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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장님들은 왜 회식을 좋아할까

외로운 아빠들의 공식적인 도피처

by 자유사색가

"프로젝트도 마무리 되었으니 이번주에 다같이 회식합시다!"

팀장이 퇴근 전에 팀원들에게 한마디 툭 던진다.


팀원들의 얼굴을 재빠르게 스캔해본다. 아니나 다를까 다들 표정이 어둡다.

어떤 핑계를 만들지 빠르게 뇌를 가동시키는 모양새다.

하지만 부장님들의 표정은 그다지 나빠보이지 않는다. 내 돈을 들이지 않고 좋아하는 술을 공짜로 마실 수 있는 기회가 생겨서일까.


"부장님은 회식하면 어떤 점이 좋으신가요?"

회식을 좋아하신다는 부장님께 슬쩍 물어봤다. 그런데 의외의 답변이다.

"나도 별로 회식 안 좋아. 몸 버리고, 다음날 힘들고.."

"그래도 사회생활이고, 후배들도 챙겨주면서 같이 일해야 하니까 어쩔 수 없잖아"




정말일까? 정말 그 이유뿐일까.

나이가 좀 들어보니 회식을 좋아하는 부장님들의 마음을 조금은 알 것도 같다.

젊을 때에는 왕성한 체력으로 친구들과 수시로 모여 술을 마시고 밤새워 놀지만, 결혼을 하고 아이를 키우다보면 자연스럽게 만나서 노는 사람들이 점점 줄어들게 된다.


가끔 예전의 기억으로 신나게 음주가무를 즐기고 싶지만, 상황은 예전같지 않다.

퇴근하고 난 후에 맞벌이하는 배우자와 함께 아이를 돌보아야 한다. 만약 아이가 없다고 하더라도 현란한 밤을 함께 지새우며 놀던 전우들이 육아로 바쁘기에 함께 놀 수 있는 사람들을 찾기는 상당히 어렵다.


그러다 나이가 조금 더 들고 아이도 충분히 커서 여유 시간이 생긴다.

하지만 내 주변에는 함께 놀 사람을 찾기는 쉽지 않다. 게다가 회사를 오래다니다 보니 자연스레 내 주변의 지인석(?)은 대부분 회사 동료들로 채워져있다. 회사 동료가 가장 편한 시기가 왔나 보다.


나이가 들고나니 에너지 게이지가 낮은 동년배끼리 모이면 뻔한 이야기에 별 재미도 없고 가끔은 함께 있을수록 기력이 더 쇠해지는 느낌이다. 이럴 바에야 활기가 넘치는 후배들과 함께하고 싶은 욕심도 가끔 생기기시작한다. 나이든 주제에 눈치도 없이 말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회식은 더없이 좋은 기회다.

공식적으로 술자리를 가질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에너지넘치는 후배들과도 함께 술을 마실 수 있는 명분이 생긴 것이다. 더군다나 술집을 알아보고 예약하는 번거로운 일도 후배들이 대신 해 준다.


가끔 2차는 내가 결제해야 하는 부담이 생기기도 한다.

그래도 그 시간에 내 옆자리에서 시덥잖은 이야기를 들어주고 맞장구 쳐 주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 정도 술값이 대수겠냐 싶다. 간만에 기분좋게 외롭지 않은, 아니 덜 외로운 저녁시간이다. 나의 자존감이 1% 정도는 올라간 느낌마저 든다.


"너도 나이들어봐. 그 때 되면 술 마시고 싶어도 같이 마실사람 없을거야."

갑자기 사원때 같이 일하던 부장님이 술자리에서 툭 뱉어낸 이야기가 뇌리를 스친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술이 아니더라도 나를 채워줄 수 있는, 조금 더 의미있게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그 무엇을 찾고자 한다.

이를테면, 이렇게 글을 쓰면서 생각을 정리하고 내면을 채워 나가는 삶을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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