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 PD의 일상 누리기] 아이스크림에듀 뉴스룸 연재
아직 싱글인 덕분에(혹은 탓에) 아이가 있는 친구를 만날 때면 종종 ‘출장 방문’(?)을 가는데, 인천 구월동에 사는 친구 왕눈이의 집에 갈 때면 달라진 살림살이로 아이의 성장 단계를 실감하곤 한다. 결혼 선물로 받은 최신 스마트 오븐에서 갓 구워낸 스콘을 크림 가득한 캡슐커피와 함께 아일랜드 식탁에 내어 주던 그녀의 신혼집은, 이제 조카 지우의 짐이 점령했다. 갓난쟁이일 때는 오뚝이나 모빌, 아이가 점점 자라면서는 블록이나 소리 나는 장난감 등등.
출처: 비버리힐즈 폴로클럽 18SS 썸머시즌 니트 슬립온
여름-리넨, 겨울-니트 공식 이제는 옛말
최근에는 낱말카드가 가득한데, 그중 하나는 홈쇼핑에서도 인기리에 팔리는 교구세트의 구성품으로, 내가 직원가로 대리 구매해 준 것이었다. 그제야 유심히 살펴본 낱말카드는 생각보다 체계적이었다. 개월 수에 따라 내용이 조금씩 달랐는데, 호랑이나 토끼 그림 밑에 ‘호랑이’, ‘토끼’라는 글씨가 적힌 것이 있는가 하면, ‘길어요-기린’, ‘빨개요-사과’처럼 연상법으로 짝을 맞추게 만들어진 것도 있었다. 그 낱말카드를 본 나는 ‘목이 짧은 기린도 있을 수 있는데… 아탈란타의 뜀박질을 멈추게 했던 사과는 황금색이었고… 보편이 나쁜 것은 아니지만 정답도 아닌데, 우리 아이들이 이렇게 어릴 때부터 소위 공식에 익숙해지는 것이 아닌가’ 싶어서 잠시 상념에 젖기도 했다.
사실 패션에도 이런 공식에서 자유롭지 못한 부분이 많다. 간혹 내 직업이 패션피디라는 것을 알게 되면 ‘나이에 맞는’, ‘여름에 맞는’ 옷을 추천해 달라는 사람이 있다. 그럼 나는 “좋아하는 옷을 입으라”고 말한다. 내 개성을 표현하는 패션이야말로 정답이 없는 것일진대, 거기서도 ‘정답’을 찾으려는 모습은 좀 슬프기도 하다. 오늘날에는 소재도 다양해지고, 예전과 달리 자체 디자인을 내놓는 소규모 의류사업자도 급격히 늘어나 얼마든지 원하는 옷을 사계절 내내 입을 수 있다. 심지어는 뜨개 소재까지도 말이다!
물론, ‘여름-리넨’, ‘겨울-니트’처럼 유독 계절감이 강한 ‘정답’ 같은 옷감들이 있다. 하지만 사실 니트(Knit)는 뜨거나 짜서 만든 옷을 총칭하는 말이다. 니트에 쓰이는 소재가 그 짜임을 결정하므로, 여름에도 소재만 잘 선택하면 니트 특유의 캐주얼하고 사랑스러운 이미지를 충분히 살릴 수 있다. 실제로 면이나, 리넨, 혹은 레이온을 혼방한 니트 원단은 시원하고 가벼워 카디건뿐 아니라 뷔스티에, 티블라우스 등에도 널리 쓰인다.
출처: 비버리힐즈 폴로클럽 18SS 썸머시즌 니트 슬립온
‘그래도 여름에 니트는 좀…’ 부담스럽다면 포인트 아이템으로
더운 날씨에도 니트 소재를 즐길 수 있는 것은 반가운 일이지만, ‘아무리 얇아도 잘 안 입게 되던데?’라는 의견 역시 있을 수 있다. 편직물은 일종의 ‘그물’이다. S/S시즌 원단은 두꺼운 원사를 쓸 수 없고 얇게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비침이 있거나 속살이 사이사이로 보이는 것에 부담을 느끼는 이들도 많다. 그렇다면, 성긴 니트 원단을 옷이 아니라 포인트 아이템으로 선택해 보자.
니트 원단은 공기가 잘 통해 여름철 땀으로 쉽게 습해지는 신발에 제격이다. 니트신발은 신축성도 뛰어나 착용감도 편안하다. 또한 니트는 특유의 수예(手藝)적인 미감이 있어, 모자나 가방으로 활용했을 때 독특한 목가적 감성을 줄 수 있다.
우븐(Woven) 역시 포인트 아이템으로 주목받고 있다. 가방과 잡화류로 유명한 명품 브랜드 보테가 베네타(Bottega Veneta)는 절제되면서도 편안한 아이덴티티를 유지하는데, 거기에는 시그니처 원단으로 우븐 소재를 채택한 공이 크다. 성긴 씨줄과 날줄의 직조감이 그대로 눈에 보이는 원단은 수공예품같이 왠지 모를 안정감과 포근함까지 준다.
‘우븐이나 니트, 여름에 입어도 되나?’라는 생각이 여전히 든다면, 먼저 신발이나 가방으로 시도해 보자. 당신의 패션 세계가 분명, 한층 풍성해질 것이다.
최연우 PD | yorewri@gmail.com
홈쇼핑 패션PD. 홈&쇼핑에서 옷, 가방, 보석 등 여자들이 좋아하는 온갖 것을 팔고 있다. 주변에선 '쏘다니고 쇼핑 좋아하는 너에게 천직'이라 하지만, 본인은 '작가'라는 조금은 느슨한 정체성을 더 좋아한다. 누가 시키지도 않는데 독립잡지와 SNS 플랫폼에 구태여 자유기고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