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 PD의 일상 누리기] 아이스크림에듀 뉴스룸 연재
지난 7월 21일. 원더걸스 출신 선미의 ‘워터밤 2018’ 공연 패션을 두고 설왕설래가 있었다. 그녀는 무대의상으로 유명 브랜드 G사 수영복과 쇼트 데님팬츠를 매치했는데, 이 흰색 수영복이 퍼포먼스 중 물에 젖자 훤히 비쳤던 것. 인터넷 기사 등의 댓글에는 수영복이 제대로 기능을 못 한다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많았는데. 놀랍게도 G사에서는 이 제품을 출시하면서 ‘이 수영복을 입고 수영하지 않기를 권장한다’고 밝혔다.
이 수영복은 수영할 때 입지 마시오: 브리콜라주 패션
아니, 수영할 때 수영복을 입지 말라니. 실제로도 이 수영복은 액티비티 의류나 수영복이 아닌 일반의류로 분류되어 있다. 뚱딴지 같은 일이 아닐 수 없다. 브리콜라주(재전유, bricolage)의 개념을 들어보면 조금 수긍이 갈 텐데, 재전유란 한 기호가 놓여 있는 맥락을 변경함으로써 그 기호를 다른 기호로 작용하게 하거나 혹은 다른 의미를 갖게 하는 행위를 수반하는 것을 가리킨다. 쉽게 말하면 수영복을 일상복으로 활용하면서 기능성의 ‘활용도’가 퇴색되는 과정에서 전유가 일어나고, 더 나아가 수영복을 패션으로 선택함으로써 일반의류로 제작해 ‘수영복 자체의 의미’는 없어지고 수영복의 야외활동의 이미지만 취해 액티비티한 룩을 완성하는 것이 재전유의 과정이다. 선미의 무대의상은 이런 브리콜라주를 패션에 잘 접목한 경우였던 것이다.
분위기를 만들어 주는 여름 패션 아이템 TOP 3
브리콜라주 패션이 조금 생소할 수는 있지만, 선미의 경우처럼 분위기로 패션 아이템을 활용하는 경우는 의외로 많다. 가까운 예로는 ‘조던화’가 있다. 나이키에서 내놓은 이 신발은 초창기에는 농구화로 출시되었지만, 지금은 다양한 디자인과 희소성으로 패션 피플들의 잇-아이템이자 각광받는 수집품이 되었다. 그렇다면 이 브리콜라주 패션, 나도 해볼 수 없을까? 어느새 8월, 여름이 뜨겁게 절정으로 치닫는 지금. 분위기로 이 여름의 피날레를 만끽할 수 있는 패션템 TOP 3를 소개한다.
첫 번째로 추천할 아이템은 로브(robe)다. 본래 로브는 무릎 아래까지 오는 기장의 느슨한 가운으로 주로 실내에서 입는 옷이었다. 최근에는 휴양지에서 입는 비치웨어 가운으로 활용 범위가 확대되었는데, 편안하면서도 자연스러운 스타일을 추구하는 패션 트렌드와 맞물려 데일리 룩으로 일상에서도 인기가 높아지고 있다. 휴양지에서 모티브를 얻었기 때문에 일상복으로 입었을 때는 자유로운 라이프 스타일을 표방할 수 있다.
두 번째 추천 아이템은 에스빠드류(espadrille)다. 에스빠드류는 프랑스어로, 원래는 해변에서 신는 일종의 짚신이다. 끈을 발목에 감고 신는 캔버스화로 생각하면 쉬운데, 밑창은 삼베를 엮어서 만들고 등 부분은 천으로 만들어 가볍고 수공예적인 느낌을 준다. 원래는 프랑스 남부 해변에서 뜨겁게 달궈진 모래 위를 편하게 걷기 위한 신발로 사용되었으나 현대에는 리조트용이나 스포츠용으로 사용하고 있다. 여름에 리넨 원피스 같은 옷과 매치하면 이국적인 느낌을 줘 여름 데일리룩 포인트로 사용하면 좋다.
마지막으로 추천하고 싶은 것은 왕골로 만든 패션 소품류다. 왕골은 열대지방에서 자라는 볏과의 식물로, 섬유가 귀했던 시절 열대지방에서 모자나 가방을 만드는 데 사용했다. 우리나라에서 화문석을 만들 때 쓰는 소재가 바로 왕골이다. 밀짚과 라탄, 왕골 모두 조금씩은 그 소재가 밀의 줄기, 왕골, 라탄 나무로 다르지만, 세간에서는 그런 1차 가공한 성긴 나무 섬유를 쓴다 싶으면 ‘왕골’로 뭉뚱그려 통칭하는 경향이 있다. 옛날에야 면직물이나 가죽이 귀해 가방이나 모자를 자연에서 얻을 수밖에 없었지만, 과학이 발달해 좋은 섬유와 합피를 얻을 수 있는 요즘에는 실용적인 측면에서는 얼기설기하고 속이 훤히 비치기도 하는 왕골 소품을 쓸 이유가 하등 없다. 그런데도 이런 아이템들이 여전히 살아남은 것은 아마 이 왕골 모자나 가방이 주는 특유의 자연적이고 청아한 분위기 때문일 것이다.
분위기를 사랑하는 마음 하나면 된다
8월 초, 제주도로 일주일간의 휴가를 다녀왔는데 나도 이런 분위기 아이템 덕을 톡톡히 봤다. 서핑 스쿨에서 만난 친구들과 밤마실을 나가는데, 도저히 높은 구두는 못 신겠더라. 흰색 미니 점프수트에 슬리퍼를 신었더니 세련된 옷에 비해 신발이 영 언발란스한 느낌이 났다. 그래도 구두를 신자니 한숨이 폭 나왔다. 그런데 거기에 왕골백을 매치하니, 마법처럼 나름 사랑스럽고 활동적인 느낌의 룩으로 바뀌었다. 그날 밤. 중문해변 근처를 헤매는데 멋진 이성 셋이 말을 걸어 왔다. 점잖고 세련된 외모와는 달리 수줍은 미소를 가진 귀여운 신사에게 스타일 칭찬까지 받았다. 아마도 이런 대화가 오가는 데에는 왕골백이 자아낸 분위기도 한몫하지 않았을까?
우리는 분위기를 사랑한다. 그래, 그 마음이면 된다. 브리콜라주 패션이라고 거창하게 생각하지 말고, 한번 그런 느낌을 충분히 누려 보자. 혹시 또 알까, 그 분위기가 8월 제주의 밤처럼 우리를 좋은 곳으로 데려갈지.
* 이 글의 제목은 오은 시인의 시집 <우리는 분위기를 사랑해>(문학동네, 2013)에서 빌려 왔다.
최연우 PD | yorewri@gmail.com
홈쇼핑 패션PD. 홈&쇼핑에서 옷, 가방, 보석 등 여자들이 좋아하는 온갖 것을 팔고 있다. 주변에선 '쏘다니고 쇼핑 좋아하는 너에게 천직'이라 하지만, 본인은 '작가'라는 조금은 느슨한 정체성을 더 좋아한다. 누가 시키지도 않는데 독립잡지와 SNS 플랫폼에 구태여 자유기고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