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Bonnie Apr 19. 2022

미얀마 Myanmar I

양곤 / 짜익티요 / 바고




Intro

 

 미얀마에 대한 글을 쓰려니 선뜻 손이 나서질 않는다. 군부 독재에 저항하는 현재 미얀마 상황 때문이다. 가난하지만 따뜻한 사람들이었고, 분주하지만 여유가 있는 사람들이었다. 미얀마나 우크라이나를 보면 무력한 기분이 드는 걸 어쩔 수가 없다. 부당하고 광기 어린 사태라는 걸 전 세계가 다 아는데도 어떻게 해줄 수가 없다. 중국 정부와 결탁한 미얀마 군부는 강력했고, 민주화 시위는 장기화되고 있다.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곤 하루빨리 이 상황이 종료되길 기도하는 것뿐.

 내가 기억하는 건 2016년의 미얀마. 군부독재도, 무고한 죽음도 없는 평화로운 시대의 미얀마를 여행했다. 미얀마에 이런 평화가 꼭 다시 찾아올 거라 믿으며, 그때의 여행을 기록해본다.



 



양곤의 매력

 

 조용한 루앙프라방에 있다가 대도시인 양곤에 왔더니 시끌벅적하다. 동글동글 달라진 글씨와 간판의 홍수, 쓰레기가 굴러다니고 사람들은 빨간 침을 택택 뱉는다. 전선은 어지럽게 하늘을 가리고, 낡디 낡은 식민지풍 건물은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다. 교복을 입은 아이들과 론지를 입은 남자들이 분주하게 지나다니고, 거리의 상인들은 물건 팔기에 여념이 없다. 샨 누들 집은 만석이고, 광장의 비둘기는 날았다 앉았다를 반복한다.

 나에게는 이런 시각적 생생함이 바로 양곤의 매력이었다.





꽁야


 어디서든 빨간 침을 택택 뱉는 사람들. 대체 뭘 하는 건지 알아봤더니 '꽁야'라는 씹는담배 때문이란다. 정확하게는 빈랑나무잎에 빈랑나무 열매를 넣어서 씹는 건데, 중독성이 강한 기호식품 정도로 생각하면 된다. 하지만 문제는 이 꽁야를 씹는 사람들이 빨간 침을 아무 데나 뱉어버린다는 것. 게다가 발암 물질이 있어서 미얀마 정부에서 금지시키려고 노력을 많이 하고 있다지만 그다지 실효성은 없어보였다.


 궁금한 건 못 참는 조, 하나 사서 씹어본다. 역시나 몇 번 씹더니 뱉어버린다. 맛은 없어 보였어.





론지

 

 미얀마 남자들은 아직도 전통의상인 론지를 일상복으로 입는다. 긴치마를 입고 뭐든 잘하는 미얀마 남자들. 론지를 입은 미얀마 남자들 덕분에 풍경이 훨씬 더 이국적이었다. 조가 한번 입어보고 싶어 해서 사봤더니, 그냥 시각형의 천이다! 그 천을 묶어서 치마처럼 입는 것인데, 흘러내리지 않는 게 너무 신기하다. 그리고 어떻게 하는지 그 안에 별걸 다 보관한다. 마법 주머니처럼 론지에서 돈이나 꽁야를 꺼내는 미얀마 남자들을 볼 때면 그저 감탄하는 수밖에 없었다.

 일상생활에서 전통의상을 입는 민족은 그리 많지 않을 거다. 부디 이 아름다운 전통이 오래오래 계속되길 바라본다.





밤의 포장마차


 양곤 하면 시장의 즉석구이 포장마차가 떠오른다. 한국사람으로서 이런 말을 하는 게 조금 자존심이 상하기도 하지만 미얀마 사람들은 제대로 돼지고기를 구울 줄 안다. 아니 튀길 줄 안다고 해야나. 우리는 밤마다 시장 포차로 달려가 삼겹살 구이와 미얀마 비어를 시켰다. 어느 날엔가는 한 남자가 다가오더니 자기가 미얀마 연예인이라며 자신이 나온 드라마를 보여주며 은근히 우리 테이블에 앉았다.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포장마차니까 가능한 일들. 사람 사는 게 참 다른 듯 하지만 똑같다.





부산행


 세계적으로 부산행의 열기가 뜨겁다더니, 거짓말이 아니었다. 양곤의 극장에도 부산행이 개봉한 것. 이렇게 좋은 기회가 어디 있겠나 싶었다. 우리는 자막 없이도 알아들을 수 있는 영화니까. 해외에서 보는 첫 한국영화였다. 영화를 보기도 전부터 괜히 기분이 좋았다.

