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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감하는 스노우 Jan 26. 2023

당연한 하루는 없다

희우 작가의 이야기, 그리고 나의 이야기

때는 2017년 22살 때의 일이었다. 가까운 대학병원이 아주대여서 진료를 보러갔다. 신장내과 교수님께서 내게 다낭성 신장 질환이라고 확정지어주셨다. 병원에서 나와 휴대폰으로 '다낭성 신장'이라는 병명을 검색해보았다. 유전 질환이며, 치료가 불가능한 질환이었고, 시간이 흐를수록 신장에 물혹이 생기면서 점점 신장기능이 퇴화돼 결국은 신장 투석을 받아야 하는 병이라고 적혀있었다. 환자가 할 수 있는 것은 식이요법과 적절한 운동 뿐 어떤 것도 할 수 없었다. 아직까지 별다른 증상이 없어서 뭐 이런 병이 다 있나 싶었지만 군대 면제라는 특혜까지 받고 나니 조금씩 실감났다. 내가 심각한 병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신장 기능이 조금씩 나빠지자 고혈압이 생겼고, 단백뇨가 조금씩 나오기 시작했다. 덕분에 대학교 교수님과 자주 만나게 돼 친척보다 더 가까운 사이가 된 것 같았다. 산 넘어 산이라고 했던가? 원래 다니고 있었던 서울대학교 치과 병원에서 여러 검사를 진행했는데 루프스 질환이 의심된다며 류마티스 내과로 진료 의견서를 써주었다. 안 그래도 대학병원을 2곳을 다니고 있었는데 3곳으로 늘어났다. 다행히 검사 수치들은 양호한 상태이지만 언제든지 나빠질 수 있다며 주의를 당부했다.



대학 병원을 다니면서 가장 많이 느꼈던 감정은 억울함이었다. "내가 왜 아파야 하지? 이 나이에 대학병원에 다닐 이유가 없는데? 내 친구들은 밤새도록 술 먹고, 담배 피고, 클럽가서 재밌게 놀아도 건강한데. 나는 술도 안 마시고, 담배도 안 피우고, 운동도 꾸준히 했는데,," 뭔가가 잘못 되었다고 생각했다. 대학병원에서 피검사, 소변검사를 하러 기다리고 있는 나를 바라보는 어르신들의 표정에서 미묘한 감정을 느낄 수 있었다. 이제 22살인데 대학병원이라니. 게다가 3곳을 다니고 있는 게 말이나 되는가. 진료가 끝나고 병원 밖으로 나올 때마다 한탄 섞인 한숨을 내쉬는 행위가 한동안 루틴이 되었던 것 같다.



그러던 어느 날, 유튜브에서 희우 작가의 책을 접하게 됐다. 루프스라는 자가면역질환을 가졌으며, 신장 질환을 가졌고, 나이가 어리다는 점에서 나와 동일한 면이 너무 많았다. 넋을 놓고 영상을 보고 있는데 마지막 쯤에 책을 출간했다는 내용을 봤다. 꼭 읽어보고 싶다는 강렬한 욕구가 나와서 도서관에 찾아가서 읽어보았다.

<당연한 하루는 없다>는 희우 작가의 투병생활을 기록한 책이다. 루푸스 신염이라는 희귀병을 가진 저자가 어떤 삶을 살아왔고, 앞으로 어떤 삶을 살아갈 것인지에 대해서 담아놓았다. 루푸스란 자가면역질환으로 인간의 면역체계가 스스로를 공격하는 질환이다. 결합조직과 피부, 관절, 혈액, 신장 등 다양한 기관을 침범하는 전신성 질환인데 저자의 경우 신장에 염증을 일으켜 몸에 큰 지장을 주는 케이스이다.



저자는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 아프기 시작했다고 한다. 몸을 통제할 수 없을 정도로 아파서 병원에 갔더니 의사 선생님이 공부를 그만두라고 할 정도로 몸상태가 심각했다고 나와있다. 하지만 저자는 지금까지 공부했던 것이 물거품이 되는 것을 막기 위해 스테로이드 약을 비롯해 다량의 약을 복용하며 몸을 혹사시키면서 공부했다. 결국 서울대에 입학하게 됐다. 하지만 저자의 몸은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악화되었고, 신장 투석에 이르렀다.



중간 중간 희우 작가의 생각과 감정을 곱씹으면 눈물이 나왔다. 아픈 것도 서러운데 현실은 냉혹하기 그지없기 때문이다. 그저 노력만 했을 뿐인데 몸에 장애가 생겼고, 누구나 살고 있는 그 평범한 삶을 살아갈 수 없다고 느낄 때의 서러움은 말로 형용할 수 없었다. 몸이 붓거나 이상 증세가 발병하여 대학교 수업에 결석하는 것은 일상적인 일이 되어버렸고, 중요한 시험을 앞두고 몸이 아파서 제대로 공부조차 할 수 없게 됐으며, 부족한 학기를 채우느라 학교를 다른 학생들보다 더 다닐 수밖에 없었다. 남들이 재밌게 놀 때 아픈 몸 때문에 놀 겨를 조차 없는 현실, 더 많은 고통과 시련에 노출되어야 하는 상황, 앞으로도 쉽지 않은 것이라는 여정을 아는 자신. 얼마나 고단한 삶을 살았을까 짐작조차 가지 않았다. 



