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사와의 싸움 따위 잊고 런던과 사랑에 빠진 순간
*) 정확히 2007년의 여행기로 아무런 정보도 없음을 미리 말씀드립니다.
당시 인터넷에서 얼마안되는 여행기를 찾아봤을 때 종종 나오는 일이 더블부킹과 노부킹 사태였다. 워낙 배낭여행객이 많은 곳이기도 하고 여름철이 성수기이기도 해서 수용 인원을 초과할만큼 예약을 더 받아놓는 경우나 누락되는 경우가 종종 있고, 그 경우에는 내가 예약을 했다는 것이 확실히 증명되기만 하면 다른 호텔로 연계해 준다고, 호텔에서 알아서 해준다고 걱정하지 말라고. 누누이 읽고 가면 뭘하나. 그게 나의 일이 되는 순간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고 귓가에는 노부킹, 노부킹, 노부킹이라는 단어만 말풍선처럼 떠다녔다.
결론만 말하자면 이전에 읽었던 경험담대로 처리해주셨고, 별다른 문제없이 잘해결되었다. 직원분도 친절하게 계속 무언가를 설명해 주시려고 노력했고 - 나는 여행 시작 이후 한국에 있을 때보다 엄청나게 영어를 못하고 있었기 때문에 1도 제대로 못알아들음. 호랑이 굴에 들어가도 정신만 차리면 된다는데 나는 우연히 들어간 굴이 호랑이 굴이라는 걸 깨닫는 순간 정신을 잃었을듯.- 방이 비어있으니 1박은 여기서 하고 남은 3박은 다른 호텔을 찾아주겠다고 하셨다. 혹시나 해서 여러 번 추가적으로 요금을 지불하지 않아도 되냐 물어봤을 때, 명확하게 없다! 라고 말해주셨다. 몇번 씩이나 확답을 받고서야 그제야 안심이 되었다.
돌이켜 생각해보니 불안증 대마왕인 나에게 처음 외국 여행을 왔다는 불안감과 숙소가 예약되지 않았다는 당황스러움, 그리고 없는 돈을 쪼개고 쪼개어 바꿔 온 돈을 숙박비로 더 쓸 수 없다는 마음이 합쳐져서 더 초조하고 힘들었던 것 같다. 당시에는 유로와 파운드의 차이가 꽤 있어서 여행을 가기전에 파운드는 대략 1800원, 유로는 1200원으로 계산했었고 사전에 한국에서 파운드, 유로, 스위스 프랑을 따로 환전해갔었다. 그리고 런던은 물가가 비싸다는 소리를 누누이 들어서 잔뜩 겁을 먹고 구질구질(...)할 정도로 아낀 결과 영국에서 파운드가 꽤 많이 남는 사태가... 이럴거면 하나라도 더 경험할걸. 돌이켜보면 아쉬운 것들 투성이. 그래도 이 때 잘 아껴서 이 돈으로 프라하에서 잘 환전해서 사용했다.
어쨌든 1박은 확보되었고 이 후 상황은 호텔에서 죽 치고 기다려봤자 아무 소용이 없었고, 또 유럽여행의 소중한 하루를 이렇게 날릴 수 없으니 우선 호텔에 짐을 맡겨놓고 시내로 나가기로 했다. 얼마나 정신이 없었는지 캐리어에서 짐을 꺼내러 여러 번 들락날락했음에도 결국 두고 나옴.
그리고 잠깐 숨도 돌릴 겸 공중전화에서 집에 전화를 하려고 했는데, 이건 또 무슨 일. 여행사에서 준 공중전화카드를 집어 넣었더니 영국에서는 안된다는 거 아닌가. 진짜 엎친 데 덮친 격. 이런 안내를 한국에서는 한 번도 받은 적이 없었다. 여행사와 함께 준비하는 장점이 외국에서 겪을 수 있는 어려움들이나 당황스러움을 최소화하기 위해서였는데 이 곳에 와서 내가 당황스러웠던 모든 상황이 여행사를 통해 일어났다. - 입국심사 제외- 사전에 준비를 할 때부터 담당직원분이 세심하게 챙겨주는 스타일이 아니라서 좀 불만이 있던 상황에서 첫날 모든 게 다 터져버렸다. 물론 호텔 예약이 노부킹 된 것 같은 경우에는 100프로 여행사의 책임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전화카드가 안됐고, 확인차 여행사에 수신자 부담으로 전화를 걸었을 때 여행사 쪽에서 전화 수신을 거부해서 정말 봇물 터지듯 불만이 폭발했다. 사전에 한국에서도 계약시 이미 명시된 사은품이나 제공 물품도 내가 말하지 않으면 따로 주지 않았고, 우선 우리에게는 비행기 예약도 한 번 틀린 적이 있고, 출발 며칠전에 기차 티켓을 주는 등 약간 나의 불안증을 더욱 강조시키시는 분이였기 때문에 여행 와서 빵 터지고 만 것. 그 당시에는 일기장에 담당자 이름을 써 놨을 정도로 많이 화가 났었지만 결국에는 전화 연결이 되지 않았고, 한국에 들어와서는 거기까지 연락을 할 정신이 없어서 그냥 잊혀졌던 이름. 만약 그 때 전화 연결이 됐다면 너무 과도하게 화를 냈을 것 같아서 연락이 안된게 다행이다는 생각이 들지만 이후에 스위스, 로마에서도 호텔에 한 번씩 사건이 있었던 것으로 보아 혹시나 무슨 일이 생길 때를 대비해서 여행객들을 위한 직통전화가 하나쯤 있어야 하지 않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돈 주고 떠났다고 다가 아니고. 그래서일까? 이후에는 한 번도 여행사를 끼고 여행을 가본 적이 없음. 물론 요즘은 워낙 인터넷 예약이 잘 되있기도 하지만 티켓 따로, 호텔 따로. 점점 잘 알아가는 나를 보면서 다시 한 번 유럽여행을 준비해서 가고 싶다는 생각이 진심으로 드는 요즘.
