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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하루 빛났던 순간 11

교단일기

by 쏭쏭이쌤

우리는 함께 우렁찬 목소리로 교실 한쪽 벽에 붙어있는 사이트워드 100개를 읽는다.


내가 읽으면 따라서 신나게 읽는다.


"어"

"어!"

"어바웃"

"어바웃!"

"알"

"알!"


그 와중에 영어단어를 잘 읽는 마리안느와 바이올릿은 러시아어 억양이 묻어나는 조용한 목소리로 빠르게 죽 읽어 내려간다.


어제 수학 익힘 숙제를 많이 안 해와서 화났던 나와 혼나서 의기소침했던 우리의 모습은 어디에도 없다.



4교시 쉬는 시간.


쉬는 시간 시작과 동시에 보드게임을 하려고 삼삼오오 모여 앉은 아이들에게 조심스레 도움을 요청했다.


"선생님이 도움이 좀 필요하거든..."


"(교실 뒤편에서 하얀색 반팔티를 입은 하*이가 손을 번쩍 들며 우렁찬 목소리로) 선생님 저요!!"


"좀 무거운 걸 들어야 해. 여러 사람이 필요해."


"(준*가 앞으로 뛰쳐나오며) 선생님 저요!!! 제가 할게요."

"(정*가 같이 앞다퉈 뛰쳐나오며) 제가 할게요 쌤!!!!"

"(민*가 창가 쪽에서 뛰쳐나오며) 아니에요, 제가 할게요. 저 진~~~짜 힘.쎄요."

"(마**리 가 천천히 다가오며 러시아어 억양이 묻어나는 한국어로) 선.생.님? 제가 할.게.요."


그 소중한 쉬는 시간 놀이를 마다하고 도와주겠다며 뛰어나온 아이들의 신나는 얼굴과 활기찬 목소리가 아직도 생생하게 남아있다.


그렇게 무거운 마사토를 아이들 덕분에 교실로 무사히 옮기고 우리는 8개의 화분에 예쁜 꽃을 심었다.


꽃을 잘 심기 위해 선생님이 분갈이하는 모습을 초집중해서 바라보던 아이들의 눈빛들.


미역이, 수박이, 귤, 초코, 딸기, 바나나, 와플, 홍삼이.


모두 먹을 것으로 이름을 붙였다며 깔깔거리며 웃던 아이들.


햇빛을 잘 받아야 잘 큰다고 나만 빼고 (내가 심은 건 사물함 위에 놓음) 모두가 창가 쪽에 가지런히 화분을 놓던 모습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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