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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슬 Feb 28. 2019

여행단상

여행에 도착했음을 실감하는 순간

 


10여 년전 난생처음 해외 여행을 떠난 적이있다. 무려 유럽 배낭여행. 단 한번도 경험해 본 적 없는 해외 여행을 거나하게 시작했다.


준비하면서 꽤나 촘촘하게 준비했다고 생각했는데 입국 심사부터 어버버 거렸고, 같은 정류장에 다른 노선의 전동차가 들어오는 영국의 튜브 시스템을 적응하지 못해 몇번이고 다른 전동차를 탔다가 커다란 캐리어를 들고 낑낑거리며 내렸다. 설상가상 숙소는 노부킹이라고 했고, 선불 전화카드는 영국에서는 안되다는 메시지만 나왔고, 간신히 수신자 부담으로 전화를 걸었더니 숙소 예약 대행을 맡겼던 여행사는 전화를 안 받았다.


엉망진창으로 시작된 여행에서 그래도 오늘 하루를 그냥 버릴 수 없어서 계획대로 런던의 명소를 돌아다녔다. 런던 아이를 타고 빅벤과 웨스터민스터 사원을 봤다. 정신없이 돌아다니다가 지나가던 공원 한복판에서 비가왔다. 고이고이 챙겨 온 우산은 숙소에 맡겨놓은 캐리어에 들어있었고 이것도 낭만이지 하며 웃으며 비를 맞고 물에 빠진 생쥐꼴이 되어 내셔널 갤러리 앞에 도착했을때 우습게도 비가 그쳤다. 세인즈베리관은 문을 닫았고 잔뜩 지친 우리는 일찍 일정을 마쳤다.



천만다행으로 숙소 문제는 해결이 되었고, 한국에서 가져 온 즉석밥으로 저녁을 떼우자 마음먹었지만 씻고 나서 바로 잠이 들어버렸다. 그리고 새벽 4시 아직 해도 뜨지 않았을때 잠에서 깨어났다. 지금 생각하면 시차적응의 문제였던것 같은데 그 때는 잠도 더 안오고 말똥말똥한 내 눈과 저녁도 굶고 잠든 탓에 주린 내 배가 원망스러웠다.



시간이 좀 지나 커튼 사이로 햇빛이 어슴푸레 들어올 때 쯤 자리에서 일어나 커튼을 열고 주변 풍경을 보았다. 주택가에 위치한 작은 호텔 방 바깥의 풍경은 아름답지는 않지만 이국적이었다. 야자수 나무와 끝도 없는 해변은 아니었지만 짙은 회색 빛 건물들은 내게 충분히 이국적이었다.


어느새 잠에서 깬 친구가 내 옆에 와 나란히 창밖을 바라보았다. 한참만에 우리는 야, 우리가 오긴 왔구나 하면서 웃었다. 아직 호텔의 조식도 한참 남은 시간, 스마트폰도 없던 그 때 우리는 근처 기차역으로 가서 기차 시간표나 알아보자며 호텔을 빠져나와 슬렁슬렁 기차역으로 걸어갔다.





막 해가 떠오른 도시는 별 것도 아닌데 아름다웠고, 나는 지금 여행을 왔구나를 실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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