을 막을 수는 없다.

- 우리 제도가 범죄와 형벌이라는 분명한 선을 두고 있음으로 ㅎ인해 종종 다른 규범적 기준이 모호해지는 듯한 느낌을 받을 때가 적지 않다. 예컨대, 상인이 물건을 비싸게 팔아 폭리를 취하는 것은 불법인가? 거래 당사자가 합의했으므로 단순히 비싸다는 것만으로 누군가를 처벌하지는 못할 것이다. 그렇다면 은행이 이자를 비싸게 받아 폭리를 취하는 것은 불법인가? 은행뿐만 아니라 개인이 빌려주더라도, 일정 수준을 넘어서면 불법이다. 물건값을 비싸게 받는 것과는 달리 돈값을 비싸게 받으면 처벌한다는 소리인데, 국회에서 그러한 법을 만들었고, 그것이 사회적 합의의 증거가 되어서다. 반면 인터넷 쇼핑으로 저렴하게 살 수 있는 물건을 가난하고 힘없는 노인에게 30배의 폭리를 붙여서 판매한다면 어떻게 취급해야 할까? 그리고 100원짜리를 3,000원에 파는 것과 1만 원짜리를 30만 원에 파는 것과 동일하게 취급할 수 있을까? 이렇게 꼬리에 꼬리를 무는 무수한 질문 모두에게 대해 정해진 대답이 있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그에 대한 사회적 합의와 결론은 의견 형성이 어떻게 되느냐, 사회적 변화가 어떻게 이루어지느냐에 따라서도 시시각각 변한다. 논리적으로는 어떤 결론이 나와도 이상하지 않을 문제인데, 그저 역사적인 결과로써 특정한 결론으로 이어지기도 하다.

- 초등학교 5학년 때의 일이다. 유명 브랜드 판매점이었는데, 좋은 모델을 할인 판매한다는 주인의 말에 넘어간 어머니와 나는 그 자리에서 그 금액을 치르고 자전거를 가져왔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내가 구입한 자전거 브랜드 홈페이지에 들어갔다가 같은 자전거를 훨씬 더 비싸게 샀다는 사실을 알았다. 저렴하게 준다고 해놓고 오히려 바가지를 씌웠으니, 뭔가 잘못됐다는 생각에 전거포에 가서 주인에게 따졌다. 그 자전거포 주인이 나와 어머니에게 절대 해서는 안 되는 짓을 한 건가? 그땐 그렇다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아니다. 그 사람은 장사를 하는 사람이고, 서로 자전거를 매매하기로 한 의사가 일치해서 거래가 일어난 것이다. 자전거포 주인의 입장에서는 어수룩한 홀어머니와 그 막내아들을 만나 그날 장사를 잘했을 뿐이다. 상거래라는 특수한 사정을 감안했을 때 이를 내 마음대로 정한 도덕규범에 맞추어 판단하기에도 다소 어려움이 있다. 나는 분명 사기당한 기분인데, 그건 그냥 내 기분일 뿐 설명하기 모호한 지점이 있다는 말이다.

- 그러므로 우리 개개인이 믿는 도덕적 규범과 기준은, 타인과 잠재적인 갈등 상황에서 급격한 성능 저하를 경험할 수 있다는 점은 늘 떠올려야 한다. 분명 내 기준에서는 용납할 수 없고, 억울하고, 분하고, 속은 것 같은데, 잘잘못을 따져보면 '사기죄'는커녕 '사기'라는 꼬리표를 붙이는 것조차 쉽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 그게 세상이 정한 기준에 비추어 봤을 때, 형법상 사기에 해당하든, 처벌할 수는 없더라도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이건 사기다."라고 하는 거래이든 간에, 사기를 친 사람에게 책임을 제대로 물을 수 있는 구조가 아니므로, 결국 사기를 피하려면, 스스로 대비하고, 대처할 수밖에 없다.

