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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인 Aug 12. 2024

[리추얼 : 숲 속에 있다] 내 안의 감정과 마주하기






올여름 개봉한 ‘인사이드 아웃 2’를 같이 본 후 지인 및 주변 친구들에게 이런 질문을 했더랬다. 본인의 마음속에서 통제권을 지닌 감정이 무엇이냐고. 역시나 다양한 답변들이 돌아왔다. 조금 더 세분화해서 들어가 중심에 있는 감정과, 그다음으로 존재감을 뽐내는 감정, 그리고 어쩌다 주기적으로 찾아오는 감정 등 여러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나왔다. 마음 같아선 주변 사람들 모두에게 같은 질문을 해보고 싶을 정도이다.


그러나 사춘기를 한참 지난 어른들은 알고 있다. 영화에 나온 감정이 전부가 아님을. 그리고 단순히 주로 느끼는 감정과, 일단 마음속에 찾아왔다 하면 유독 강력하게 느껴지는 감정은 또 다르다. 내게 있어 이처럼 유난히 강하게 존재감을 자랑하는 감정으로는 죄책감을 꼽고 싶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기쁨은 짧고 굵게 끝나고, 누가 봐도 괴로울 상황이 아니라면 슬픔은 잘 느끼지 않는다. 어렸을 때야 불안감에 잠도 못 이루었지만 이제는 걱정한다고 달라지는 게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됐으며, 그 외 감정들은 인지도 못할 만큼 일시적이다.


그렇다면 죄책감은 어떨까. 다른 감정들은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거나, 문제를 해결함으로써 해소할 수 있지만 죄책감은 쉽게 떨쳐내기 힘들다. 내가 피해 당사자가 아니기에 감히 이만하길 다행이란 생각도 할 수 없다. 게다가 내 잘못의 크기에 따라 죄책감의 크기 역시 달라진다. 다행히 지금까진 죄책감에 관한 극단적인 경험은 없었지만 감정기복이 없는 편임에도 한 번 마음속에 찾아온 죄책감은 아무리 사소해도 털어내기 쉽지 않다. 남에게 피해를 주면 안 된다는 강박 때문인 듯하다. 내게 있어 다른 부정적인 감정들이 신발 속의 작은 돌멩이나 피부에 달라붙은 머리카락 정도라면, 죄책감은 내 코와 입을 가린 큼직한 손과 같다.



• 숲 속에서 그들이 마주한 것은


술잔을 기울이며 함께 할 여행지를 고심하던 다섯 명의 친구, 루크, 롭, 돔, 필, 그리고 허치. 밤이 깊어 슬슬 집으로 돌아가는 분위기였으나 루크는 왠지 그대로 집에 가기 아쉬워 술을 사 갈 요량으로 근처 편의점으로 향하고, 다른 친구들은 성가셔하는 와중에 상냥한 롭만이 와 동행해 준다. 그러나 하필 그 현장에서 둘은 강도를 마주하고, 불행히도 롭은 목숨을 잃는다. 그 이후로 루크는 친구를 살리지 못했다는 죄책감으로 인해 악몽 속에서 매일 그날의 사건을 반복해서 겪는다.


그로부터 6개월 뒤, 남은 친구들은 롭을 기리기 위해 그가 바랐던 대로 스웨덴 산으로의 하이킹에 나선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돔이 발을 접질리고, 그들은 어쩔 수 없이 원래 루트 대신 숲 속을 가로질러 가기로 한다. 이내 밤은 깊어지고, 설상가상으로 비까지 오던 중, 네 사람은 다행히 비어 있는 오두막집을 발견한다. 그들은 오두막을 살피다가 저주에나 쓰일 것 같은 모형을 발견해 불안해지지만, 궂은 날씨와 늦은 시각으로 인해 하는 수 없이 그곳에서 밤을 보내기로 한다.


스웨덴 산으로의 하이킹에 나선 네 친구들 (왼쪽 사진 기준 : 허치, 루크, 필, 돔 순서)


그리고 다음 날, 언제나와 같은 악몽에 시달리다 잠에서 깬 루크. 웬일인지 나머지 친구들 역시 각각 악몽을 꾸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께름칙한 기분에도 다시 발길을 재촉하는 일행. 하지만 자꾸만 길을 헤맨 끝에 어느새 밤이 찾아오고, 결국 그들은 또다시 숲 속에서 밤을 보내게 된다. 텐트 안에서 잠들어 어김없이 악몽을 꾸던 루크는 바깥에서 들리는 소란스러운 소리에 깨어나고, 이내 허치가 사라졌음을 눈치챈다. 결국 처참하게 살해된 채 발견된 허치. 그리고 오래지 않아 루크 일행은 깨닫는다. 허치를 죽인 존재가 무엇이든 그들 역시 노리고 있다는 사실을.


