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묘사를 통해서 명사와 동사를 꾸미는 방법에 대해 살펴보았다. 왜 배운 것일까? 소설은 누군가가 읽는 것이다. 읽는 것이라면 당연히 문장으로 되어 있고, 그 문장은 우리들의 모국어로 되어있다. 그 문장이란 주어와 술어를 주축으로 해서 주로 명사와 동/형용사를 사용할 것이며, 기타 다른 품사들의 적절한 활용을 곁들일 것이다. 즉, 우리는 명사와 동사를 올바르게 사용하는 방법, 조금은 예쁘게 쓰는 방법에 대해서 배운 것이니까, 이제는 문장 자체에 대해 배울 때가 온 것이다.
당신이 쓰는 문장은 당신이 특정한 장면을 상상하며 썼어야만 한다. 당신 이야기의 어떠한 장면이 머릿속에 그려져 있고, 그것을 말로 옮겨지는 과정이 있어야만 한다. 소설이라고 해서 소설 같은 문체로 대충 적어놓는다고 해서 문학이 되는 것이 아니다. 장면을 상상해서 캐릭터와 물건들을 움직여야 한다. 그렇기에 우리는 묘사에 대해서 배운 것이다.
여기서, 그것들을 모두 뭉뚱그려 '명사'와 '동사'라고 하자. 우리가 여태 달려왔던 모든 묘사의 기술들을 양 갈래로 나누어서 두 단어로 응축시키는 것이다. 이제는 기본기가 되었으리라 믿자. 자기 자신을 믿는 것이다. 우리는 올바른 명사와 올바른 동사를 쓸 수 있다! 그렇게 믿고 단원을 나아가 보자.
기본적으로 문장은 명사와 동/형용사(형용사는 이제 빼자. 그냥 동사라고 하겠다.)를 쓴다고 여러 차례 말하고 있는데, 그것을 바꿔서 말하면 '이미지'와 '변화'로 되어있다고 말할 수 있겠다. 즉, 우리가 소설에 쓰는 모든 명사는 이미지를 가졌고, 모든 동사는 변화를 가졌다. 다시 바꿔 말하면, 모든 명사는 카메라에 그 사물을 비추는 것이고, 모든 변화란 그것의 상태를 말하거나 그것이 뭘 할지 말해주는 도구다.
철수가 학교에 간다.
당신의 머릿속 카메라엔 누가 있는가. 철수다. 어찌 생겼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철수라는 주체가 당신의 언어 본능에 불쑥 나타나서는 책가방을 매고 있을지 모를 일이다. 그가 뭘 하고 있는가? 학교에 도착해서 가방을 풀고 있나? 아니, 그냥 배경 같은 것도 없는 새하얀 바닥 위를 걷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기껏 해야 아스팔트나 보도블록 위를 발랄하게 걷고 있을 것이다.
이것이 명사와 동사가 하는 일이다. 주어에 들어있기만 해도 카메라 중앙에 그 대상을 놓아버린다. 술어에 있는 것만으로도 당신의 머릿속에 한동안 그 주체를 운동시킨다. 우리는 이로써 한 가지를 알 수가 있다. 명사를 쓰면 독자의 머릿속에는 그 이미지가 들어갈 것이고, 동사를 쓰면 뭐든 간에 변화시킬 것이다. 꽤 중요한 사실 아닌가?
그렇다면 이제 한 가지 재미있는 장난을 배워보자. 우리가 국어나 영어 시간에 곧이곧대로 배웠던 '도치'라는 말 기억나는가? 문장에 대해서 배울 때 동사가 앞으로 가고 명사가 뒤로 가고 하면서 의문사가 된다거나 뉘앙스를 달리 한다든가 하는 것들 말이다. 도치라는 것은 다름이 아니라 문장의 순서를 바꿔서 의도를 바꾸는 것을 말한다.
철수가 학교에 간다.
학교에 간다. 철수가.
간다. 학교에. 철수가.
이런 것도 도치에 포함된다.
My birthday is next Monday.
Next Monday is my birthday.
is my birthday next monday?
