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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야 Aug 10. 2021

칫솔을 버려도 미안하지 않아

나와 우리, 지구 모두가 행복한 습관 1 : 대나무 칫솔


"매년 230억 개 버리는데... 최초 플라스틱 칫솔 썩지 않았다"
 <중앙일보> 2021년 2월 7일


그 중 내가 버린 건 몇 개나 될까.






초등학생 시절, 다섯 식구가 사는 우리 집엔 오래된 칫솔들이 칫솔통으로 쓰던 작은 항아리 안에 담겨 서 있었다. 칫솔모가 다 눕고 휘어, 지금에서 보면 당장 버려야 할 칫솔들이지만 몇 달 이상 쓰는 게 예삿일. 겉보기에 멀쩡해보인다는 이유로 하나의 칫솔을 오래토록 써야 했다. 뭐 그런 물건이 한둘이겠냐만은.



사회초년생이 되어 돈을 벌면서부터는 천원샵이나 다이소에서 파는 칫솔을 두어 달 썼고, 이후엔 대형마트에서 1+1 프로모션으로 파는 칫솔을 한 번에 잔뜩 샀다. 옛 기억 때문인지 오래된 칫솔을 쓰는 게 싫어 칫솔모가 조금만 누워도 바로 새것으로 교체했는데, 그 주기는 어느 땐 짧았고 어느 땐 길었다.


이십 대 후반이 되고, 치과가 무서워지자 전에는 흘려 봤던 기사들이 눈에 잘 보였다. 치과에서 쓰는 돈만큼 아까운 게 없으니까. 치과 전문의들이 꼽는 최고의 치아 관리법은 '새 칫솔'. 한 달에 한 번, 칫솔을 바꾸는 것만으로 위생에 큰 도움이 된다고 한다.

그 후로는 한 달에 한 번, 욕실 대 청소를 하는 날 쓰던 칫솔로 세면대나 변기 틈 사이를 닦고 새 칫솔을 꺼냈다. 그렇게 일 년 12개의 플라스틱 칫솔을 버렸다.






예전 그러니까 오래 되어 언제였는지 잘 기억나지 않은 과거에, 한 커뮤니티에서 월급을 두고 '사이버머니'라고 일컫는 글을 읽었다. 내 손에 잡히지 않는, 절대로 만져볼 수 없는 존재. 수치로만 보이는 그 작고 소중한 존재를 비트는 글이었는데 지금까지 잊혀지지 않는다.


그렇지. 월급은 통장을 스쳐 지나가는 것뿐이다. 카드사를 비롯해 다른 사람들이 내 돈을 먼저 빼가기 전에, 내 노동의 눈물맛을 느끼고자 재빨리 백화점이나 마트로 향했다. '내가 이 맛에 돈 벌지'라며 사온 물건을 한참 언박싱하고 나면, 내용물이 이거밖에 안 된다고? 묻게 된다. 샘플 증정이라는 문구에 혹해 산 30ml  수분크림은 제 통보다 족히 4배는 큰 플라스틱 케이스에 담겨 있다. 이럴 바에 1,000원 혹은 500원이라도 싸게 팔고 대신 포장재를 줄이면 좋겠건만, 큰 상자를 들고 쾌감을 느끼던 내 모습을 떠올리면 왜 기업들이 포장에 혼신의 힘을 다하는 지 모를 일이 아니다.


칫솔 포장도 다를 바 없다. 뒷면 종이에 그어진 절취선은 도대체 왜 있는 건지. 플라스틱과 종이를 깔끔하게 분리해본 적이 한 번도 없다. 종이는 너덜너덜해지고 얇은 플라스틱 막은 구겨질대로 구겨진다. 어차피 재활용이 안 되는 플라스틱이니 쓰레기통에 구겨 넣는다. 아침에 비운 쓰레기통은 그날 저녁이면 금세 또 차고 넘친다.



10년 가까이 찾는 치과에서 원장님은 늘 같은 충고를 건넨다.


"매번 말씀드리지만 칫솔질을 너무 강하게 하시는 것 같아요. 살살 여러 번 닦으세요. 치실은 사용하시죠?"


내게 맞는 칫솔은 미세모다. 가늘고 부드러운 칫솔로 치아 사이를 여러 번 살살 충분히 닦고, 그보다 간격이 좁은 치아 사이는 치실로 마무리해야 한다. 한 달에 한 번씩 바꾸는 칫솔은 굳이 비쌀 필요가 없다. 대단한 기술이 집약되어 있다는 칫솔을 쓸 때마다 잇몸에선 피가 난다. 








대나무 칫솔을 쓴 지 2년 가까이 되었다. 나무 도마에 생긴 곰팡이를 보고 습기가 많은 곳에선 나무 제품을 쓰지 않았다.(물론 관리를 못한 탓이겠지만) 그런데 대나무는 방습 효과가 뛰어나다고 했다. '어차피 한 달 쓸 거, 한 번 써보지 뭐'라는 생각에 대나무로 바꾼 게 지금까지 이어졌다.


대나무 칫솔도 일반 칫솔과 다를 게 없다. 모가 부드러워 구석구석 잘 닦이고 칫솔걸이에 두고 보관하면 금세 말라 습기 걱정도 할 필요 없다. 대신 한 가지가 다르다. 버릴 때 마음이 덜 불편하다는 점이다. 내 치아를 건강하게 하는 제품이 내가 살고 있는 이 지구를 오염시키지 않는다니 기분이 썩 괜찮다. 



대나무는 하루 최대 1m가량 자라는 슈퍼 트리다. 주요 서식지로 꼽히는 지역은 상대적으로 소득이 낮은 사람들이 살고 있어, 그 대나무를 소비하는 것이 그들의 경제 활동에도 도움이 된다. 뿐만 아니라 나무 그 자체를 가공해 만들어 썩는 데도 오래 걸리지 않는다.



지난 7월, SK 그룹 최태원 회장의 인스타그램에 대나무 칫솔 사진이 올라왔다. ESG 경영에 힘쓰는 그의 소신이 돋보였다. 이런 분위기라면 오래지 않아 100% 천연 소재의 칫솔도 상용화되지 않을까. (현재 칫솔모까지 천연 소재로 이루어진 칫솔은 비용, 촉감 등 여러 면에서 낮은 점수를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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