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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쏭쏭이쌤 Nov 14. 2024

오늘 하루 빛났던 순간 7

교단일기

소수의 곱셈을 마무리하는 시간이 왔다.

칠판에 크게 84라는 숫자를 썼다.


"84는 자연수예요. 그런데 소수로 표현하면 점이 어디에 찍힌다고 했죠?"


대부분의 아이들은 4 뒤에 찍힌다, 일의 자리 뒤에 찍힌다 대답을 했다.


"그럼 84에 10을 곱하게 되면 숫자가 커지나요 작아지나요?"

"커져요~"

"그럼 소수점이 오른쪽으로 가나요, 왼쪽으로 이동하나요?"

"오른쪽이요!"


대부분의 아이들이 잘 대답을 했다.


"맞아요. 오른쪽으로 소수점이 옮겨지고, 이렇게 84, 840, 8400...로 숫자가 커지게 됩니다.

84는 그러니까 길이로 말하자면, 84cm라고 쳤을 때 선생님이 키가 170이니까 절반 정도 되는 길이네요. 

(허리 정도에 손을 대고 말함)

자, 그럼 84를 1/10로 줄여봅시다. 1/10로 줄이면 8.4cm인데, 이 자 보이나요?? 8.4cm는 10cm가 채 안되죠. 그럼 1/10, 1/100로 줄이게 되면 소수점이 어디로 이동하나요?"

"왼쪽이요~"

"그래요. 왼쪽으로 이렇게 옮겨지면서 84, 8.4, 0.84... 이렇게 숫자가 작아져요."


이제 운명의 발표시간.

수학시간마다 칠판 앞에 나와 직접 문제를 풀고 답을 쓰는 발표를 꼭 시킨다.

그리고 발표한 학생의 옆 짝꿍이 설명을 하게 한다.

그렇기 때문에 발표 직전의 아이들은 자기 짝을 챙긴다.

특히 짝꿍이 수학을 잘 못하는 경우 발표를 잘할 수 있도록 돕는다. 잘하는 사람이 설명하는 게 좋기 때문에.

먼저 자발적으로 발표할 사람을 물어본다.


"자, 이 다지기 2번 문제를 풀어볼 사람? 용기 있게 자원해 봅시다. 자기가 좋아하는 숫자를 쓰고 소수점이 이동하는 것을 칠판에 써주면 됩니다. 그리고 짝이 설명하면 돼요."


손을 잘 안 들고 내 눈을 피하면 이렇게 말해보기도 한다.


"선생님 눈을 마주치지 않는 사람을 시켜보겠습니다~"


그러면 아이들이 숙였던 고개를 들어 어색한 미소와 불안한 눈빛으로 내 눈을 바라본다. 

오늘은 다행히도 모두의 구세주로 수학을 잘하는 아이와 발표를 잘하는 아이가 한 팀이 되어 용기 있게 손을 번쩍 들었다.


"네, 용기 있는 세0이와 서0이 나와서 풀고 자유롭게 설명해 보세요."


두 아이는 신이 나서 칠판에 쓰고 유창하게 발표했다.

하지만 나는 안다.

이 모든 과정에 집중하지 않고 잘 모르는 상태인 아이들이 꽤 있다는 것을.

이것은 교사의 직감이다.

22명이니까 한 다섯 명쯤은 지금 딴생각중일 것이다. 이해하기 어려워서 그럴 수도 있고 그냥 딴생각중일 수도 있다.

다음 문제를 칠판에 쓰고 다시 발표할 사람을 물어보았는데 아무도 손을 안 든다.


"용기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군요. 그럼 어쩔 수 없이 뽑기를 해야겠네요."


나는 뽑기 통을 흔들고 긴장감속에 번호를 두 개 뽑는다.


"11번. 주0이, 2번 단0 ~"


뽑기에 걸린 아이들은 굉장히 괴로워했다.

나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분명 잘 모를 것 같은 아이들이 걸렸기 때문이다.

