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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슬 Mar 05. 2020

DAY2.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사이에서

런던 근교 윈저성 - 13년만에 밝혀진 티켓의 진실?!

*) 정확히 2007년의 여행기로 아무런 정보도 없음을 미리 말씀드립니다.



알람도 맞춰놓지 않았지만 엄청나게 빠른 시간에 시작한 2일차 일정. 이유는 전 날 저녁도 먹지 못하고 뻗어버려서 푹 자고 새벽녘에 일어나버렸기 때문에. 당시에는 어제 너무 일찍 자서 그런가봐 하고 웃었지만, 돌이켜 생각해보니 아마도 시차적응때문이었던듯. 얼마나 일찍 일어났냐면 씻고 준비를 어느정도 다 하고 나서도 아직 호텔 조식이 시작하지 않았을 시간. 친구와 뭐할까 고민하다가 근교 여행을 갈 표 가격 알아보기 위해 비척비척 일어나 새벽같이 패딩턴 역으로 향했다.




 언젠가 여행 단상에서 썼던 것처럼 막 해가 뜨기 시작한 런던의 회색 건물들이 너무 아름다웠고, 갑자기 내가 꿈에 그리던 유럽 여행을 왔다는게 너무나도 실감났던 그 날 아침의 기억.



 다행히 패딩턴 역은 걸어서 도착할 수 있었고, 기차표를 기계로 끊을 수 있었다. 이제는 표를 사전에 컴퓨터나 스마트폰으로 예매하지 않고 기차역에 간다는 것이 낯설게 변한 완벽한 디지털 세계의 2020년에서 돌아보니 디지털과 아날로그의 중간쯤에 있었던 그 때. 지금과 같은 시대라면 고민할 여지도 없이 미리 한국에서 표를 예매하고 떠나서 그 어떤 불안함도 없이 편리했겠지만, 만약 그랬다면 아마 저 날의 아침 햇살은 보지 못했으리라.유럽 여행 내내 이랬던 것 같다. 기차 시간표가 쭉 나와있는 책을 하나씩 짚어가며 지극히 아날로그적으로 기차 스케줄을 알아보고 역에 가면 신기하게도 독일에서 이탈리아의 기차표도 예매할 수 있는 신기한 디지털의 세계.



 굳이 아침 일찍 기차표를 확인하러 간 이유는 런던 근교 여행 계획 때문이었다. 영국에서의 일정이 4박이 되면서 런던 근교를 두 군데쯤 가려고 생각했었다. 우선 너무 가고 싶었던 옥스퍼드를 1순위로 꼽고 2번째로 생각했던 곳은 윈저성. 만약 지금 다시 일정을 짜라그러면 고민을 많이 할 것 같은데 당시에는 뭔가 남들이 다 하는 걸 안하면 안 될 것 같은 마음이 들어서 잘 알지도 못했던 곳을 일정에 넣었던 것 같았다. 이러한 일정에 대한 고민과 후회는 시간이 갈 수록 지속되지만, 그럴수록 하나 더 배웠다는 마음가짐으로 후회를 덜어내고자 한다. 어차피 돌이킬 수도 없으니까.



 런던에서 돌아다니기에는 교통비 부담이 커서 이왕이면 패딩턴역에서 기차를 타고 갈 수 있다면 좋을 것 같았다. 그래서 기차표의 가격을 알아보고 어디로 갈지 정하기 위해서 직접 패딩턴역에 와서 알아보기로 했다. 표를 검색해보니 윈저성은 쉽게 갈 수 있고 가격도 적절했지만 옥스퍼드는 여정도 매우 복잡하고 선택권도 없을 뿐더러 가격도 엄청 비쌌다. 그래서 오늘은 시간표를 알아 본 윈저성에 가기로 결정하고, 다음 날 가이드북에 제시된 대로 버스를 타고 옥스퍼드로 이동하기로 결정하고 돌아왔다. 이렇게 즉흥적이라니. 엑셀로 경로를 정리하고 가이드북까지 만들어가는 지금은 상상도 못할 여행일정짜기.