깊은 숲속 오두막집에서 발견한 기이한 모형



• 그럼에도 살아가야 하기에


개인적으로 영화 ‘리추얼’은 공포 영화이지만 치유에 관한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그런 면에서는 마찬가지로 스웨덴을 배경으로 한 오컬트 영화인 ‘미드 소마’가 떠오른다. ‘미드 소마’의 주인공 대니와 ‘리추얼’의 주인공 루크 모두 일련의 과정을 통해 감정의 치유에 이르렀다. 다만 대니와 루크가 느꼈던 주된 감정이 각각 슬픔과 죄책감이라는 차이가 있는 것처럼, 그들의 대응 방식 역시 다르다. 대니가 마을 사람들에 동화되는 방식으로 슬픔을 달랬다면, 루크는 자신을 괴롭게 했던 죄책감을 똑바로 마주함으로써 이를 극복해 냈다.


루크가 친구 롭의 죽음에 얼마나 책임이 있느냐 하는 질문엔 사람마다 의견이 천차만별일 테지만, 루크가 친구의 죽음으로 인해 죄책감을 느꼈다는 데는 모두 동의할 것이다. 롭이 살해당한 이후 매일 같이 루크가 악몽에 시달리는 모습을 통해 그가 얼마나 괴로워하는지 알 수 있다. 하지만 자신의 감정을 들여다보는 대신 회피만 해서일까. 롭에 대한 그리움과는 별개로 계속해서 미래를 꿈꾸고 삶을 살아가는 다른 친구들과 달리 루크는 시간이 멈춘 듯 그날의 악몽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그러다 루크는 롭을 기리기 위해 떠난 여행에서 신비롭고 거대하며 무자비한 존재와 맞닥뜨린다. 영화는 중반까지 얼핏 여느 크리처물과 다를 바 없이 보이지만, 어느 순간 깨닫게 된다. 루크가 마주한 존재는 다름 아닌 그가 느끼는 죄책감을 상징한다는 사실을. 루크는 마침내 자신의 죄책감을 정면으로 마주하고, 그동안 억눌린 만큼 세차게 휘몰아쳐 오는 그 감정을 온전히 상대한 후에야 스스로를 해방시킨다. 물론 루크가 느끼던 죄책감은 사라지지 않고 그 자리 그대로 남아 있다. 다만 그는 더는 그 감정 안에서 허우적대지 않는다. 그저 긴 절망의 터널 끝, 밝은 빛을 향해 나아갈 길을 찾은 것뿐이다.


루크가 죄책감에서 벗어날 자격이 있는지 여부 또한 아마 의견이 갈릴 것이다. 하지만 롭을 살해한 것은 어쨌든 강도들이기에, 개인적으로는 루크가 남은 생을 모두 발목 잡혀야 할 정도로 죄를 지었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그런 의미에서 루크가 오랜 시간 품고 있던 죄책감 역시 다른 부정적인 감정들과 마찬가지로 결국 극복해야 대상이다. 그리고 스스로를 좀 먹는 강력한 감정을 이겨내기 위해 해야 할 일  이를 외면하거나 다른 곳으로 주의를 돌리는 대신 똑바로 응시하는 것이다. 자신의 마음속에 뿌리를 내려 괴롭게 하는 그 감정이 무엇인지, 그 원인이 무엇인지 알아야만 치유를 위한 다음 단계를 밟을 수 있다.



아마 죄책감만의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모든 부정적인 감정들은 우선 그 감정을 인정해야만 이후 대응이 가능하다. 건강한 태도가 아님을 알면서도 나이가 한 살씩 늘어감에 따라 나의 감정을 인정하는 것은 물론이고, 감정을 크게 느끼는 것 자체도 창피해지곤 한다. 하지만 못 본 체하고 덮어 두었던 감정은 결국 곪아 터지게 마련이고, 나중에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 나를 다시 괴롭힐지 모른다. 그러니 결국 어른이 되었다고 젠 체 하는 대신 잘 느끼고, 인지하고, 현명이 해소해야겠다. 안 좋은 감정으로 소중한 시간을 허비하고, 주변의 좋은 것들을 누리지 못한다면 나의 마음속에 남은 감정이 억울함 뿐일지도 모르니 말이다.





사진 출처 : https://m.imdb.com/title/tt5638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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