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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몽수 Mar 14. 2021

너 또 슬럼프야? 나 또 슬럼프야!

나는 나를 육아할 의무가 있다

신생아처럼 잠만 자던 때가 있었다.

눈 뜨면 밤인지 낮인지 분간할 수 없었고, 또 그럴 의지도 없었다. 그저 누운 채 멍하니 또 잠들기만을 기다릴 뿐. 하지만 그조차도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하루가 너무 길었고 눈 뜨는 게 괴로웠다. 완전히 무방비상태였다. 무엇이라도 해야 하는데 아무런 의욕이 없었다. 그때 난 극심한 슬럼프에 빠져있었다.


울고 싶었다. 정말 신생아처럼.

그런데 마음대로 울지도 못했다. 그때 난 내 안에 어린아이가 살고 있다는 걸 알았다. 그 아이는 평소엔 꼭꼭 숨어있다가 불현듯 나타났다. 빽빽 우는 아이의 오열 때문에 더는 잠도 잘 수 없었다.      


도대체 뭐가 문제니?

묻고 또 물었지만 알 수 없었다. 답이 없으니 답답했다. 그리고 혼자서 모든 답을 알아낼 필요는 없다. 다른 이의 조언을 들어보기로 했다. 책은 물론 인터넷 검색만 해봐도 줄줄이 나타나는 슬럼프 극복 솔루션.     


첫걸음이 중요하다. 무엇이든 시도해라. 거창하거나 잘할 필요 없다. 가깝고 구체적인 목표를 설정해라. 작은 성취를 느껴라. 나에게 보상하라. 독서로 자신과 대화하라. 생활 속도를 늦춰라. 몸을 움직여라. 휴대폰을 꺼라. 잠시 떠나 있어라. 자신에게 휴식을 선물하라. 시간이 지나면 결국 다 지나갈 것이다.     


하나같이 다 좋은 말이었다. 하지만 내 몸은 여전히 움직이지 않았다. 그래서 더 자괴감에 시달렸다. 아무리 좋은 약도 체질에 맞게 써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독이 되는 법이다.     


여전히 난 뭐가 문제인지 몰랐고 뭘 하고 싶은지 알 수 없었다. 그건 곧 마음이 복잡하다는 것이었다. 단순해져야 했다. 우선 하나에 집중했다. 내 안의 어린아이를 바로 보는 것부터 시작했다. 그리고 생각했다. 나는 이 아이를 지켜야 한다고.     


먼저 잠을 푹 재워야 한다.

과수면이 아니라 숙면을 취해야 한다. 그래야 더 이상 떼쓰며 울지 않을 것이다. 숙면을 취하려면 몸을 움직여야 한다. 나가서 천천히 걷는다. 목표도 목적도 필요 없다. 그냥 걷는 것이다. 마치 걸음마를 떼듯 한 발 한 발. 걷고 있는 그 자체를 대견해하면서.     


두 번째, 잘 씻겨준다.

몸의 청결뿐 아니라 주변도 깨끗하게 닦는다. 아이를 더럽게 방치하는 부모는 세상에 없다.     


세 번째, 제대로 먹인다.

부모는 아기에게 가장 좋은 걸 먹인다. 영양가 있는 음식을 골고루 먹게 한다. 안 먹는다고 하면 달래서라도 한 입 뜨게 만든다. 하지만 억지로 먹이지는 않는다. 탈이 나기 때문이다.     


네 번째, 따뜻하게 안아준다. 아이가 느낄 수 있도록.

부모는 아이를 사랑한다고 하지만 아이가 느끼지 못한다면 다 부질없다. 전해져야 그것이 진정한 사랑이다. 아이가 원하는 만큼 안고 눈 맞춰 웃어줘야 한다.


다섯 번째, 함께 놀아준다.

아이가 좋아하는 걸 찾아 함께 집중한다. 그러려면 평소 관심이 있어야 한다. 관심은 사랑이고 사랑은 곧 소통이며 소통이 없으면 고통이 오는 법이다.


여섯 번째, 굳건한 신뢰를 준다.

무슨 일이 있어도 나는 너를 지킬 것이라는 확신과 믿음. 그 진심이 닿아야 비로소 아이는 안심할 수 있다.


그렇다. 나를 온전히 지키는 것. 이것이 바로 슬럼프를 극복하기 위해 내가 한 일이었다. 보통의 육아와 다를 바가 없었다.


두 돌이 돼가는 조카에게 내가 자주 해주는 말이 있다.

“아 예뻐.” “아 착해.” “괜찮아. 괜찮아...”

이런 말을 내게는 왜 해주지 못하는가. 아이에게 해주는 다정한 말을 나에게도 해줘야 한다는 걸 깨달았다. 스스로에게 건네는 다정한 말은 의외로 힘이 세다.     


슬럼프는 일이 잘 안 풀릴 때만 찾아오는 게 아니다. 일이 잘 풀려도 찾아온다. 바쁘면 바빠서 찾아오고 한가하면 한가해서 찾아오는 게 슬럼프다. 마치 날 절대 잊지 말라고 경고하듯 잊을 만하면 찾아와 날 주저앉힌다. 하지만 결국 지나갈 것이다. 그러나 결코 그냥 지나가는 법은 없다.      


누구나 내 안에 어린아이를 품고 살아간다. 슬럼프가 왔다는 건 그 어린아이가 울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모든 슬럼프에는 이유가 있다. 어린아이가 우는 데도 다 이유가 있듯이.


내 안에 울고 있는 어린아이를 달래고 씻기고 먹이고 입혀서 반듯하게 서게 하는 것.

그것이 바로 슬럼프가 찾아왔을 때 우리가 해야 할 일이다.

나는 나를 육아할 의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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