영어도 도치가 있다.
우리는 이런 것들이 왜 있는지 잘 몰랐다. 영어는 문장의 종류를 바꿔주니까 이해하고 넘어갔었지만, 우리말은 왜 도치를 하는지 모르는 경우가 많다. 그저 멋져 보인다거나 있어 보이려는 수작질로 쓰는 경우가 많다. 아니면 내레이션을 상상하면서 저 혼자 비장한 문장을 쓰려고 할 때 많이 나타난다.
우리는 영미 문학을 하려는 게 아니니까 영어는 집어치우고, 우리말에 도치가 문학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 알아야 한다. 정확히는 도치가 아니다.
뭐가 앞에 있느냐다.
앞서 우리는 명사와 동사가 무얼 하는지를 배웠다. 카메라에 비유해서 어떤 효과를 가져왔던가. 명사는 이미지, 동사는 변화. 그것 중에 뭘 먼저 보여주고 싶은가? 그것이 도치, 문장의 핵심이다.
세상 모든 문장은 앞에서부터 뒤로 갈수록 집중도가 낮아진다. 문장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읽는 사람은 피로해진다. 경험상 조사를 제외해서 단어 15개 정도가 넘어갈 때쯤 집중도가 가장 낮아지는 것 같다. 길고 긴 문장에 들어간 수많은 단어들이 수식어처럼 보이기 쉽다는 말이다.
어느 화창한 날씨 은행나무에 있던 벌레가 똥을 쌌던 곳의 전방 15미터 앞에 있는 은행에 있던 경호원 J가 잠들었을 무렵이었다.
이 돼먹지 못한 문장을 예로 들 수 있겠다. 우리는 명사를 주야장천 이어 붙여서 카메라에 순서대로 명사들을 비춰줬을 것이라 생각하고는 이런 문장을 뱉어낸다. 애니메이션 <심슨네 가족들>의 오프닝 장면처럼 말이다. 그러나 독자가 저것을 온전하게 받아들일까? 불가능하다. 명사가 너무 옹기종기 붙어있는데, 서로 연관이 없는 것들끼리만 잘 뭉쳐놨기 때문에 상상하기가 여간 힘든 게 아니다. 게다가 어쨌든 핵심은 "~어느 어느 무렵이다."라는 시공간 제시다.
저 문장은 은행에 J 씨가 근무하고 있다는 정보와, 그 앞에 은행나무가 있다는 것. 그 은행나무에는 벌레가 똥을 싸놨다는 것. 마침 그날이 화창한 날씨라는 것. 이야기가 J 씨가 잠들었을 무렵부터 시작한다는 정보를 담고 있다. 한 문장에 과하게 정보가 많다. 그렇다면 상상하기는 어렵지만, 상징하는 것은 많다.
이야기가 어느 무렵에 시작한다고 적고 싶다면, 그걸 제일 앞에 둬보자. 이야기가 '시작'하는 거니까. 문장의 시작과 같은 곳에 둬보자.
경호원 J가 잠들 무렵이었다.
첫 문장 같은 느낌이 조금은 살아났다. 소설 전체의 첫 문장이든 어떤 챕터의 첫 문장이든 상관없다. 마저 이어보자.
경호원 J가 잠들 무렵이었다. 어느 화창한 날씨 은행나무에 있던 벌레가 똥을 쌌던 곳의 전방 15미터 앞에 은행이 있다.
아, 뭔가 이상하다. 이상하다. 왤까. 카메라가 은행 내부에서 외부로 순식간에 이동한 다음에 내부로 점점 들어오는 실수가 일어난 것이다. 카메라를 자연스럽게 두고 싶다면 순서를 역행하거나 내부는 내부끼리만, 외부는 외부끼리만 묶어두는 게 상책이다. 그러나 역행은 강조하고자 하는 바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에 조심하자.
경호원 J가 잠들 무렵이었다. 은행 전방 15미터 앞에 있는 은행나무에 벌레가 똥을 쌌다. 화창한 날씨다.
