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난 줄 알았던 꿈은 다른 곳에서 뛰기 시작했다

집사 그래서 내 꿈은 뭐야?

by 고양이시인
DSC07380.JPG

집사가 돌아와 나를 침대에 앉히고 천천히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목소리는 차분했지만, 그 속에는 무언가 깊은 울림이 있었다. 축구 선수의 꿈을 가진 학생 이야기를 들려줄 때 집사의 눈빛은 어딘가 먼 곳을 바라보는 듯했다. 나는 꼬리를 천천히 흔들며 이야기를 듣기 시작했다



수업이 끝난 후 아이들이 하나둘 강의실을 떠났다. 창밖으로 저무는 해를 보며 가방을 챙기려던 찰나, 한 명의 학생이 눈에 밟혔다. 고등학교 2학년, 누구보다 축구를 사랑했고, 축구선수라는 꿈 하나만 바라보며 달려왔던 아이였다.

하지만 그 아이의 시간이 한순간에 멈춰 버린 건 몇 주 전이었다. 축구 경기 도중 부상을 당한 아이는 병원에서 청천벽력 같은 진단을 받았다. 부상의 정도가 심해 선수 생활은 더 이상 어렵다는 것이었다. 진단 결과를 듣고 돌아오는 날, 그 아이는 무표정한 얼굴로 자리에 앉아 창밖만 바라보고 있었다. 얼굴에는 감정이 지워진 듯했지만, 무너진 세상을 억지로 붙들고 있는 듯한 흔적이 역력했다.

처음에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그의 어깨에 살짝 손을 올리며 물었다.

"괜찮아? 무슨 일 있으면 선생님한테 말해도 돼."

아이는 고개를 천천히 저으며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괜찮아요..."

그러나 그의 눈은 전혀 괜찮지 않았다. 눈동자 속에는 좌절과 두려움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한순간에 모든 것을 잃어버린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공허함과 불안이 그 눈빛에 서려 있었다. 나 역시 무엇을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몰라, 다시 자리로 돌아와 앉았다.

며칠 뒤, 나는 조심스럽게 다가가 예민할 수 있는 질문이란 걸 알면서도 아이에게 말을 걸었다.

"혹시 다른 꿈을 생각해 본 적 있어? 네가 잘할 수 있는 다른 것들 말이야."

그러나 아이는 차갑게 대답했다. "선생님, 저한테는 다른 꿈같은 거 없어요. 축구가 전부였거든요."

그 말에 내 가슴이 먹먹해졌다. 희망과 용기만 있다면 그의 꿈이 발 디딜 수 있는 곳은 많다 생각했지만, 지금은 그런 조언이 이 아이에게는 형식적인 위로에 불과함을 느꼈다. 나 역시 어렸을 때 좌절을 맛본 적이 있었기에, 그의 절망이 얼마나 깊은지 짐작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런 모습이 보일수록 그 아이가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돕고 싶었다. 그러나 내 마음과는 다르게 아이는 점점 더 내 도움을 거절했다. 수업이 끝나면 곧바로 교실을 떠났고, 나와의 대화를 피하려 했다.

그날은 시 창작 대회가 있어서 지금 마음을 써 보라고 제안을 했을 때였다. 나는 그의 마음을 알기에 억지로 강요하지는 않았다. 단지 조용히 종이 한 장을 그의 책상 위에 올려두며 말했다.

"한번 써 보고 싶으면 써 봐. 네 마음속 이야기를 글로 풀어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거야."

며칠 후, 아이는 조용히 내게 다가와 구겨진 종이 한 장을 내밀었다. 그곳에는 짧은 시가 적혀 있었다.

"넘어진 그 자리에서 난 멈췄다.

다시 일어날 힘도 없었고, 길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언젠가 다시 뛰고 싶다.

다만, 그 길이 어디로 향할지는 모르겠다."

나는 그 짧은 시 안에 담긴 긴 감정을 한동안 읽어 내렸다. 마음속 깊은 곳에서 울컥하는 감정이 치밀어 올랐다. 아이가 자신의 상처를 정면으로 마주하기 시작했다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다.

"좋은 글이네."

며칠 후, 학교 운동장에 우두커니 서 있는 아이를 발견했다. 그날은 유독 바람이 차가웠다. 나는 아이 곁으로 다가가 조용히 물었다.

"뛰고 싶어?"

아이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네... 가끔 꿈처럼 생각나서요. 다시 뛰고 싶어요. 그런데 그러면 안 될 것 같아서 무서워요. 그 순간이 너무 그리운데, 그 그리움이 두려움으로 바뀌어요."