 호텔 조식은 아침 7시부터 지하에 있는 작은 식당에서 먹을 수 있었다. 호텔 조식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작은 식당에 할머니 한 분이 식당에 들어오면 커피나 티 중 무엇을 줄까 물어보셨고, 아주 간단한 식빵 토스트와 삶은 계란, 씨리얼 정도가 제공되는 지금의 게스트 하우스같은 간단한 아침식사였다. 처음에는 이걸로 배가 차겠어, 너무 부실한 거 아니야? 했는데 나름 버터도 맛있고 잼이나 마멀레이드 종류도 다양해서 잘 챙겨먹고 다녔다. 매우 가난한 배낭여행자였기 때문에 항상 호텔에서 제공하는 아침은 든든하게 먹었다. 호텔이 포함된 패키지였기 때문에 항상 아침을 제공받았는데 정말 거나한 호텔식 뷔페도 있었고 야간 열차에서 제공하는 도시락 정도의 식사도 있었다. 첫 식사라 비교 대상은 없어서 몰랐지만 돌이켜 생각해보니 소박했지만 나름 따뜻하고 깔끔하게 잘 유지되던 식당이었던듯.



 밥먹고 이번에는 야무지게 짐을 잘 챙겨서 윈저성으로 출발. 침대에서 편안하게 잠을 자고 따뜻한 물로 씻고 집, 아니 호텔을 나서고 돌아 올 곳이 있다는 것은 굉장히 사람의 마음을 안정시키는 일이었다.



 윈저성까지 가는 티켓은 왕복으로 끊을 수 있었다. 티켓은 2007년 패딩턴- 윈저 왕복 기준 9.3파운드. 티켓 두 장과 영수증을 받았고, 설레는 마음으로 처음으로 영국 기차에 올랐다. 물론 이후 꽤 많은 유럽의 기차를 타보게 되었지만, 그건 좀 더 이후의 이야기. 그리고 이전에 나는 돌아오는 티켓을 잃어버리는 실수를 하게 되는데... 분명 티켓을 두 장 받았는데 올 때보니까 한 장이 없는것이었다. 갈 때 티켓 검사를 하지 않았으니 올 때도 하지않지 않을까 하는 일말의 기대와 혹시나 걸리게 되면 영수증과 티켓을 내밀며 빌어보자는 말도 안되는 무모함으로 기차를 탔고 다행이도 무사히 패딩턴역까지 도착했다. 근데 돌이켜 다시 보니 저 티켓, 윈저에서 런던에 오는 티켓 같은데... 내가 버린 게 갈 때 티켓이었나? 분명 그 때 친구랑 같이 보고 엄청 당황했었는데, 기억 조작인가. 뭔가 13년 만에 밝혀지는 진실 느낌. 과연 진실은 무엇인가. 무사히 돌아왔으니 다행인데 우리 그 때 진짜 무모했구나 싶고.


 중간에 한 번 갈아타야 해서 긴장하고 차창 밖을 열심히 내다보고 있다가 이름도 발음할 수 없는 역에 도착해서 후다닥 잘 내렸다. 다행이도 바로 내린 곳에서 다시 갈아타게끔 되어 있어서 잘 갈아탈 수 있었다. 저 역에서 윈저로 가는 기차는 거의 윈저성 전용 기차같은 느낌이었다.


 

 입장을 위해서는 티켓을 끊어야 했는데 학생표로 체크되어 있는 걸 보니, 국제학생증을 야무지게 썼던 듯. 여행사에 지불한 돈에 국제학생증이 포함되어 있었는데 당시에 이거 뭐 별거 아니라면서 굉장히 대충 만들어줘서 당황했던 기억이 있다. 물론 진짜 별거 아니라서 몇 번 사용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종종 학생 할인을 위해 필요할 때가 있었고 그 때가 바로 이 때였다. 2007년 기준 학생 입장료, 12.7 파운드. 티켓은 사이즈는 내 손바닥 만큼 컸고, 내부 시설들이 몇시까지 개장되어 있는지 친절하게 쓰여져 있었다. 드디어 빈곤의 끝을 달리는 가난한 배낭여행객-유달리 물가가 비싼 영국에서 더 아낄 수 밖에 없었다 - 왕족의 성에 입장. 두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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