나와서 풀게 하면 어디를 모르는지 확실히 알 수 있다.

발표연습과 더불어 인성교육도 함께 할 수 있다.


이때 중요한 것은, 발표하는 아이들이 문제 푸는 감을 잡을 수 있게, 그래서 어려워도 자기가 풀 수 있게 도와줘야 한다는 것이다. 너무 쉬운 부분, 그러니까 구구단이나 두 자릿수 곱셈에서 막히면 나도 모르게 억양이 올라가지만 최대한 인내심을 발휘해서 부드럽게 말해야 한다.

그리고 끝까지 풀어내면 폭풍 칭찬을 해주는 것이다.

모든 문제를 풀고 오늘도 다시 한번 전체적으로 지도를 했다.


"우리는 다 공부하는 속도가 다른 거 알죠? 

 누구는 한 번에 이해할 수 있지만, 어떤 친구는 천천히 이해할 수도 있어요. 

 자기가 잘한다고 잘난척하고 무시하면 안 돼요. 

 그런 사람치고 중고등학교 가서 수학 계속 잘하는 사람 못 봤어요. (다 같이 웃음) 

 선생님한테는 이게 너무너무 쉬워요. 대학교 때까지 수학공부를 하기도 했으니까. 

 지금은 5학년만 3년째 수학을 가르치고 있고. 

 친구를 가르쳐주고 함께 공부해야 오랫동안 공부를 잘할 수 있어요.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까지 오랫동안 공부해야 하죠? 

 꾸준히 문제도 많이 풀고 수업시간에 집중도 하고 모르는 게 있으면 물어보고 계속 노력해야 잘할 수 있어요."


아이들은 대부분 집중해서 듣는 듯했다.


"자, 그런 의미에서 나, 소수의 곱셈 잘 모르겠다. 어떻게 푸는지 잘 모르겠다. 손 번쩍 들어봐."


한두 명이 어깨 높이만큼 조용히 손을 든다.


"손들기 부끄러우면 자기 가슴높이로 손가락을 들어서 표시해 볼래?"


한두 명이 또 손가락을 살짝 든다.


"그래, 이렇게 용기 있게 모르면 모른다고 말을 해야 해. 가만히 있으면 선생님은 너네가 아는 줄 알고 넘어가는 거야. 그리고 모르는데 아는척하고 가만히 앉아있는 게 더 부끄러운 거야."


그랬더니 한두 명이 또 손을 번쩍 든다.

웃음이 났다.

내 예상대로 대여섯 명의 아이들이 이해를 하지 못했다.

이 아이들의 가장 큰 문제는 2학년 구구단부터 헷갈린다는 것이다.

휴... 어떡해야 하지...


"자, 용기 있게 모른다고 손 든 친구들 수업 끝나고 남으면 돼. 알겠지? 칠판에 나와서 문제 몇 개 풀어보고 가자~"


손든 아이들은 씩씩하게 알았다며 웃었다.

우리는 남은 수업시간 동안 교과서의 단원종합 문제를 풀었다.

손든 친구들 중에 몇 명은 내 책상 옆에서 직접 지도를 해주며 풀게 했다.

옆에서 누가 가르쳐주면 그래도 집중해서 감을 잡고 풀었다.

두 자릿수 곱셈을 하는 것과 세 자릿수 곱셈 하는 것을 어려워했지만 세로셈을 알려주고 원리를 살짝 설명한 다음 풀게 하면 곧잘 풀었다.

중학교 가자마자 수학의 고비가 올 것을 알기에...

괜히 아이들이 수학 때문에 공부에 자신감을 잃지 않았으면 좋겠다.



"얘들아, 소수의 곱셈 너무 재밌지 않니? 소수점 이 동도 하고."

"아니요!!!!!!!!!!!!!!!!!!!!!!!"


또 나만 소수의 곱셈이 재밌다. 

나만 공부가 재밌다. 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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