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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범수 Jun 25. 2022

그래서 뭘 증명하려는 건데?

<탑건: 매버릭>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 상당수의 영화 업계 관계자들과 애호가들은 극장 영화 시대의 종결을 이야기했다. 물론 나 또한 마찬가지였다. 2년 반이라는 기간 동안 우리는 집에서 OTT 플랫폼으로 영화를 소비하는 데에 너무 익숙해졌다. OTT 플랫폼에는 양질의 영화들이 꾸준히 공급되었고, 극장에서 상영하는 영화들은 스트리밍 서비스로 동시 공개하는 전략을 택했다. 극장에서 영화를 관람하는 데에 필요한 비용은 몇 년 사이에 급격히 치솟았다. 이제는 영화 티켓 한 장 가격이 넷플릭스 한 달 결제 금액과 별반 차이가 없는 수준에까지 이르렀다. 영화를 감상하는 것을 넘어서 문화를 향유하고 우리의 감정을 공유하던 극장이라는 공간은, 어느새 인터넷 망 속의 데이터 조각으로 치환되고 있었다.


 그럼에도 극장의 필요성을 이야기하던 사람들이 있었다. 단순히 영화를 관람하는 공간이 아니라, 극장이라는 플랫폼이 제공할 수 있는 가치에 대해 항변하던 사람들이 있었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극심하던 시기에도 막대한 손실을 감수하며 <테넷>의 극장 개봉을 추진했던 크리스토퍼 놀란이 그랬고, 영화 제작사와 마찰을 빚으면서까지 <듄>의 스트리밍 동시 공개를 반대하던 드니 빌뇌브가 그랬다(안타깝게도 <듄>은 스트리밍 서비스로 동시 공개되었다). 누군가는 이들을 보고 시대의 흐름에 뒤떨어지는 꼰대라며 이야기했다.


 톰 크루즈와 이 영화의 관계자들 또한 그 '영화 보수주의자' 중의 일부였다. <탑건: 매버릭>은 2018년도부터 촬영되었으며 2020년도 성수기에 개봉 예정이었던 블록버스터 영화였다. 그 해는 코로나 바이러스가 극심했던 시기로, 극장 개봉이 불가능에 가까웠다( <테넷>의 극장 개봉 강행은 정말 무모한 결정이었다고 할 수 있다). 개봉일은 지속적으로 연기에 연기를 거듭했으며, 이런 대자본 블록버스터 영화들이 으레 그렇듯 연기될 때마다 마케팅 비용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스트리밍 플랫폼으로 공개할 생각이 없냐는 물음에 톰 크루즈는 "그런 일은 없습니다"라며 일축했다. 비슷하게 연기를 계속하던 <007: 노 타임 투 다이>는 이러한 비용적인 압박을 이기지 못하고 작년 10월 극장 개봉을 택하기도 했지만, <탑건: 매버릭>은 뚝심 있게 모든 관객들이 극장에서 영화를 즐길 수 있는 최적의 시기를 기다렸다.

 나는 이 영화의 전작인 토니 스콧 감독의 <탑건>을 좋아하지 않는다. 감독의 필모그래피에서도 기껏 해봐야 평작쯤이나 되려나. 영화적인 완성도가 빼어나다고 말하는 사람은 찾기가 힘들다. 그냥 재밌고, 톰 크루즈가 멋있고, 비행기 액션이 화려하고, 남자들의 로망을 총집합시킨 그런 영화. 게다가 이건 내 세대의 영화가 아니다. 이건 나의 부모님이 갓 만나기 시작하셨던 시기에, 데이트하면서 관람했던 그런 영화다. 그 세대의 추억이자 전유물이다. 내가 기억하는 톰 크루즈는 <탑건>이 아니라 <미션 임파서블> 시리즈에서의 톰 크루즈다. 얼마 전 <탑건>을 다시 감상했는데, 유치하고 촌스럽기 그지없었다. 당시에는 획기적인 영화라고 할 수 있겠지만, 현란한 최신 영상매체에 익숙해진 나의 세대에게는 그저 그런 영화일 뿐.