- 그래서 결론은 사기꾼은 많고, 당신이 사기라고 생각하는 그 무언가가 누군가에게는 사기가 아닐 수도 있으며, 법으로 처벌하기 어려울 수 있다는 말이다. 미리 조심해서 상기당하고, 이용당하고, 착취당하지 않기 위해서 노력하는 쪽이 훨씬 편하다. 다시 강조하지만, 사기꾼 조심하라는 말은 가볍게 흘리지 말아야 한다.


[거짓말에 상처받지 마라]

- 미국과 비교하면, 분명히 거짓말에 관대하다. 희한하게도 카페에 휴대폰이나 노트북을 자리를 비워도 아무도 집어 가지 않는 정직함과 준법의식이 있는 반면, 이상하게도 거짓말에는 관대하다는 것이 내가 여태까지 내 경험을 종합해 내린 결론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한국 육군과 미국 육군은 규모든, 역사든, 국력의 차이만큼이나 엄청난 차이가 있었지만, 그중에서도 구성원의 사고방식이 매우 달랐다. '가라치는' 행위에 대해서 가지고 있는 기본적인 감각 차이는 내가 경험한 바로는 하늘과 땅 차이만큼 컸다. 돌발 상황이 생기면 귀찮은 일을 최대한 줄이려고 하고, 자기 선에서 감추기에 급급한 한국 장교들의 모습과 투명하게 정보를 공유하고, 있는 그대로 일을 처리하려는 미국 장교들의 모습 차이는 젊은 병사인 내 눈에 인상 깊게 남았다.

- 조금 더 나이를 먹으며 경험을 해보니, 분명히 문화/사회/제도적인 차이가 있는 것처럼 보였다. 예컨대 변호사가 너무 많아 발에 차인다는 미국 변호사가 되기 위해서는 주마다 다르지만, 'Moral Charater Determination'이라는 것을 받아야 하는데, 이는 변호사협회에 입회하기 위해 적당한 도덕덕 기준을 충족시켰는지를 심사하는 과정이다. 여기서 '가라 진술'을 했다가 들통나면, 등록이 거절되고, 미국 변호사로 활동하는 데 상당한 불이익을 받는다. 즉, 거짓말 한번 잘못했다가는 오히려 변호사가 되지 못하는 리스크를 부담해야 하므로, 잘 숨길 자신이 없다면 웬만하면 거짓말을 해서는 안 된다.

- 이렇게 본인에게 질문을 하고, 거짓말을 하면 상당한 불이익을 주는 가장 대표적인 사례는 미국 입국을 위해 비자를 받을 때다. 차라리 비자 발급이 거절되는 것이 낫지, 거짓말쟁이 나긴이 찍히는 순간 영영 비자를 받기 어려워진다고 하는데, 이는 사실에 가깝다.

- 하지만 제도적으로 '거짓말하면 불이익을 준다.'라고 비슷하게 정하고 있는 경우라도, 제도의 운용과 설계의 세밀한 차이를 관찰하면, 분명히 한국은 거짓말에 더 관대하다. 당연히 미국도 소송 관련인들이 숱하게 거짓말을 하겠지만, 미연방 민사소송법만 보더라도 변호사 입장에서는 훨씬 부담스러운 규정이 있다. 이 규정이 우리 민사소송법의 규정보다 훨씬 포괄적이고, 광범위한 것이 특징이다. 괜히 법원까지 와서 애매한 거짓말이나 하며 시간 낭비하는 경우, 본때를 보여주겠다는 의지의 표시인 셈이다. 자조적 얘기를 하려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기준이 다르다는 이야기일 뿐임을 분명히 하고 싶다.

- 거짓말을 참는 것은 개인의 양심의 잣대 문제일 뿐만 아니라, 그를 둘러싼 사회구조와 환경의 문제라는 점을 이해하고, 특히 도덕적인 이상향을 배워 온 건전한 청년들이 사회에 나가기 전에 얼마나 많은 거짓말이 이 세상에 오가고 있는지를 납득시키고 싶다. 한마디로 세상 모든 사람이 취해 있는데 혼자 맨 정신이면, 취하지 않은 사람이 어지러움을 느낄 것이기에, 거짓말에 관해서는 어떤 현실이 팽배해져 있는지 미리 자각했으면 하는 바람이 크다.