순서를 바꿔서 적기만 했는데 썩 나쁘진 않아 보인다. 당장 실전에 쓸 수 있는 글은 아니겠지만(정말로.) 나름 분위기를 가지게 되었다. 은행에 이름을 붙여줘도 좋고, 은행나무에 구구절절 사연을 붙여줘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더 나아질 수 있는 방법은 많다.
명사를 앞에 제시하느냐, 동사를 앞에 제시하느냐에 따라 문장의 결이 달라진다. 동사를 처음부터 적어두는 것은 많이 부담스러울 수 있으니, 동사의 경우는 최대한 앞으로 당긴다고 표현하는 게 맞을 것이다.
오늘 집에 가서 먹을 오므라이스에 곁들일 소스를 사서 집에 가는 중이다. (명사가 앞)
죽었다. 나는 죽었다. (동사로 시작)
그는 눈을 떴다. (동사를 앞으로 당겼다.)
많은 사람들이 문장을 끊어라, 단문을 선호해라라고 하는 것은 아마 세 번째, '동사를 앞으로 당긴다.'라고 적어둔 예문이 가장 깔끔하게 보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위 세 문장은 역할이나 뉘앙스가 다를 뿐이지 문장 수준의 차이는 없다. 첫 번째 문장을 주로 쓴다고 해서 글을 못 쓰는 사람이 아니고, 두 번째 문장을 주로 쓴다고 해서 판타지 소설이 아니며, 세 번째 문장을 주로 쓴다고 해서 글이 깔끔한 게 아니다.
글을 잘 쓴다는 것은 필요에 따라 문장을 만들어서 쓸 수 있다는 말이다.
첫 번째의 경우 명사에 의미를 부여할 때 쓸 수 있을 것이다. 문학에서 많이 쓰이는 방법이다. 문학은 명사에 상징을 담아 의미를 전달하는 기술이 필수적이다. 수식어구가 붙는 것을 마다하지 않고 문장을 길게 만든다. 그러나 너무 거추장스럽지는 않도록 많이 잘라내는 과정을 거친다. 도저히 잘라낼 수 없을 때는 콤마를 사용해 끊어내기도 한다. 그만큼 명사에 힘을 많이 싣는 것이 중요한 장르다. 다른 장르라고 해도 명사에 힘을 실으려면 사용할 수 있다.
두 번째의 경우는 이야기의 시작으로 괜찮아 보인다. 그러나 갑작스럽게 시작되는 경향이 있다. 영화로 따지자면 눈이 번쩍 떠지는 장면이라든가, 대폭발이 일어난 다음 검은 화면에 갑자기 독백이 흐른다든가 하는 느낌으로 쓸 수 있다. '변화'만을 제시하는 것이기 때문에 앞서서 어떤 정보를 제시해놨는지, 아니면 이다음에 어떤 정보를 제시할 것인지만 신경 쓴다면 이야기를 역동적으로 꾸며나갈 수 있게 될 것이다.
세 번째의 경우 문장 성분에 필요한 단어를 최소한으로 써서 문장을 꾸며내는 것이기 때문에 한 문장에 최소한의 정보가 담겨있는 식이다. 많아야 두 개 정도를 담고 있는데, 우선은 정보가 적어서 읽기가 쉽고, 문장 구조에 맞기 때문에 안정적으로 보인다. 그러나 깔끔하다는 이유로 남발하기에는 위험한 문장이다. 위 예문처럼 '그는'이라는 말이 주야장천 반복되면 쉽게 지루해지고 집중이 약해진다.
마지막으로 재미있는 응용이 있다. 동사를 최대한 뒤로 빼는 것인데,
돈, 명예, 여자, 몸매, 얼굴, 성격, 말솜씨! 나는 그 어느 하나도 빠짐없이 완벽한 사내다.
명사를 의도적으로 배치해서 강조하는 문장이다. 이처럼 순서를 마음대로 가지고 놀고, 그 의도를 생각하면서 글을 쓴다면 못 만들 문장이 없고, 그 문장으로 못 꾸며낼 장면이 없다. 그게 이번 단원의 핵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