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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주원 Jul 09. 2022

너, 내가 자꾸 사과하니까
만만해 보이냐?

'자주 만만해 보이는' 내가 '덜 만만하게' 보이기 위해 애쓴 이야기 


어려서부터 나는 세 가지를 잘했다. 인사, 감사, 사과. 아기 때부터 "고맙습니다, 해야지" 하는 말이 잘 학습이 된 바람직한 예라고 할 수 있겠다. 밥 먹듯 익숙했던 표현들, 바른 삶을 가르치던 부모님 덕이었을까? 그래서인지 인사와 감사, 사과에 얽힌 에피소드가 남들에 비해 좀 더 있는 것 같다. 


언젠가 복도에서 모르는 선생님들에게도 "안녕하세요" 꾸벅꾸벅 인사하는 버릇에, "너 사람들한테 인사 잘한다" "그래? 난 몰랐네" "넌 잘되겠다" 친구에게 들은 인상적인 평가도.  "한 비서는 뭐가 그렇게 계속 감사해?" 궁금증에서부터 비롯된 질문도, "자꾸 감사하다고 안 해도 돼." "그렇지만 진짜 감사한 걸 어떡해요!" 상사와 '감사' 하나를 두고 핑퐁 하던 릴레이도, "죄송합니다" "네가 왜 사과해?" 잘못한 게 있을 때마다 주저 없이 사과하던 순간들도. 모든 게 내 삶의 중요한 태도였다. 


나는 변명이 싫다. 정확히 말하면 '내가' 변명하는 모습을 싫어한다. 내가 한 일에 어떤 이유가 있더라도, 하지 못한 일과 그렇게 한 이유에 대해서 누군가 지적을 하면 "알겠습니다. 죄송합니다" 하는 편이다. 구구절절 내가 왜 그랬냐면요, 늘어놓는 일은 쿨하지 않다고!


설상가상, 약 몇 천 명가량을 대표하는 대표자를 맡으면서는 '책임지는 태도'마저 생겼다. 내 책임도, 심지어 남이 한 일에 대해서라도 누군가 내가 한 일로 오인하고 꾸중하거나 지적해도 말을 아끼는 습관이다. 이는 나의 진짜 모습과 직면하는 습관이기도 했다. 언젠가 한 번은 한 의원님께 작은 실수를 한 적이 있었는데 그 실수를 누가 한지 모르는 상황이었다. 그 상황을 묻는 보좌관님과 의원님의 물음에 재빨리 "제가 했습니다, 죄송합니다"라고 고백했더니, 도리어 풀린, 온화한 표정으로 "거짓말하거나 변명 안 해서 놀랐다. 솔직하게 말해서 괜찮다. 얘기 잘했다"라고 칭찬해주신 일도 있었다. 


인사하고 감사해하고 미안해하고 책임지는 게 나였다.



실제로 내 마음이 그랬으니까, 반갑고 감사하고 미안했으니까, 나는 그저 아낌없이 표현할 뿐이었다. '그게 난 더 좋은 것 같던데.'




하지만 나이가 들수록, 사회생활을 할수록, 사과하고 감사하는 삶이 그리 쿨한 게 아니라는 걸 깨닫게 되었다. 사회생활을 하며, 실제로 미안하다, 고맙다고 말하는 이가 드물다는 걸 깨닫고 난 뒤였다.  


내가 싫어하는 상황이 있다면, 그건 바로 남의 잘못을 내 잘못처럼 덤터기 쓰는 일이다. 그런 일은 대체로 '내가 사과를 잘하는 타입인데, 같이 일하는 상대방은 안 하는 타입일 때' 그렇다. 이런 두 성향의 사람이 만난다면? 남의 잘못을 덤터기 쓰고, 난 무능한 사람이 된다. 타인의 실수도 곧 내 실력이 되고 한번 실수한 게 마치 5번째처럼 보이게 되니까. 그제야 상황을 설명하면 뭐하나? 난 이미 그 집단 내에서 완전히 바보가 됐는데. 






하나 떠오르는 일이 있다. 예전에, 사과를 잘하지 않는 두 사람 안에 끼었던 적이 있었다. 서로 안 하려 하는 일을 내가 종종 떠안았다. 누군가 제쳐둔 '그 사람의 일'을 얼결에 내가 도와주고 있었는데, 그 일을 가지고 혼날 때 혼은 내가 나야 했던 어이없던 상황도 있었고. 참다 참다 말한 것들에 대해 '죄송하다'는 사과는 들을 수도 없었을뿐더러 가끔은 대답조차 안 했다.(이거 원. 지적하기도 쫌팽이같잖어?!) 


본인이 잘못한 일에도 사과나 감사 표시를 전혀 하지 않으면서, 그나마 입을 열 때는 "본인 상황이 이러저러해서 못했다"고만 말할 뿐이었다. 그럼 중간 상황 보고라도 해주던가, 내가 얘기한 시간을 훌쩍 넘겨서 기다리고 기다리다가 상황을 확인한 내게 '나도 하려고 했다. 왜 내가 어련히 말할 건데 기다리지 못했냐'는 의미를 담은 카카오톡 답장에 속된 말로 '빡치기'도 여러 번이었다. 