[작은 거짓말 vs 큰 거짓말]

- "충분히 큰 거짓말을 계속하면 사람들은 계속 그것을 믿게 된다." 제2차 세계 대전의 독일 전범 요제프 괴벨스가 한 말로 알려진 인용구다.

- 차원이 다른 거짓말과 수준이 다른 뻔뻔함을 보여주지만, 그것을 막을 방법도, 일반적인 도덕규범을 기준으로 단죄할 방법도 없다. 그 거짓말들은 너무 크고 강해서 더 크고 강한 진실의 힘이 없다면, 손쓸 도리가 없을 정도다. 게다가 적어도 그 거짓말을 하는 사람들의 세계관에선 그것이 진실이고, 그것이 정의라서, 결국 힘 대결로 결론이 나는 경우도 적지 않다. 경찰은 야밤에 철물점 화투판을 급습하는 일은 있어도, 강원랜드 바카라판을 급습하는 일은 없다.

- 우리가 건강한 사회 구성원으로 살아가려면, 법은 꼬박꼬박 지켜주는 것이 기본이다. 그런데 고작 그 내용물에 무엇이 섞여 있을지 모른다는 결론이라니 조금 배신감이 들 수 있지만, 냉엄한 현실이고, 마주해야 할 역설이다. 큰 거짓말쟁이들의 거짓말은 점점 더 대담해지고, 큰 불의를 자행한 사람들은 점점 더 뻔뻔해져, 그 경계를 모호하게 만든다. 그렇게 점점 더 해 먹기 좋은 세상이 된다. 안타깝지만 그게 현실이다.


[비난 올림픽 뒤에 가려진 모습을 보라]

- 대한민국이 OECD 국가 중 사법 신뢰도 부문에서 만년 최하위권을 기록하고 있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사법 기관뿐만 아니라, 정부, 정치인, 공적 기관 등에 대한 신뢰도도 상당히 낮은 편이다.

- 사적 복수와 구제가 법으로 금지된 우리나라 제도하에서 피해자가 할 수 있는 방법은, 수사 기관에 수사가 개시되도록 수사의 단서를 제공해 주고, 그나마 증거라도 찾아주고, 필요하면 증언을 하고, 그 이후에는 사법 기관의 처분을 기다리는 정도이다. 분명 나는 큰 피해를 봤는데, 가해자가 그걸 돌려받을 때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고, 그마저도 수사 기관이 어떻게 수사했느냐, 남아있는 증거가 얼마나 있느냐에 따라 처벌하지 못하는 경우도 발생하다 보니, 이런 경험을 해본이들일수록 국가에서 해줄 수 있는 것에는 한계가 명확하다는 생각을 갖게 되는 듯하다.

- 도덕적 엄숙주의는 '죽일 놈'과 '아닌 놈'만 있지, 그 흑백 기준 사이의 그러데이션을 보기가 대단히 어렵다. 도덕성을 지키는 것은 개인이든, 사회든, 정말 어려원 일이다. 그런데 나쁜 놈은 다 죽여야 한다는 단순한 생각으로만 바라본다면, 교묘하게 숨어서 나쁜 짓을 하는 사람들의 손에 놀아나기 딱 좋다. 누군가 잘못을 했다고 손가락질하면, 몰려가서 욕하기 바쁜 세태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들은 단순한 사고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방식으로 큰 도둑직을 하는 파렴치한들이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그게 뉴스거리가 되면 될수록 기분 좋은 사람들은 따로 있는 법이다.