숙소를 일단락 짓고 나니 배가 너무 고팠다. 마지막 식사는 새벽 3~4시경 거의 다 남긴 기내식이 마지막이었던 우리는 급하게 역 근처에 있는 맥도날드로 들어갔다. 이 때부터 인가요... 유럽 여행 내내 제일 많이 갔던 음식점이 바로 맥도날드. 나라별로 한 번 씩은 다 가본듯. 그리고 런던에서 생애 첫 만난 맥모닝. 혹시나 해서 찾아봤는데 맥도날드가 맥모닝 서비스를 시작한 것이 2006년이고, 내가 유럽에 간 것은 2007년. 워낙 시골, 맥세권이 아닌 곳에 살아서 아침 일찍 일어나서 맥모닝을 먹으러 맥도날드까지 가는 건 너무 먼 길이라서 한 번도 먹어보지 못했지만 항상 먹고 싶었더 맥모닝. 런던에서 처음으로 먹어봤다.
뭐 하나를 할때마다 에피소드 폭ㅋ발ㅋ이라서 또 말하기도 부끄럽지만 여기서도 당황스러움. 어느정도 한국에서 큰 경비를 지불하고 갔기 때문에 친구와 생활비는 각각 따로 썼는데 나름 좋은 방법이었던 듯. 각자 다른 메뉴를 먹을 때도 별로 부담스럽지 않았다. 지금 생각하면 그냥 친구랑 따로 주문을 하면 되는데 그 때는 굳이 왜 그랬는지 같이 주문하고 따로 계산을 했다. 얼마나 귀찮았을까. 그만 후회해야지 하는데 하나하나 다 후회막심. 어쨌든 친구랑 둘이 맥모닝 세트를 주문하고, 각자 계산하겠다고 해야되는데 도대체!! 왜!!! 그렇게!! 입이!! 떨어지지가 않는지.... 내가 어버버버 하고 있으니 친구가 큰 소리로 외쳤다. 더치페이!!!!!!!
나의 어버버함에 같이 당황해 있던 직원분이 밝게 웃으시며 오! Several Pay! 라고 말씀해주셨다. 사실 분명 이렇게 듣고 유럽 여행 내내 너무 잘 써 먹었는데, 집에 와서 검색해보니 콩글리쉬(?)인지 딱히 나오는 표현이 아니라 굳이 따지자면 Separate Pay. 가 그마나 적절한 표현인듯. (영알못) 하지만 아무도 우리한테 그거 아니라고 고쳐주지 않았다고.....
어쨌든 1층과 지하-정확히 기억은 안나지만 내려가는 계단이 있었음. 바르셀로나의 버거킹도 마찬가지- 로 구성된 맥도날드에서 감격의 첫 맥모닝을 먹고 친구와 일정을 정리했다. 당시에는 거의 여행책자의 추천 일정을 따라 다녔는데 당시 우리의 예상 첫 코스는 런던아이. 모든 사람들이 꼭 타봐야한다고 강추하는 코스지만 사실 탈지 말지 조금 고민했는데 그 이유는 입장료때문. 아 진짜 쓸수록 구질구질의 끝. 하지만 다시 생각해도 다녀오길 정말 잘했다고 생각한다.
당시 런던아이의 탑승료를 14.5 파운드. 대략 25000원이 넘는 가격으로 가난한 배낭여행객에게는 다소 부담이 되는 금액이었다. 그래서 여러 번 고민한 끝에 어차피 많은 관광지가 모여있는 곳이니 우선 가고, 가고 나서 결정하자 마음 먹었다.
우리가 런던에서 계속 사용한 교통티켓은 원데이 트래블카드. 출근 시간이 지난 오프 피크 시간에 1,2존에 해당하는 지하철과 버스를 무제한으로 탈 수 있는 티켓으로 매일 한 장 씩 사서 이용했다. 아쉽게도 버스는 한 번도 안 타봄. 원래 한국에서는 지하철보다 버스를 선호하는 편인데 여러 여행지를 다녀보면서 느끼는건 낯선 여행지에서는 진짜 지하철이 짱이다. 정확하고 영어로 설명 써 있고, 혹시나 잘 못타도 반대쪽으로 돌아가면 된다는 점에서 완벽.
런던아이는 버커루 라인에 있는 워터루(Waterroo)역에 있었다. 뭔가 노래를 불러야할 것 같지만, 부르지는 못했고 이상하게도 엄청나게 길고 가파른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나감과 동시에 런던아이가 보였고, 우리는 그 순간 런던아이를 탈 수 밖에 없겠구나, 라는 생각을 동시에 했다. 혹자는 런던의 풍경을 망치는 구조물이라고 혹평을 했다지만 내 눈에는 너무 아름다웠고 나의 런던 여행은 그제서야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