너무 뻔뻔한 태도에 '아니 내가 잘못한 건가?' 갸웃거리기 일쑤였다. 내가 나이가 더 어린데 내가 꼰대인 건가? 자학하기도 여러 번이었다. 시간을 훌쩍 넘겨도, 내가 그저 참아야 하는 건가? 친구들에게 조언을 구해보니 네가 너무 참았다는 대답을 들었다. 내가 이상한 건 아니구나. 


어버버, 어리숙한 사람에겐 보통 사람들에게 보다 더, 황당한 순간이 많이 찾아온다. 






언젠가 이런 고민을 가족에게 털어놓은 적이 있었다. 나도 앞으로 더욱 뻔뻔하게 나가고 싶었다. "사과하는 사람만 호구야. 나만 사과하는 거 억울해! 짜증나." 그랬더니 "원래 그렇다"라고. "사과를 안 하는 사람이 이겨. 그렇더라고, 사과를 하던 사람이 나중엔 흑화 해. 너도 그렇게 될 거야.' 


사람들이 이런 과정을 거쳐서 변하는구나. '나도 그럼 이제 사과 안 해! 나도 남의 성과 내 거처럼 굴고, 내 잘못은 남의 것처럼 굴 거야' 그런 생각이 들 때쯤, 바짝 나를 깨우는 생각이 내 머릿속에 떠올랐다. 나도 변하면 안 된다는 생각이었다. 무엇이 더 좋은 가를 따져봤을 때, 아무래도 나는 내 잘못은 내가 사과하고 책임지는 쪽이 나았다. 서로 사과와 감사를 표현하는 사회를 꿈꿨다.




나는 서로 사과를 주고받는 게 좋은데, 
내가 당했다고 내 태도가 저 사람처럼 바뀌면
곧 나도 다른 이에게 상처를 주는 사람이 되겠구나.

그럼 내 좋은 천성을 잘 지켜야겠다. 

대신 더 이상 호구 잡히지는 말자.
내가 하지 않은 일에는 하지 않았다 얘기하자. 







꽤 최근에는 이런 일이 있었다. 대표자-중간 관리자-그리고 직원들이 있는 카톡방. 중간관리자가 실수로 챙기지 못한 일을 다른 직원(A)가 마치 본인이 실수한 것처럼 사과를 하고 있더라. 상대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려 'ㅠㅠ'나 '(우는 이모티콘)'을 함께 보내면서. 그럼 중간관리자는 어떻게 했냐고? 지시를 했다. 사과만 쏙 빼놓고. 분명한 건 사과한 A의 실수가 아니었다는 점이었다. 명백히 매니저의 실수였는데 사과는 애먼 사람이 하고 책임자는 마치 본인의 잘못이 아닌 체하고 있던 거다. 대표는 직원을 혼내고 있고 A를 뺀 다른 직원들은 본인들이 할 일이 늘어나서 A에게 볼멘소리를 하는, 그런 환장하는 상황.


예전의 나를 보는 것처럼 화가 났다. 두고 보기가 힘들었다. 그래서 그 직원에게 왜 네가 사과를 했느냐 물었고, 정정하고 싶은지 의사를 물었다. 하고 싶단다. 그래서 짚었다. 비난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일하는 시스템에 대해서 보다 더 확실히 하기 위해서. 앞으로 서로가 더욱 마음 상하지 않기 위해서. 


"이 일은 매니저가 하는 거 아닌지, 혹시 제가 잘못 알고 있다면 알려주시면 감사하겠다"라고 정중히 대표자가 있는 자리에서 얘기를 했다. 그제야 중간관리자는 사과를 했고, 본인이 나서 사과했던 직원은 내게 '고맙다, 나도 아까 당황해서 사과를 했다. 선배가 듬직하다'라고 얘기를 해주었다. 

 





 말을 듣는데, 이상하게도 한 단계 어른이 된 기분이 들었다. 뿌듯하면서도, 내가 이제는 누군가에겐 잠시 피할 그늘이 됐구나. 어른이 된 내가 낯선 느낌. 


본인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이 이상한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다. 서로 딱 본인의 몫만이라도 책임질 수는 없나?  미안하다고 하는 사람들만 이상하게 만드는 이 사회가 싫기 때문에, 내가 나서서 오히려 나는 내 몫을 잘 책임지는 것이다. 대신 다른 이의 잘못은 적절히 덮어줄 줄도 아는 그런 어른이 되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는 나부터 내가 할 일을 제대로, 잘해야 한다. 논리적으로 이유와 주장을 함께 섞어서 말하는 연습을 해야 한다. 더욱더 멋있는 나이 든 사람이 되기 위해서, 후배의 선선한 그늘이 될, 멋있는 선배가 되기 위해서. 다짐을 남겨본다. 다음의 나는 얼마나 성장해 있을지 섣부르게 기대해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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