[여전히 부해한 공권력은 존재한다]

- 법원에서 일하던 그 공무원은 내가 업무상 알게 된 지인이 서둘러 처리할 일이 생기자, 신속하게 진행해 줄 테니 "이것만 있으면 된다."며 손가락을 펼쳐 숫자 '5'를 표현하는 제스처를 취했다. 그때까지 법원에 가지고 있던 환상과 믿음이 산산조각 나는 순간이었다.

- 부패한 공직자들과 같은 눈높이에서 거래하고, 그들과 함께 범죄를 저지르라는 이야기는 할 수 없지만, 적어도 교과서에서 배웠던 것처럼 모든 것이 규칙대로 돌아가고, 모든 일이 도덕적 규범에 맞게 일어나고 있지는 않다는 점을 알아야만, 그들 앞에 펼쳐질 상황이 훨씬 더 잘 설명될 것이기에.

- 정상적인 교육을 받아 건전한 규범적 사고를 하는 개인이 할 수 있는 일은 과연 무엇일까? 혼자서 정의를 부르짖다가 마약 카르텔에게 끔찍하게 죽임을 당하는 게 정답일까? 의미 없는 삶은 아니겠지만, 그렇다고 나의 자녀에게 권하고 싶은 삶의 방식도 아니다.

- 공공 영역의 부패와 비리는 그야말로 답이 없다. 그걸 파헤쳐서 잡아내겠다고 선뜻 나서서 싸우는 것도 쉽지 않고, 그들과 결탁해 같이 비리를 저지르는 것은 더더욱 해서는 안 될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그런 어중간한 상황에서 대체 어떤 선택을 해야 할지가 마땅치 않게 되는데, 여전히 대한민국에서 그런 상황과 마주하는 경우가 왕왕 있을 수 있다는 건 한심스럽고도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일단 그럴 수 있다는 것을 혹시라도 직접 경험해 보지 못한 사람들이 있다면, 이 책을 읽는 독자에게도 꼭 알려주고 싶다.


Part 3: 적당히 비뚤어진 세상을 꿰뚫어 볼 판단력이라는 무기


[돈이 있어야 반성하는 법도 배운다]

- 사건의 당사자와 신만이 아는 객관적 진실을 그 현장에 있지도 않았던 제3자가 판단하기에는 당연히 한계가 따를 수밖에 없다. 그래서 중립적인 심판의 입장에서는 검사의 애초에 국가가 멀쩡히 자유롭게 잘 사는 피고인을 데려다가 애매한 이유로 처벌하면 안 되고, 이를 막기 위한 제도 확립을 위해 수많은 사람이 목숨을 바쳐가며 애써왔기에, 형사 재판은 죄의 입증 방법과 입증 정도가 엄격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피고인은 잘 싸우는 것이 중요하다. 이건 우리나라만 그런 것이 아니라 현대적인 형사재판 제도를 가진 모든 나라가 공유하는 공통점이다.

- 그렇다 보니 자연스럽게 이런 싸움을 대신해 주는 용병의 존재가 중요하게 된다. 검사야 국가를 대신해 전문적으로 피고인과 맞서 싸우는 법률 전문가이니 싸움의 능력과 기술은 가장 뛰어날 것이다. 그래서 피고인에게는 그를 조력할 변호인의 존재가 재판의 결과를 바꾸는 아주 중요한 요소가 되기도 한다.

- 변호인의 존재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 수 있는 단적인 사례를 들면, 피고인이 돈이 없어 변호인을 못 구했는데, 긴가민가한 사안에 대해 허무하게 법정에서 자백해 버리면 유죄를 피할 수 없다. 만약 애매한 상황에서 자백하지 않게 되고, 나아가 애매하기 때문에 무죄도 받을 수 있는 사건이라면, 그야말로 유전무죄 무전유죄가 되는 것이다.

