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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야 Feb 01. 2023

우울증과 반려견

강아지와 살면 궁금한 것들이 많아진다. 우리 강아지는 왜 꼬리를 치지 않을까? 우리 강아지는 왜 내가 집에 돌아와도 시큰둥할까? 하는 것들이.


개.바.개 

강아지마다 태도나 행동 방식에 차이는 있겠지만, 여전히 위의 두 궁금증은 해결되지 않았다. 때문에 그 답을 찾고자 여러 권의 책을 읽었는데, <개와 사람의 행복한 동행을 위한 한 뼘 더 깊은 지식>도 그러면서 알게 되었다. 동물행동학자 마크 베코프가 쓴 책으로, 최재천 교수가 직접 감수에 참여해 믿음이 갔다.


그러나 기대와 달리, 이 책에서도 그 답을 찾을 수는 없었다. 약간의 실망으로 책장을 이리저리 넘겨보다 제목 하나가 눈에 들었다. '개가 지닌 치유의 힘'이라는.




개들이 정말로 인간의 삶을 긍정적으로 변화시키는지 연구한 결과와 과학 문헌들을 살펴보았을 때 사람들 생각만큼 그렇게 확실하지는 않다. 분명 도움받은 사람들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있다.



개와 산다고 모든 문제가 해결되리란 기대는 접으면 좋다. 개는 약이 아니라 사랑과 돌봄이 필요한 살아있는 존재다.




문득 지구와 함께 살기 시작했던 옛 기억이 떠올랐다.







2020년 봄, 진료실에서 "강아지를 데려왔다"라고 말했다. 예상했던 것과 달리 우려 가득한 답이 돌아왔다.


'잘 해내야 한다'는 강박이 있는 내겐 강아지를 제대로 키워야 한다는 무의식이 작용하기 쉽고, 이것이 스트레스 요인이 될 수 있다는 것. 


보통 우울증을 겪는 사람들에게 반려동물을 권하던데. 반려동물에게서 받은 사랑이 큰 도움이 된다던데. 원장님의 극단적인 걱정에, 나는 되려 원장님이 걱정됐다. 요즘 스트레스가 많으신가 보군 하며.


그리고 며칠 지나지 않아, 원장님이 왜 신경정신의학과 전문가인지 실감하게 됐다.




강아지는 인형이 아니었다. 보상을 통한 긍정 교육? 강아지에겐 사회화요, 내겐 분노절제교육이었다. 


장판을 물어뜯고, 먹어선 안 될 것들을 먹었다. 식물을 씹는 건 그나마 감사한 일. 신발과 가방, 연필, 칫솔 등 두 발로 잡고 물어뜯기 쉬운 건 물론, 가전제품 전원줄까지 너덜너덜해졌다. 이불에 오줌을 싸고 빨면 또 쌌다. 내 손이 장난감인 줄, 남편 뒤꿈치가 장난감인 줄 살짝 물었을 뿐인데 동그랗게 구멍이 뚫리고 피가 흘렀다. 집 안팎에서 굴러다니느라 목욕을 해도 하루면 다시 꼬질꼬질했다. 


저 작은 생명체에 도대체 어떤 힘이 깃들어 있는 걸까. 아무리 산책을 해도 지치지 않았다. 반면 그 맘때 시작한 일이 바빠지며, 나는 일과 강아지 육아, 집안일까지 매일이 훈련처럼 느껴졌다. 






그러던 어느 날, 몸살 기운이 들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온몸이 저리고 열이 났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쉬고 싶은데 침대 밑에서 '낑낑' 소리가 들렸다. 분명, 놀자는 뜻일 터. 못 들은 척 이불을 뒤집어썼지만 소리가 줄지 않았다. 짜증을 내며 TV를 켰다. TV 소리에 강아지의 생떼 소리가 묻히기를 바라며.


30분쯤 지났으려나 TV를 꺼도 조용했다. 안도는 이내 불안으로 뒤바뀐다. 뭐지, 왜 이렇게 조용하지? 억지로 몸을 일으켜 거실로 나왔다. 강아지가 보이지 않는다. 두 눈이 커지고 머리가 아파온다. 


지구! 지구야!


이름을 불러도 기척이 없다. 


문이 닫혀있으니 밖으로 나갈 일은 없었다. 집 안 곳곳을 뒤진다. 작은 몸이라 어디든 들어갈 수 있다. 강아지 집, 옷장 안, 화장실, 커튼 뒤편, 베란다 구석 어디를 찾아봐도 보이지 않는데 어디선가 기지개 켜는 소리가 들린다. 


화장대 아래, 한 뼘 정도되는 구석에서 앞발을 쭉 피고 있는 지구와 눈이 마주친다. 하. 큰 한숨을 내뱉는다. 그래, 잘 잤니 요 꼬맹아? 나는 그제야 주섬주섬 옷을 갈아입고 산책줄을 챙긴다.


 짧게 30분 만을 외치고 나간 산책은 어느덧 1시간이 다 되어간다. 산책 길에선 "안 돼!"라는 말을 얼마나 외쳤는지 셀 수가 없다. 몸은 물론, 마음이 지쳐 집에 돌아온다. 330ml 컵 가득 정수 한 잔을 마시고 거실에 뻗어버린다. 나도 모르는 새 잠이 들었다 깨니, 다리 한쪽에 등을 붙인 채 잠이 든 강아지가 숨 쉬고 있다.





강아지와 함께 산다는 건 생각보다 훨씬 손이 많이 가고, 많은 시간을 내야 한다. 내 한 몸 건사하기 힘든 사람이 다른 생명체를 챙기려니 죽을 맛이다. 그래, 개와 산다고 우울증이 낫는 건 아니다. 내 삶의 무게에, 강아지 삶까지 더해지니 가슴이 턱턱 막힐 때가 많다. 


뭐든 눈에 보이는 건 입으로 가져가는 새끼 강아지, 지구. 바닥에 물건을 내려놓은 스스로를 원망할 때가 정말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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