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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야 Aug 25. 2021

행복한 우울자

생각보다 괜찮은 우울증 치료기 1



글을 쓰는 데 재능이 없는 것 같다. 수년간 글을 쓰며 밥벌이를 해왔지만 내 이야기를 쓴 게 아니었다. 그러니 나만의 남다른 시선을 담는 덴 젬병이었다. 그럴듯하게 보이긴 했으나 속은 텅 비어 있었나 보다. 글쓰기가 나를 성장시키리라 믿었지만 옳은 믿음이 아니었다. 화려한 수식어나 피상적인 단어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었다. 답은 예상치 않은 곳에 있었다.







정신과 치료를 시작한 지 1년 8개월이 됐다. 경기도 군포에서 선릉까지 왕복 2시간이 걸리는, 귀찮은 일정이지만 한 번도 빠지지 않았다. 오랫동안 약물치료를 해온 덕에 하루 정도는 복용을 건너뛰어도 별 탈 없지만 곧 두통이 밀려와 다시 약을 먹어야 하기 때문이다. 의사 말에 따르면 체내 약물 농도가 일정 기준 이하로 떨어질 때 역반응이 온다는데, 두통이 대표적이다.


지난달부터 약의 종류와 농도를 줄이고 있다. 불안이나 우울감, 수면장애 등의 증상이 많이 호전되었고, 스트레스 관리도 잘 되고 있다. 이제 서서히 약을 줄이고 끊을 예정이나 지금으로부터 최소 6개월, 길게는 1년 이상도 더 걸릴 수 있다.





치료를 시작하면서 겪게 되는 불편은 크게 두 가지다. 비용과 주변 시선.



우울증은 증상을 겪은 기간과 치료 기간이 비례한다. 오랫동안 우울증을 앓았다면 치료에도 오랜 시간이 걸린다. 습관을 고치는 것과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 ‘언제’라고 못 박을 수는 없지만 내 경우 불안, 자기부정 등의 증상이 꽤 오랜 세월 있었고 때문에 치료 역시 오래 걸리는 편이다. 자연히 치료비도 오랫동안 내고 있다. 지금까지 쓴 비용을 대략 계산해보면 최신 휴대폰 한 대는 살 수 있다. 돈이라는 개념은 꽤 상대적이지만, 적은 비용은 아니다. 빠듯한 생활비에 치료비는 큰 부담이니까 말이다. 아, 여기엔 통원 시간이나 기회비용은 빠져 있으니 모두를 합하면, 유지하기 쉽지 않다.



사실 돈보다 더 불편한 것은 시선이다. 늘 ‘굳세어라 금순아(2005년도 드라마)’를 외치는 부모님께는 아직도 이야기하지 않지만 가까운 지인들은 내 치료 사실을 알고 있다. 잘못된 행동이 아니기에 숨기지 않았다. 다들 아무렇지 않게 내 이야기를 받아들이는 듯 보여도, 순간의 정적은 늘 존재한다. 친구 가운데 몇몇은 내게 자신의 우울감을 터놓기도 하는데, 막상 내가 상담이나 치료를 권하면 별 말이 없다. 아마 ‘나는 그 정도는 아닌데’하고 생각할 게다. 그게 우울증 환자가 마주하는 현실이다. 남의 시선을 의식하면 치료를 시작하거나 이어가는 것 모두 어렵지만, 막상 치료를 시작하고 나면 별 문제가 아니다. 적어도 내 경우엔 이제 남의 시선보단 내가 나를 대하는 마음이 우선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치료를 통해 얻은 결과일지도 모르겠다.




최근 심심풀이로  ‘우울증 자가테스트에서 7점이 나왔다. SNS 떠도는 간이 테스트에 불과하지만 60 만점(만점에 가까울수록 우울증이 심함) 7점이면   하나다. 미쳤거나 미친 척하거나. 하하. 이건 농담. 비교적 평온한 심리 상태를 유지하는 남편조차 10점대라고 하니 확실히 현대 의학의 발전을 체감한다.



그러니까 나는 보통 사람들보다 훨씬 행복한 삶을 사는 우울증 환자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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