- 그런데 잘 싸우는 사람을 고용하려면 돈이 필요하니, 결국 돈 많은 사람은 싸움에서 유리하고, 이기기 어려워 보이는 상황에서도 곧잘 이기는 듯한 결과가 나타난다. 억울하기도 하지만, 이보다 나은 제도적 장치를 아직까지 발견하지 못했고, 국선 변호인부터 법률 구조까지 보조적 장치를 통해 이를 보완하려고 하고 있으니, 역사적으로도 그나마 제일 낫다고 평가된 이 제도를 획기적으로 고치거나, 뒤집어엎을 수 없다면 유전무죄 무전유죄의 결론으로부터 완벽히 자유로울 수 없는 구조적 모순이 있는 것이다


[세상에는 없어야 할 거짓말이 차고 넘친다]

- "사업가와 사기꾼은 종이 한 장 차이다."

- 모험 자본 투자의 특성으로 인해, 모험 자본으로 성장해야 하는 사업의 창업자 상당수가 그에 맞는 화법을 구사해야만 투자금을 받아 살아남을 수 있고, 그 과정에서 숱한 과장과 허풍이 난무한다는 것이다. 이런 과장과 허풍을 잘 구사하는 것이 더 많은 돈을 끌어 모으는 데에 중요한 요소 중 하나라서, 업계의 과장과 허풍에 대한 표준이 점점 올라간 경향이 있다. 그런데 너무 많은 과장과 허풍이 난무하다 보니, 그 업계에 있는 사람이 사실을 얘기하더라도 으레 과장과 허풍을 섞인 것으로 생각해 의심부터 하기도 한다.

- 최근 몇 년간 이어진 스타트업 열풍 속에서 '혁신'이라는 이름을 붙이면, 웬만한 엉뚱한 짓을 하더라도 거의 용서받는 분위기다 보니, 자칭 사업가인 사람들의 허풍과 과장이 도를 넘는 것 같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이와 관련해 로펌에서 AI 관련 사업부를 책임지는 지인 변호사와의 대화가 기억이 난다. 대략 AI 관련 일을 한다는 사람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적지 않은 사람이 단순 과장을 넘어 '기망'을 하는 듯한데, 변호사로서 똑같이 하기는 겁난다는 내용이었다. 앞서 설명했다시피, 기망은 사기죄의 구성 요건이다.

- 세상은 거짓투성이다. 어떤 영역에서는 거짓과 과장을 구분하기 어렵고, 기망과 허풍을 구분하기 어렵다. 그러나 이를 감안하더라도 세상에는 뻔한 거짓말이 너무 많다. 많은 사업가가 뻔한 거짓말을 하고, 타인을 속인다. 살아남기 위해서, 더 잘되기 위해서 그런 일을 한다.

- 나는 사업한다는 사람들의 말을 이제는 곧이곧대로 믿지 않는다. 때에 따라서 그들이 사람을 속일 이유는 충분하니까. 나의 자녀에게 거짓말쟁이가 되는 선택지는 절대 권하고 싶지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세상에 거짓이 끊임없이 양산하는 구조적 원천에 대해서는 꼭 이해시켜 주고 싶다.

- 누군가는 거짓말을 할 그럴듯한 유인이 있다. 특정 분야, 특정 업계는 더더욱 그러하다. '사업하는 사람'이 대표적인 그룹이다. 이를 통해 내린 결론은 내가 교육받은 도덕적 규범과 세상의 문법은 다르다는 것이다. 괜히 속지 않으려면, 여기에 대한 견해를 미리 정리해 두는 게 좋다.


[솔직하지 못한 장사꾼들을 인정해라]

- 결론적으로, 무언가를 파는 사람은 대개 완전히 솔직해지가 어렵다.