 무려 36년이라는 시간이 지나서, 속편이 나왔다. <탑건> 당시에 풋풋한 20대였던 톰 크루즈는 지금 환갑에 근접한 나이가 되었다. 왜 이제 와서야 속편이 필요했을까. 만들 거면 진작에 만들 수 있었을 거다. 최근의 문화계 트렌드처럼 과거의 향수에 기대 팬들의 추억으로 장사하는 그저 그런 후속작, 또는 리부트 일뿐인 것 아닐까. 과거 팬들에게는 설렘 반 걱정 반이었을 것이며, 전편에 아무런 감흥이 없는 나의 세대에게는 별달리 관심조차 가지 않는 영화였을 거다. 그래서 이 영화는 '왜?'라는 물음에 대한 답을 줘야 했다. 대체 우리에게 뭘 보여주려는 것인지 증명해야 했다.

 <탑건: 매버릭>은 참 올드하다. 오래된 전작의 정취에 그대로 의지하고 있다. 영화의 오프닝 시퀀스는 전작의 오프닝 시퀀스를 숏의 구도 하나하나까지 그대로 빼다 박아 재현하는 데에 그친다. 차이점이라면, 전작에서의 그 현란한 오프닝 시퀀스는 영화의 본편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지며 영화가 시작하지만 <탑건: 매버릭>에서의 '재현된' 오프닝 시퀀스는 본편과의 연속성이 끊어진다는 점일까. 이런 식으로 자가 복제할 거면 이 영화가 대체 왜 필요한 걸까. 이 영화 역시 최근 범람하고 있는 수많은 고전 시리즈들의 후속작들처럼 과거의 유산에 기대는 안일함의 산물일 뿐일까.


 이야기의 플롯은 참으로 진부하기 그지없다.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에 익숙하고 전작을 이미 관람한 관객들이라면 초반 10분을 보고 나면 이후의 전개가 그대로 예측이 되며, 결말까지 한치도 벗어나지 않는다. 하지만 오히려 진부하기 때문에 깔끔하고, 그만큼 영화 본연의 내러티브에 충실하다. 그 안에 담긴 상투적인 이야기들-유사 부자관계, 전편에서 계속되는 트라우마-이 이어진다. 영화의 중심을 잡아주는 기둥은 이미 과거의 영광이 되어버린, 단순한 노땅으로 전락해버린 구 세대의 사람이 겪게 되는 갈등과 고뇌다. <탑건>에서 전설적인 인물이 되었던 주인공 매버릭은, 전투기 파일럿조차 무인 로봇으로 대체되는 2020년대에 와서는 쓸데없이 사고만 치는 골칫덩어리가 된 지 오래다. 상관은 그에게 "언젠가 파일럿은 사라질 것"이라고 말한다. 매버릭 또한 이를 부정하지 않는다. "그럴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오늘은 아닙니다"라며 웃어넘길 따름이다. 이제는 나이가 들어버린 매버릭. 더 이상 쓸모 없어진 구형 전투기. AI로 대체되어가는 파일럿. 그러니까 이 영화는 '언젠가 사라질지 모르는 것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영화의 중반부, 불가능해 보이는 작전에 모두가 회의감과 의구심을 가질 때, 매버릭은 보란 듯이 시범을 보여주며 자신의 역량을 증명해낸다. 영화를 넘어서, 이건 지금까지 수많은 영화에서 끊임없이 자신의 필요성을 증명해왔던 톰 크루즈가, 그럼에도 보여줄 것이 아직 더 남았다고 이야기하는 것과 같다. 더 나아가서, 영화예술(cinema)의 필요성과 극장이라는 공간의 필요성을 증명해내는 것과 같다. 그럼에도 영화는 계속될 거라고. 우리는 앞으로도 계속 필름으로 기록하고 영화로써 체험할 거라고. 극장에서 갖게 되는 우리의 경험은 계속될 거라고.


 영화의 액션 씬은 배우이자 제작자인 톰 크루즈의 신념대로, 절대다수의 씬들이 CG가 아닌 실제 액션 장면으로 촬영되었다. 할리우드 시스템 속에서, 대다수의 액션들은 스턴트를 사용하고 CG로 후처리 작업하는 것이 당연시되며 훨씬 더 경제적이고 합리적인 대안이 된 지 오래다. <스타워즈> 오리지널 트릴로지의 조잡한 모형으로 구현되는 우주 액션보다 시퀄 트릴로지에서의 CG로 제작된 현란한 액션 씬들이 관객들에게 더 인상 깊게 다가오는 것은 두말할 것 없을 테다. 인물의 액션 또한 전문 스턴트 배우가 촬영하는 것이 훨씬 더 박진감 넘치고, 안전하며, 또한 효율적인 방안이다. 그런 면에서 <미션 임파서블> 시리즈에서 수많은 위험한 액션을 직접 소화해내는 톰 크루즈의 신념은 어찌 보면 고리타분해 보이기까지 하다.


