습작기를 거치며 나는 <롤리타>의 첫 문장에 푹 빠져 있었다. 그런 문장이 그저 말장난을 잘 쳐서, 보기 좋아서 좋은 문장이라고 평가받는 걸까? 좋은 첫 문장이라고 평가받는 것들은 <이방인>, <노인과 바다>, <날개> 등을 꼽는다. 꼭 첫 문장이 아니더라도 작가가 쓴 것이라면 좋은 문장이 작품마다 하나씩은 들어있기 마련이다. 그 절대적인 기준이 있을까? 운율감이 좋아서, 시적으로 아름다워서, 감정이 너무 잘 드러나서, 이야기 전체를 요약하기 때문에, 상징성이 뚜렷해서, 현대 사회를 잘 드러내기 때문에 같이 수많은 이유로 수많은 문장들이 "좋다"고 평가받는다. 그렇다면 좋은 문장에 '절대적'인 기준은 없을까?
서론에 이어서 이번 챕터도 아주 짧을 예정이다. 그 말은 딱히 나열할 만한 요소도, 여러 이야기를 가져올 필요도 없다는 말이다. 그러면서도 가장 중요하고, 가장 핵심적이다. 우리의 소설 쓰기는 이 말을 빼놓고는 무의미하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소설 쓰기란 당연히 '좋은 문장'을 쓰는 것이 좋고, 그 '좋은 문장'이란 당연히 '주제를 향해야 한다'는 특징이 있다. 주제의식 없이 쓴 문장은 버려도 좋다. 절대적인 기준이란 '주제'라고 말할 수 있다. 주제를 대놓고 드러내는 것도 좋다. 주제에 대해서 이야기할 물꼬를 트는 것도 좋다. 중요한 것은 수두룩하게 써 내려갈 문장들이 모두 '주제'를 위해서 있느냐는 것이다. '주제'란 어떤 것인지에 대해서도 나중에 이야기할 것이지만, 쉽게 말하자면 "주인공이 결말부에 가면서 겪은 변화"라고 치환해서 이해해도 좋다. 이야기에는 주인공이 있고, 없다 쳐도 변화하는 개인들은 있기 마련이다. 누군가가 변화하지 않으면 이야기는 그저 누군가의 일기 중 하루에 불과하다. 그것도 별로 재미있지도 않은 내용일 것이다.
결국, 좋은 문장은 꼭 말장난을 치거나 치명적일 필요는 없다. 작가가 이야기를 이끌어나가는 데 필요한 말들이 곧 좋은 문장이다. 독자들이 '주제'를 느끼는 데1) 티끌만치도 영향을 주지 않는 문장은 어떤 장치가 있든 간에 쓸모가 없다.
가령 우리가 중등교육을 이수하면서 배웠던 과거의 소설들에서도 그 특징을 찾을 수 있다.2) 우리가 밑줄을 긋고, 어떤 자연물이 참담한 강점기의 현실, 참담한 한국전쟁의 현실을 반영한다고 빨간펜으로 필기해뒀던 것은 정말로 그것이 우리나라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에 한정된 이야기가 아니라 주인공을 향하고 있기 때문이다. 故최인훈의 <광장>에서 남한을 상징하는 것과 북한을 상징하는 것, 중립국을 택하고, 비둘기를 따라 죽는 상징물들이 정말로 현실을 향했던가? 주인공 명준을 둘러쌌는데 우리가 그렇게 해석했을 뿐이다. 작가는 "이게 사실은 말이야, 한국을 비판한 거야."라고 말해준 적이 없다. 주인공에게 절망을 안겨주었고, 그것 때문에 변화했고, 맛깔나게 주제를 향하고 있기 때문에 독자가 감동한 것이고, 감동했으니 좋은 문장이고, 좋은 문장이니까 여러 해석이 자동으로 되는 것3)이다.
이번 단원의 핵심은 간단하다. 아무 생각 없이 글을 쓰지 말아라. 모든 단원에 중복해서 들어갈 말이다. 작가의 세계는 생각보다 치밀하다. 엄밀하다. 어느 하나 주제와 상관없는 것이 없다. 글을 쓰는 당신도 그래야 할 것이다. 작법서를 읽는다고 글 쓰기가 쉬워지는 것이 아니다. 더 어려워져야 정상이다. 더 감이 안 잡히고, 더 짜증 나는 것이 정상이다. 고도의 정신활동이 책 한두 권으로 완성될 리가 없다. 작가들이 주제를 얘기할 때 '주제 의식'이라고 표현하는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주제의식이란 말은 평소 생활하면서 의문을 품었던 것을 강렬하게 비판한다는 말도 있지만, 글을 시작하는 때부터 마무리 짓는 데까지, '의식'하면서, 그 의문을 논리적으로 잘, 이야기로 바꿔서 적어뒀냐는 말이기도 하다. 그 말인 즉 주제에 집중하면서 글을 썼기 때문에 모든 문장들이 주제에 대해서 얘기하고 있는 중이라는 말이다.
그렇다면 위에 적어뒀던 '좋은 문장'의 요소들 중 몇 가지가 왜 '좋은 문장'에 속하는지 이해가 될 것이다. "감정이 잘 드러나서"는 독자들이 주인공의 내적 변화를 감지하기가 용이한 문장이라는 것이다. "이야기를 요약하는 문장"은 이야기의 부품에 불과한 것으로 주제에 가장 근접한 언어를 골라냈다는 점에서 높은 점수를 받는 것이며, "상징성이 뚜렷하다"도 그에 해당한다. "현대 사회를 잘 나타내서"도 비슷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말장난"에 관련된 부분은 조금 민감할 수 있는데, 말장난을 하면서도 주제를 드러낼 수 있다는 것은 그것만으로 대단한 능력이라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말장난에 너무 치중한 나머지 그 잡기술에만 심취해서 내용과 관련 없는 문장을 적는 경우가 수두룩하기 때문이다.
1) 주제는 [3포 세대의 현실] 같이 딱 떨어지는 것이 아니다. 작가가 의문을 품고 있는 것, 혹은 보여주고 싶은 장면이 주제일 수 있다. 여기서는 "작품 전체의 분위기를 느끼게 하는 것" 정도가 될 수 있다. 주제란 뭐라 단정 지을 수 없는 것이다. 작품마다 주제를 드러내는 방식이 다르기 때문이다. 우선은 '분위기' 정도로 이해해두자.
2) 굳이 옛 작품을 예시로 드는 것에 용서를 빈다. 현대 문학 작품은 사람들이 잘 모르는 것을 고려하다 보니 기껏해야 문학상에서 몇 작품을 가져오는 것 말고는 교과서 실렸을 만한 작품을 선정하게 되었다.
3) '소통' 파트에서 또 언급할 것이다. 이것저것 상징이나 생각할 거리를 던져둔 탓에 "뭘 말하고 싶은데?"라는 반박이 들어오는 글은 좋은 글이 아니다. 이것저것을 아무리 흩뿌려뒀더라도 비슷한 이미지를 만들고 비슷한 분위기를 조성하고, 특정한 결말이 튀어나올 수밖에 없는 것들만이 있을 때 "그 소설은 이런 말로도 해석할 수 있고, 이런 말로도 해석할 수 있네!"라고 평가받을 수 있다.