- 이 책을 관통하는 생각 중 하나인 현상에 대한 구조적인 이해는 오히려 넘쳐나는 상업적 자극에서 비롯된 고민으로부터 나를 해방시켜 준다. '무언가를 팔아야 하는 사람들은 과연 나에게 솔직한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상황인가?', '그들은 나에게 필요한 정보를 진정으로 제공해 줄 수 있는가?', '그들과 나 사이에 이해상충의 가능성은 없는가?', '만약 있다면 얼마나 큰가?'와 같이 구체적으로 생각하지 않더라도, 무의식 속에 담긴 근본적인 의심은 이른바 '바가지'를 쓸 확률도, '눈탱이'를 맞을 확률도 줄여준다. 다시 말해 자연쓰레 쓸데없는 물건을 덜 사게 되고, 이상한 걸 잘못 사거나, 비싸게 샀다가 스트레스받을 확률도 적어진다는 얘기다.


[모두가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다고 믿지 마라]

- 겉으로만 사람을 판단하지 말라는 어렸을 때부터 받은 가르침에 충실하게 내 생각을 가다듬고 유지한다고 해서, 세상 사람도 나와 똑같이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전혀 생각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적절한 자랑은 필살기가 된다]

- 각종 SNS와 다양한 플랫폼의 후기와 리뷰란에 가득한 사회적 증거를 보고 나면, 이 중 상당 부분이 가짜일 수도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아예 정보가 없는 선택지를 선뜻 선택하기란 정말 어렵다. 그리고 일정 숫자 이상의 사람들이 남긴 후기와 리뷰를 보고 난 후에는, '설마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다 거짓말을 할까?' 하며 의심도 거둬들이게 된다.

- 자랑과 과시가 먹히지 않은 세상이 올 수 있을까? 절대 그렇지 않을 것이라고 본다. 그러니 자랑쟁이 사이에 껴 있는 쭉정이를 알아보는 눈을 갖추고, 필요할 때 적절한 자랑을 펼칠 수 있다면 제일 유리하지 않을까. 부쩍 겸손만이 세상을 살아가는 유일한 방법이 아니라는 생각에 곁눈질로 자랑쟁이들의 생존 방식을 배워가고 있다.


[나를 알리지 않으면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다]

- 유명해진다는 것은 가치가 있다. 그렇다고 모두에게 대중적인 인지도 필요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누구든 자신이 선택한 분야와 범위 안에서는 유명해져서 절대 나쁠 것이 없다.


Part 4: 세상의 편견에도 무너지지 않을 당당함이라는 무기


[학벌주의에서 나를 증명하는 법]

- 미국은 성과주의 경향이 강하니 학벌에 상관없이 능력에 따라서만 공정하게 평가할 것 같지만, 그들의 능력주의에는 학벌이라는 기준이 포함된다. 애초에 학벌은 선발 과정의 경쟁, 더 좋은 교육, 더 나은 인적 네트워크와 연관될 수밖에 없으므로, 능력주의와 떨어뜨려 생각할 수 없다.

- 능력만 입증할 수 있다면 꼭 대학을 진학하지 않아도 좋고, 능력을 입증하는 방법은 무궁무진할 것이다. 다만 학벌 외에 다른 입증 방법이 무엇이 될지, 그것이 얼마나 어려울지는 치열한 고민이 필요하다. 그런 고민이나 구체적인 대안 없이 아직까지도 우리 사회의 사고방식을 관통하는 능력주의에 함부로 도전하려는 것은 무모해 보인다.


[든든하게 보호하고 사회로 나가라]

- 사회인으로서 처음 발을 내딛고 나면, 사회에서 마주치는 사람 중에는 먹고사는 문제에 몰입해, 당신을 착취하려고 혈안이 된 괴물이 있을 수도 있고, 자신의 열등감을 감추기 위한 방편으로 자기보다 약해 보이는 사람에게 모멸감을 주는 정신병자도 있을 수 있으며, 같은 편인 척 살랑대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배신하려고 작정을 한 비열한 악당도 있을 수 있다. 당연히 이들을 만나고 싶지 않겠지만, 안타깝게도 이런 종자들과 만나게 될 가능성이 아주 높다.

