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보다 괜찮은 우울증 치료기 1
글을 쓰는 데 재능이 없는 것 같다. 수년간 글을 쓰며 밥벌이를 해왔지만 내 이야기를 쓴 게 아니었다. 그러니 나만의 남다른 시선을 담는 덴 젬병이었다. 그럴듯하게 보이긴 했으나 속은 텅 비어 있었나 보다. 글쓰기가 나를 성장시키리라 믿었지만 옳은 믿음이 아니었다. 화려한 수식어나 피상적인 단어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었다. 답은 예상치 않은 곳에 있었다.
정신과 치료를 시작한 지 1년 8개월이 됐다. 경기도 군포에서 선릉까지 왕복 2시간이 걸리는, 귀찮은 일정이지만 한 번도 빠지지 않았다. 오랫동안 약물치료를 해온 덕에 하루 정도는 복용을 건너뛰어도 별 탈 없지만 곧 두통이 밀려와 다시 약을 먹어야 하기 때문이다. 의사 말에 따르면 체내 약물 농도가 일정 기준 이하로 떨어질 때 역반응이 온다는데, 두통이 대표적이다.
지난달부터 약의 종류와 농도를 줄이고 있다. 불안이나 우울감, 수면장애 등의 증상이 많이 호전되었고, 스트레스 관리도 잘 되고 있다. 이제 서서히 약을 줄이고 끊을 예정이나 지금으로부터 최소 6개월, 길게는 1년 이상도 더 걸릴 수 있다.
치료를 시작하면서 겪게 되는 불편은 크게 두 가지다. 비용과 주변 시선.
우울증은 증상을 겪은 기간과 치료 기간이 비례한다. 오랫동안 우울증을 앓았다면 치료에도 오랜 시간이 걸린다. 습관을 고치는 것과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 ‘언제’라고 못 박을 수는 없지만 내 경우 불안, 자기부정 등의 증상이 꽤 오랜 세월 있었고 때문에 치료 역시 오래 걸리는 편이다. 자연히 치료비도 오랫동안 내고 있다. 지금까지 쓴 비용을 대략 계산해보면 최신 휴대폰 한 대는 살 수 있다. 돈이라는 개념은 꽤 상대적이지만, 적은 비용은 아니다. 빠듯한 생활비에 치료비는 큰 부담이니까 말이다. 아, 여기엔 통원 시간이나 기회비용은 빠져 있으니 모두를 합하면, 유지하기 쉽지 않다.
사실 돈보다 더 불편한 것은 시선이다. 늘 ‘굳세어라 금순아(2005년도 드라마)’를 외치는 부모님께는 아직도 이야기하지 않지만 가까운 지인들은 내 치료 사실을 알고 있다. 잘못된 행동이 아니기에 숨기지 않았다. 다들 아무렇지 않게 내 이야기를 받아들이는 듯 보여도, 순간의 정적은 늘 존재한다. 친구 가운데 몇몇은 내게 자신의 우울감을 터놓기도 하는데, 막상 내가 상담이나 치료를 권하면 별 말이 없다. 아마 ‘나는 그 정도는 아닌데’하고 생각할 게다. 그게 우울증 환자가 마주하는 현실이다. 남의 시선을 의식하면 치료를 시작하거나 이어가는 것 모두 어렵지만, 막상 치료를 시작하고 나면 별 문제가 아니다. 적어도 내 경우엔 이제 남의 시선보단 내가 나를 대하는 마음이 우선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치료를 통해 얻은 결과일지도 모르겠다.
최근 심심풀이로 본 ‘우울증 자가테스트’에서 7점이 나왔다. SNS에 떠도는 간이 테스트에 불과하지만 60점 만점(만점에 가까울수록 우울증이 심함)에 7점이면 둘 중 하나다. 미쳤거나 미친 척하거나. 하하. 이건 농담. 비교적 평온한 심리 상태를 유지하는 남편조차 10점대라고 하니 확실히 현대 의학의 발전을 체감한다.
그러니까 나는 보통 사람들보다 훨씬 행복한 삶을 사는 우울증 환자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