 하지만 <탑건: 매버릭> 이런 고리타분함의 필요성에 대해, 매력에 대해 항변하는 영화다. 배우들이 직접 연기하는 데에서 나오는 현장감과 박진감을 관객에게 전달하는 데에 노력해 마지않는 영화다. '카메라로 순간을 포착하고' '순간의 역동성과 감정을 전달하는' 영화예술, 영상매체의 본질에 대해 고찰하는 영화다. '그럼에도 이런 영화가, 극장이라는 공간이 필요하지 않냐'라고 현혹하는 영화다. 제아무리 기술이 발달하고 인간이 기술로 대체되더라도, 그럼에도  세계를 구성하는  인간이라며, 각자가 자기만의 중력 가속도를 버티며 살아가고 있는 우리의 삶에 대해 예찬하는 영화다.

 영화의 종반부,  극장과, 시네마와, 인간의 위대함에 대해 증명해내는 듯한 시퀀스가 이어지고 전투는 마무리된다. 영화 속 내내 갈등하고 감정적인 트라우마를 극복하지 못했던 매버릭과 루스터는 전투를 경험하며 서로를 이해하게 되었다. 매버릭은 "날 구해줘서 고맙다"라고 감사를 표하고, 루스터는 "아버지라면 그렇게 했을 테니까요"라며 응한다. 그들의 대사 말마따나, 나는 <탑건: 매버릭>에 감사와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어쩌면 이 예술과 공간의 종말을 예상했던 우리를, 그 의심 속에서 구해줘서 고맙다고. 같은 맥락에서, 루스터의 대사는 130년 조차 되지 않는 짧은 영화예술의 역사 동안, 지금까지 영화를 만들어왔던 수많은 예술가들에 대한 헌사가 되겠다. 그들이라면 이렇게 했을 거라고 말이다.


 영화를 같이 관람한 친구와 올라가는 엔딩 크레디트를 보며 감흥에 젖어 있었다. 정말 오랜만에 흥분으로 온몸이 전율하고 자리에서 일어서지 못하는 경험을 하며, 영화 초반의 대사를 곱씹었다. "언젠가는 파일럿은 사라질 거야" "그럴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오늘은 아닙니다" 맞다. 언젠가 시네마는 사라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이런 한줄평을 남겨야지, 생각하고 나름 뿌듯해하며 극장을 나섰다. 집에 와서 보니 웬걸, 씨네21의 송경원 평론가가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정확히 똑같은 감상을 남긴 것이 아닌가? 사람들 생각하는 건 다 거기서 거기인가 보다.




 이미 투고한 글에 덧붙이는 것을 좋아하는 편이 아니지만, 다음 포털 메인에 올라가고 글의 맥락에서 한참 비껴나간 많은 비판 댓글들이 달렸길래 부연 설명을 덧붙인다. 이 글은 영화를 비판하고자 쓰인 글이 아니다. 오히려 영화가 다분히 인상적이었기에, 큰 감명을 받았기에 쓴 글이다. 당연하게도 오리지널 <탑건>을 비판하려는 의도 또한 아니다. 단지 그 영화가 지금 세대의 감성에서 봤을 때 별 장점을 느끼기 힘들다는 이야기일 뿐이다. 그리고 당시의 감성을 이어나가며, 오히려 더 세련되고 깔끔하게 재창조한 이번 영화가 그만큼 훌륭하고, 모두가 사라질 것이라 예상했던 것들-극장, 영화(1986년작 <탑건> 같은) 등-이 계속될 것이라고 말하는 것만 같아 감격스러웠다는 글이다.

 제목이 "그래서 뭘 증명하려는 건데?"인 연유는, 이 영화를 감상하기 전 머릿속에 떠오른 물음이었기 때문이다. <탑건>의 후속작이 2020년대에 와서 다시 만들어져야 하는 이유를 모르겠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본문은 영화를 보면서 찾아낸 그 물음의 답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그래서 본 글의 제목은 의문형이었어야 하며, 그 질문의 답은 본문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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