- 사고처럼 다가올 수 있는 일련의 추악한 일들에 대비해 스스로를 보호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맨탈을 지키려면 변해야 한다]

- 먼저 사람을 잘 믿지 않게 되었다. 너무 많은 사기꾼을 만났고, 내 편이라고 믿었던 사람들에게 배신을 당했기 때문이다. 멀쩡했던 사람이 변해가는 것을 보기도 했고, 인간저그로 열과 성을 다해 신뢰를 주었던 사람이 결국 이를 저버리는 광경을 목격했다.

- 두번째로 교류하는 상대방이 내 호의에 보답할 것이라는 기대를 하지 않게 되었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이고, 굳이 크게 기대했다가 실망할 이유가 마땅히 있지도 않아서, 사회에서 교류하는 상대방이 내 호의와 기대에 부응할 것이라는 기대가 극히 낮아졌다.

- 그다음으로는 내가 책임져야 할 친지와 비즈니스의 상대방을 명확히 구분하게 되었다. 내가 진정으로 위해 줄 내 가족과 친구는 친밀한 관계의 대상으로서 조건 없이 챙겨 줄 수 있지만, 모든 비즈니스 상대방이 나의 친구가 될 수는 없고, 그렇게 될 필요도 없다는 것을 인정하고, 그에 맞추어 행동하게 되었다.

- 마지막으로 조금 더 나의 이익을 챙기는 사람이 되었다. 이기적으로 변했다는 의미이기도 한데, 전혀 나쁜 변화라고 느껴지지 않는다. 너무 과도하게 상대방의 입장을 생각하고, 하지 않아도 될 걱정을 달고 사는 습관을 버림으로써, 더 나은 삶을 살게 되었을 뿐이다. 다시 말해 마땅히 지킬 규칙과 상호 간 예의를 지키는 것 외에 너무 많은 입장을 고려하고 배려하려는 주제넘은 생각을 자제하려고 노력하게 되었다. 남을 대신해 싸우는 변호사라는 자격사가 된 만큼 이익이 대립하는 상대방에 대해서는 필요한 경우 맹렬한 공격을 퍼부을 수 있는 몸과 마음의 준비를 갖추게 되기도 했다.

- 내면의 변화를 슬며시 고백하는 이유는, 아마도 이러한 방향의 변화가 대부분의 사회초년생이 겪게 될 상황이고, 한때 유순했으나 삶의 풍파를 맞아 억세진 어른들이 겪은 일이라고 생각해서다. 결국 이용당하고, 착취당하기 십상인 험한 세상에서 자연스럽게 맞이하게 되는 변화의 일부라고 본다.

- 한편 나는 누구에게나 친절하고, 이타적이며, 너그럽고 호의를 베풀 아량이 있으면서도, 돈은 많이 버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것이 허황된 육심에 가까운 생각이었음을 깨닫는 데에는 10년이 채 걸리지 않았다 애초에 어려운 일인 데다가, 굳이 반드시 그래야 할 이유가 있지도 않은 일이었다.


[불필요한 인간관계에 힘 빼지 마라]

- 옛말에 끼리끼리 논다는데, 나도 좋은 끼리가 되기 위해서는 내 주변에 어떤 이들이 있는지, 내가 내 주변에 어떤 도움을 주고, 어떤 인연이 되어주고 있는지를 냉철히 돌아보고 더 나은 사람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이것이 인생을 소모하는 인간관계에 단 1초도 더 낭비할 여유가 없는 까닭이다.


[불편한 감정을 그대로 수용하라]

- 왜 삶은 나아졌는데 사람들이 더 불행해졌을까? 사실상 삶이 나아지지 않았다고 주장한다면, 그건 거짓말이라고 본다. 그러나 우리 삶의 만족도란 결국 객관적인 삶의 여건만이 문제 되는 건이 아니라, 다른 사람과의 비교를 통해서 확인되는 자신의 상대적 지위와 위치에 의해 영향을 받는데, 대도시에 옹기조이 모여 살며, 다른 사람들의 삶을 목격할 수밖에 없는 우리에게 비교하는 삶은 피할 수 없는 숙명과도 같다.

