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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두철

by 이미숙

바야흐로 일찍 꽃 피웠던 꽃들의 열매가 익는 계절이다. 붉은 것들은 붉은 대로, 검은 것들은 검은 대로 손아귀에 감탄사를 붙이고 들어온다. 절로 입이 벌어진다. 벌어진 입으로 들어가는 것들이 저만의 빛깔로 존재감을 과시한다. 산딸기 한 줌을 따서 입에 털어 넣었더니 금세 동공이 확장된다. 은근하게 퍼지는 향이 비할 바 없이 싱그럽다. 과하지 않은 단맛과 코 끝을 스치는 정도의 엷은 향이 그지없이 매력적이다.

오디는 향보다 색이다. 입이고 손이고 모두 제 빛깔로 덧칠을 한다. 쉽게 빠지지도 않는다. 냉큼 손이 가지 않는다. 야생은 눈곱 찌기만 한 게 혀를 자극한다. 검지손가락 한 마디 크기를 넘나드는 재배 오디와는 크기에서는 깜도 안 되지만 맛은 덩치 큰 놈 비할 바가 아니다.

집 뒤꼍 앵두도 흐드러져 매달리더니 몇 알 떨구지도 않은 채 익었다. 오가는 마을 분들 한 움큼씩 따 드시며 재래종이라 맛이 좋은데 왜 안 따 먹느냐 성화다. 난 좀 그렇다. 일단 씨가 90이 넘는 놈을 퇘퇘 뱉어내며 먹는 것이 흡족스럽지도 않지만 먹고 나면 입안이 떨떠름하고 목이 불콰하니 불편하다. 그렇다고 그걸 따서 술이나 청을 만들어 봤지만 술도 안 먹고 청도 설탕 무서워 안 먹게 되니 재고만 늘었다.

매실도 마찬가지. 청도 담가 보고 차도 만들어보고 했으나 모두 재고로 남았다. 이제 관상요에 불과하다.

한 바지 앵두를 따다가 동네 어귀 정자 밑에 놔둬 봤다.

드셨으려나?


철을 맞이한 놈들이 제대로 대접도 받지 못한 신세가 되어 뒹굴고 있다.

주인 잘못 만난 처지가 참 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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