 미얀마어 자막과 함께 영화가 시작되었다. 부산행을 보는 우리도, 관객들도 몰입도가 대단했다. 영화의 중반쯤 대전역에서 잠시 하차하는 장면, 긴장의 최고조를 달리는 가운데 갑자기 화면이 암전 되었다. 극장 안은 난리가 났다. 전혀 모르는 미얀마어를 왠지 알아듣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다들 한마음으로 '뭐 하는 거야' '화면이 안 나오잖아'라고 하는 듯했다. 상영실에서 잠깐 실수를 한 건지 가장 중요한 장면 1분 정도를 보지 못한 채로 다시 화면이 보이기 시작했다. 부산행은 너무 재미있었고, 관람을 마치고 나오는 사람들의 표정을 나도 모르게 살피고 있었다. 다들 상기된 표정으로 영화에 대한 얘기를 하며 영화관을 나서는 듯했다. 잘 만든 영화는 전 세계 누가 봐도 좋아하는구나.

 하지만 1분간의 암전이 생각나서 피식 웃음이 났다. 한국이었다면 다들 영화관측에 항의하지 않았을까. 하지만 잠깐의 암전은 뭐 늘상 있는 일인 듯 신경 쓰지 않던 미얀마 사람들. 너무 순박하고 귀여웠다.

 그렇게 우리는 부산행이 양곤에 개봉하는 역사적인 그날, 그 순간에 있었다.





짜익띠요 골든 락


 짜익띠요 파고다는 미얀마의 불교 성지로, 부처님의 머리카락이 모셔져있다고 한다. 산 정상에 아슬아슬하게 걸쳐진 바위는 몇 번의 지진에도 떨어지지 않고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고 한다. 과연 영험한 곳에 가기는 쉽지가 않았다. 산 정상까지 올라야 하다 보니 힘 좋은 트럭을 개조한 셔틀버스를 타고 산을 오르는데, 이건 뭐 롤러코스터가 따로 없다. 누구 하나 튕겨나가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꼬불 길을 내달리는데, 성지 가기 전에 내가 성인이 되겠더라는... 그래도 재미는 있었다. 인정!

 신도들은 불심을 바위에 금박을 붙이는 것으로 표현하고 있어서, 바위는 처음부터 금으로 만들어진 것처럼 보였다. 산 정상에 아슬아슬하게 걸쳐진 골든 락은 그 자체로 부처님의 힘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미얀마 불교 전통에 따라 여자는 바위를 만질 수 없다는 게 좀 아쉬웠지만, 골든 락을 본 것으로 만족했다. 다시 롤러코스터를 타고 산을 내려와 짜익띠요 마을로 내려왔다. 마을은 아주 작았지만 끊이지 않는 순례자들과 외국인 관광객을 상대할 식당과 상점이 즐비했다. 작지만 정감 가는 작은 식당에서 샨 누들과 미얀마 맥주를 시켜놓고 오늘 겪었던 일로 조와 이런저런 얘기를 나눴다. 스릴 넘쳤던 트럭 라이딩, 딱딱한 나무공으로 족구를 하던 남자들, 돌바닥에 펼쳐놓은 빨래, 교복 입은 아이들과 귀여운 꼬마들. 돌이켜보면 짜익띠요는 골든 락보다는 그렇게 소소한 장면들이 기억에 남는다. 작은 마을의 친절한 사람들, 또 그 사람들이 사는 모습. 게다가 짜익띠요의 숙소는 미얀마 전통가옥풍의 예쁜 건물이어서, 가만히 앉아 있기만 해도 내가 그 마을 사람이 된듯한 느낌이 들게 만들었다. 골든 락 때문이 아니어도 꼭 한번 들러볼 만한 동네다, 짜익띠요는... 





바고의 코피오


 바고는 어쩔 수 없이 들린 도시였다. 짜익띠요에서 껄러로 가야 했는데 한 번에 가는 교통편이 없어서 바고에서 버스를 갈아타야 했다. 짜익띠요에서 출발한 낡은 버스는 우리를 길거리 한가운데 내려줬다. 여기가 바고란다. 황당했다 적어도 터미널에 내려줄 줄 알았는데, 길거리 선술집 앞에 우리를 내려주다니. 순간 사기를 당한 게 아닐까 잠깐 생각했다. 그때 론지를 입은 한 남자가 우리에게 말을 걸어왔다.

'너네 어디 가니?'

'XX 호텔로 가.'

'거긴 왜?'

'아- 내일 껄러로 가는 버스를 타야 하거든. 그래서 하루 묵어야 해'

'껄러로 가는 버스는 오늘 저녁에 있는데? 왜 굳이 하루 묵으려고 해?! 여긴 반나절이면 돌아보는 도시야. 게다가 너네가 가려는 숙소는 도로변이라 무지 시끄러워. 그리고 내일 체크아웃하면 뭐할 건데? 아무것도 볼 것 없는 도시에서? 버스는 무조건 저녁에 한대라고! 그냥 여기서 조금 기다렸다가 오늘 저녁 버스 타고 가'

 반박의 여지가 없었다. 아무것도 할 것 없는 도시에서 내일 저녁까지, 무려 30시간을 꼼짝없이 낭비하게 생긴 것이다.