- 비교하는 습성이 있다고 삶이 무조건 나아진다고는 못 하겠지만, 적어도 이 습성은 인류 역사상 진화라는 과정을 통해 제법 생존과 번식에 쓸모가 있었던 것으로 본다.


[자기 자신에게 중독되어라]

- '셀프 보상회로'라고 부르는데, 다음과 같은 원리를 핵심으로 설계했다. 인간은 무언가 목표한 바를 성취하면 도파민이 분비되고, 그로 인해 즐거움과 쾌락을 느낀다.

- 아무런 성취 없이 살아가기엔 인생이 길다는 이야기다. 그리고 아래의 사항은 내가 셀프 보상회로를 완성하는 데 고려하는 부분이다.

- 첫째, 너무 크거나 멀어 보이는 목표는 세우지 않는다. 굳이 세워야겠다면, 잘게 쪼개어 단계별로 달성할 수 있게 한다. 그 이유는, 꿈을 크게 갖는 것도 좋지만 목표가 너무 크고 요원하면 재미도 없고 성취로 인한 보상감도 느낄 겨를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스스로 자주 성취감을 느끼고, 나아지고 있다는 것을 인지하고, 또 행복감을 느낄 수 있도록 목표를 위한 노력과 성취가 적당히 반복될 수 있도록 배치해 지루함을 느끼지 않도록 한다. 목표로 나누어서 하는 설계가 더 좋은 결과를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하는 데에 더 효과적이다.

- 둘째, 실패를 연거부 하지 않도록 도전과 성취의 난이도 조절을 적절히 한다. 즉, 불가능한 영역만 시도하지 않는다. 운이 따르면 성공할 수도 있지만, 실패만 하다가 끝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또 그렇게 된다면 불행감만 느끼게 되어 무언가를 위해 새로 노력한다거나 도전할 의욕조차 사라진다. 이를 위해서는 나의 현재 수준을 진단하고, 그에 걸맞은 난이도의 성취 목표를 구체화해야 한다.

- 셋째, 도전과 성취의 과정에서 경제적인 보상으로 대표되는 현실적인 삶의 여건을 절대 간과하지 않아야 한다. 물질적 고민의 해결은 삶에서 많은 고민을 덜어준다. 사정이 이러하니 나의 성취가 현실적인 고민을 자연스럽게 풀어주고, 스트레스 수준을 낮춰주는 설계를 하여 이를 따라간다면 삶의 만족도도 자연스럽게 높아질 수 있는 것이다.

- 넷째, 개인적 성취에 중독되어 그것이 삶의 전부가 되어버리지 않도록 자각하고, 균형을 맞추고자 한다. 어차피 인간의 삶은 유한하고, 죽음에 앞서 현실적인 이유로 도전을 멈춰야 할 시기가 온다. 아무리 뜨거운 열정을 가지고 도전을 계속한다고 하여도 언젠가는 새로운 성취에 실패하거나, 건강상의 문제로 더는 도전을 하지 못하게 되는 상황이 오는 것이다. 언젠가는 필연적으로 마주치게 되는 좌절과 포기, 그리고 도전의 중단이 삶의 끝을 의미하지 않음을 인지하고, 개인 성취와는 별개로 의미를 부여할 무언가에 대해 고민할 필요가 있다. 이를테면 가족과의 유대관계, 친구와의 우정을 통한 충만감, 정신적 안락함, 고뇌가 없는 편안함, 인류애와 사회적 연대감에 기초한 정의 실현 등 진정으로 의미를 부여할 만한 여러 가치가 있을 것이다.




저마다의 편향된 시각을 가졌음을 인지하고, 모두가 자기 줏대를 뽐내면서도 서로의 편견과 꼰대스러움을 인정하고 존중해 줄 수 있는 자유와 여유가 충만한 사람들로서 마주했으면 하는 소망으로 마침표를 찍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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