샤머니즘 다음은 종교였다. 2019년 여름, 두세 달 후에는 투석을 시작해야 한다는 말을 들었다. 몇 달 전부터 이미 들었던 말이지만 확정적인 것은 아니었다. 

신장은 낫지 않는 장기인 걸 알면서도 낫기만을, 투석하지 않기만을 바랐다. 나는 엄마가 다니는 심인당에 다니기 시작했고 매일 불공을 드렸다. 하루에 네 번 심인당에 들러 한 시간씩 스파르타 정진이었다.

나는 절실했다. 뼛 속까지 합리주의자인 나는 대학교에서 배워온 과학적 사고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의 생사, 건강이 달린 문제에서는 이성적 사고 회로가 작동하지 않았다. 간절한 마음으로 불공을 했다.
당연한 하루는 없다 p132~13


저자의 절절함을 느꼈던 대목이 있었다. 사람이 진심으로 간절하면 종교를 막론하고 어떤 신에게든 기도한다. 신에게 제발 부탁을 들어달라고 온갖 정성을 들인다. 저자가 언급한 것처럼 이런 행위가 매우 비과학적이고 말도 안되는 일이다. 하지만 정말 간절한 사람에게 과학이건 비과학이건 중요하지 않다. 누구에게든 내 기도가 닿고, 그게 조금이라도 효과가 있다면 무엇이든 한다. 하지만 모든 바람은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도 우리는 너무 잘 알고 있다. 저자는 결국 투석을 받게 됐다.



인상 깊었던 내용이 하나 더 있었는데 그것은 희우 작가의 가족들이었다. 어린 나이에 저자가 희귀병에 걸리면서 가족들은 저자를 간호하고 배려하려고 애쓰는 모습이 나온다. 엄마는 끊임없이 저자를 간호하고, 아빠도 주변에서 힘이될 수 있는 말들을 아끼지 않는다. 특히 저자의 동생 웅이의 행동이 기억이 남는다. 그는 자신의 휴대폰이 고장났지만 자신의 누나가 아프고, 경제적으로 어려움이 있다고 판단하여 아무말도 하지 않고 그냥 생활한다. 그리고 나중에 저자의 신장 기능을 다 잃었을 때는 자신의 신장을 이식해준다. 이렇게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는 가족이 있었기 때문에 희우 작가가 고난과 역경을 버텨낼 수 있었을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당연한 하루는 없다를 읽고 지금의 나

5년쯤 지난 지금은 내가 몸이 아프다는 것에 대해서 무덤덤하다. 대학병원에 가도, 새로운 약을 먹어 몸이 힘들어도, 병원비가 많이 나와 경제적으로 타격이 있음에도 '그럴 수 있지' 마인드가 생겼다. 이제는 내가 누리고 있는 건강에 대해서 더 감사하게 생각하는 것 같다. 더 나빠지지 않게 내가 할 수 있는 것에 초점을 맞춘다. 



희우 작가도 현재 건강함에 대해서 감사하다는 내용을 책에 적었다. 아무리 부정적인 상황이더라도 긍정적인 요소를 찾고 그것에 대해서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나비효과가 되어 내 삶의 행복에 큰 영향력을 행사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저자는 발이 빠지지 않는 뻘속에서 자신만의 노하우를 찾아 앞으로 나아가는 사람이 되어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누구나 자신만의 고민,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게 건강이든, 돈이든, 대인관계든, 외모든 한 명도 빠짐 없이 다 가지고 있다. 아무리 부자여도 고민이 있다. 중요한 것은 이 문제를 어떻게 바라보고, 자신이 어떤 행동을 취하느냐이다. 저자는 지난한 삶속에서 갈대처럼 이리 저리 흔들렸다. 하지만 결국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찾으려 노력했고, 이식을 받아 건강을 회복했다. 내가 통제할 수 없는 부분을 제외시키고, 내가 할 수 있는 것에만 초점을 두어야 한다. 그리고 현실을 받아들이는 연습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야 마음이 편안해진다.



쉽지 않은 삶을 살아가는 이들에게 <당연한 하루는 없다>는 큰 울림으로 다가올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이 책에서 적적함을 느끼면서도 심심한 위로를 받았다. 희우 작가의 모습들은 넘사벽이다.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은 위기를 극복해나가는 모습은 내게 상당한 귀감이 됐다. 비슷한 질환을 가진 사람으로서, 자신의 문제에 대해서 극복해나가야 하는 사람으로서, 앞으로 두고두고 이 책을 읽으면서 상기시켜야겠다. 희우 작가처럼 굳세고 단단해져야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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