나는 잠시 그 말을 곱씹었다. "꿈이 그립고 두려운 건 당연한 거야. 네가 그 꿈을 사랑했으니까. 하지만 그 사랑이 사라진 게 아니라, 다른 형태로 네 안에 남아 있는 거야. 네가 진정 다시 뛰고 싶으면 넌 그걸 찾기 위해 다시 일어설 책임이 생기는 거야."

그날 이후로 아이와 나의 대화는 조금씩 달라졌다. 여전히 힘든 순간도 많았지만, 아이는 천천히 새로운 길을 찾아가기 시작했다. 어느 날, 그는 나에게 조심스럽게 말했다.

"선생님, 저 요즘 스포츠 심리학에 관심이 생겼어요. 부상당한 선수들을 돕는 일을 해 보고 싶어요."

나는 활짝 웃으며 대답했다. "정말 멋진 꿈이야. 네가 하기 때문에 더 의미 있는 순간들이 될 거야."


고등학교 2학년, 축구를 누구보다 사랑했던 아이가 경기 중 부상을 입고 선수 생활을 그만두게 되었다는 이야기였다. 집사의 목소리가 잠시 떨렸다. 아마도 그 아이의 좌절이 집사의 마음을 무겁게 눌렀던 것 같다.

부상의 충격으로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된 아이. 창밖만 바라보던 무표정한 얼굴. 집사는 그 모습을 떠올리는 듯 잠시 말을 멈추고 눈을 감았다. 나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집사를 응시했다. '사람들의 세상은 참 어렵다.' 꿈을 잃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아픔인지 알 수가 없다. 아니, 정확히는 꿈을 꾼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 수 없었지만, 그걸 잃었을 때의 감정이 집사의 말과 표정이 우울한 걸 보니 무척이나 소중한 것임은 분명했다.

“괜찮아? 무슨 일 있으면 선생님한테 말해도 돼.” 집사가 아이에게 했던 말이 마음에 남았다. 집사가 상담을 하고 오는 날이면 늘 집에 오는 길에 인형 뽑기 가게를 들른다. 침대 위에 종종 쌓여가는 각각의 인형이 집사의 책임감이란 생각이 들었다. 나도 예전에 아팠을 때, 집사가 내 곁에서 같은 말을 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상황은 다르지만 그 따뜻한 마음에 인형도 미소를 보이는 게 아닐까.

나는 눈을 살짝 감고 집사의 이야기에 집중했다. "그 아이가 선의를 계속 거절하다가 결국 작은 시 한 편을 쓰면서 마음을 연 것 같아." 그 아이가 쓴 글의 일부를 읽는 집사의 목소리는 아주 조용했지만, 그 시 속에 담긴 혼란스러운 마음은 넓게 파동을 일으키며 번지는 듯했다. 넘어진 자리에서 다시 일어나고 싶지만, 어디로 향할지 몰라 막막하다는 그 글. 나는 그 시가 집사에게 얼마나 특별하게 다가왔을지

“뛰고 싶어?” 집사가 아이에게 물었다는 순간, 나는 집사의 손끝이 살짝 떨리는 것을 느꼈다. 그 질문이 조심스러웠지만, 실은 아이를 위해 할 수밖에 없는 말임을 알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마침내 아이가 새로운 꿈을 찾게 되었다는 이야기에 이르렀을 때, 그의 삶을 응원해 주는 사람이 있어 다행이라 생각했다. “스포츠 심리학을 공부해서 부상당한 선수들을 돕고 싶다”라고 했던 아이의 말이 집사의 입에서 나왔다. 내 가슴도 따뜻해졌다. 아, 저 아이는 다시 뛰고 있는 거구나. 다른 방식으로, 다른 길에서.

나는 집사를 올려다보며 가만히 머리를 집사의 무릎에 기대었다. 집사는 내 등을 천천히 쓰다듬으며 말했다.

“고마워, 너도 항상 내 이야기를 들어줘서.”

그 따뜻한 손길이 내 등을 타고 내려올 때 나는 눈을 감았다. 집사의 이야기는 끝났지만, 그 속에 담긴 감정은 내 안에서 오래오래 퍼져갔다. 사람도, 고양이도 누군가 곁에 있어주는 게 얼마나 큰 위로인지. 나는 그걸 잘 알고 있었다.



월, 수, 토 연재
이전 05화오늘은 내가 주인할게, 반려 집사는 좀 쉬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