 그제야 자기는 버스 티켓 판매원이라며 활짝 웃는다. 아차 싶었지만 이 아저씨의 상술은 남달랐다. 근거 없는 꼬드김이 아니었다. 활짝 웃는 모습에도 여유가 넘쳤다. 결국 우리는 저녁 버스 티켓을 샀고 그 선술집에 눌러앉아 여유롭게 미얀마 맥주를 주문했다. 자연스럽게 아저씨도 우리 옆에 앉는다. 소개가 오간다. 아저씨 이름은 코피오. 버스 티켓 판매원이고, 이 선술집이 자기 사무실이란다. 서빙이나 테이블을 닦아주는 대신 여기서 버스 티켓을 팔 수 있게 해 준다고... 맥주를 두병째 마셔갈때즘엔 선술집 아저씨들 모두가 우리를 보고 있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작은 마을에 이방인 부부가 떨어진 것이다. 또 코피오는 이 작은 마을에서 영어를 할 줄 아는 유일한 난 놈이었다. 난 놈과 이방인들의 대화, 마을 남자들에겐 재미있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코피오는 오래전 아일랜드 여자와 사랑에 빠졌다. 결혼을 했고 아일랜드로 가서 살기 시작했다. 아들도 태어났다. 그렇지만 이방인 코피오는 아일랜드에서 일자리를 구할 수가 없었다. 집에만 갇혀있는 삶은 그를 지치게 했고 코피오는 다시 미얀마의 고향마을로 돌아와서 버스 티켓 판매원을 하고 있다. 마음이 이상했다. 코피오는 지금 행복할까?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코피오가, 너네 시간 너무 많이 남았다. 바고 투어 한번 할래? 오토바이로 하는 거고 어쩌고.. 한다. '아니 괜찮아'라고 했는데, 옆에서 우리를 뚫어지게 쳐다보던 아저씨를 가리키며 '이 친구 도와주는 셈 치고 한번 해봐- 너네가 너무 싫으면 어쩔 수 없는데 얘가 너무 간절해서 나도 눈치가 좀 보이네'라며 허허 웃는다. 투어 가격도 저렴하고, 그래 이 선술집에서만 6시간은 너무 지겹겠다 싶어서 일일 투어를 다녀왔다.

 바고의 유명한 수도원도 가고, 조가 노래를 부르던 두리안도 한통 사 먹고, 발바닥이 큰 와불상도 보고, 엄청 큰 뱀을 모시는 사원에도 가보고, 우리 가이드 아저씨의 집에도 들렀다. 집이라고 부르기가 무색한 판잣집에 어머니, 아내, 갓난쟁이 딸이 있었다. 많이 아픈데 병원을 못 데리고 가고 있다며 딸을 보여준다. 너무 작은 아기인데 따끈따끈 열이 나고 퉁퉁 부어있었다. 정말 아파 보여서 마음이 아팠다. '너네가 버스 타고 가는 것만 아니면 우리 집에서 저녁 먹고 가면 좋은데...'라고 하신다. 헷갈린다. 이 아저씨는 돈을 바라고 우리에게 집과 가족을 보여준 걸까, 아니면 오늘의 땟거리라도 해결할 수 있게 해 준 우리가 고마웠던 것일까... 코피오가 왜 이 친구 도와주는 셈 치고 투어를 하라고 했는지 알 것 같았다.

 버스시간까지는 한 시간이 더 남았다. 우리는 코피오와 더 많은 얘기를 나누었고, 주변 아저씨들도 말을 걸어왔다. '미얀마 맥주 맛있지?' '미얀마 위스키는 먹어봤니?' '내가 한잔 줄게 한번 먹어봐-' '축구는 좋아하니?'

겉핥기 여행자가 조금은 바고 사람들 속으로 들어간듯했다. 마지막으로 코피오에게 말했다. 덕분에 시간 낭비하지 않고 껄러로 갈 수 있게 되었다고, 고맙다고... '그런데 어쩜 그렇게 말을 설득력 있게 잘하니' 했더니, '내가 좀 그래. 나한테 걸린 이상 너네는 오늘 버스를 탈 수밖에 없었을 거야' 라며 하얗게 웃는다. 역시나 밉지가 않다. 코피오는 아직도 바고의 선술집에서 버스티켓을 팔고 있을까. 별거없는 도시 바고는 코피오 때문에 잊을수 없는 도시가 되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라오스 Laos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